근데 "세상을 바르게 하자"가 먼저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오해하시는 게 있어요.
"자기 양심만 챙기자. 남은 신경 쓰지 말자."
남 바꾸는 게 주가 아니라니까요. 여러분 양심을 구현하는 게 주예요.
왜냐면 여러분 양심이 구현돼야 내가 바로잡아지고,
수기(修己)가 이루어지고 치인(治人)이 이루어지고,
자리(自利)가 이루어져야 이타(利他)가 이루어지고,
명명덕(明明德)이 이루어져야 친민(親民), 백성을 새롭게 하고 백성을 돌봐 줄 수가 있습니다.
내 양심이 안 밝혀졌으면 '친민'이 안 돼요.
그러니까 이건 빼고 "백성만 되게 친애하고 백성을 돕겠다!" 이것도 양심의 발로는 맞아요.
그렇죠? 양심의 싹은 맞는데, 본줄기에서, 여기서 보세요.
여기서 샘이 끝없이 넘쳐나야 이 물이 나를 밝힌 다음에 밖으로 나가서 남을 밝히는 겁니다.
그런데 남만 밝히겠다는 마음이 급하시면 안이 지금 부실하죠. 금방 말라요, 물이.
그래서 여러분, 이렇게 나라에 뭔가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다 양심에 각성하게 됩니다.
문제는, 왜 그런데 이분들이 다 보살이 못 되고 양심 지킴이가 못 되느냐? 왜 군자와 선비가 못 되느냐?
지금, 이 순간에는 부조리가 보이니까 양심이 터져 나왔는데,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홍수가 난 거죠.
그런데 몇 시간 지났더니 금방 말라 버린 것과 같아요.
샘의 근원이 없으면, 근원에서 계속해서 솟구치는 이 물이 없으면요, 금방 말라 버립니다.
밖만 돌보겠다고 그러면 "밖을 바로잡겠다, 나는 빼고.
나는 그래도 양심적으로 살았으니까. 남들이 지금 문제니까." 그 말도 맞죠.
"지금 문제는 남이 일으킨 거지 내가 일으킨 건 아니니까 남만 바로잡으면 양심 세상 오겠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해요, 중생심에는.
그런데 이 원리를 아신다면 거기에 만족하시면 안 돼요. 더 고급 수를 둬야 돼요. 이건 하급 수입니다.
그러면 두고 나면 나아지는 것도 있지만 결국 또 안 좋아지는 게 있어요. 득도 있지만 실도 많다는 거죠.
근데 이걸 득이 더 많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양심이 계속 타오르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나부터 계속, 나부터 당당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밖으로 못 나갑니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가 부정한 짓을 저질렀어요.
다들 돌을 들고 나와서 "죽이겠다!" 하는 건요,
저 죄를 보고 못 견디겠다는 일종의 그것도 양심의 발로잖아요?
근데 예수님이 그랬죠. "죄 없는 자가 던져라." 하니까, 당당하지 못하니까 멈췄잖아요.
그때 당당할 수 없는 그게, 그런 게, 같은 원리로 "이 사회를 바로잡자." 하고 덤벼도,
당장은 저 사람이 나보다 죄를 많이 지었으니까 양심이 힘을 얻는데요,
자신 안에서 나타나는 찜찜함이 자꾸 커지면 더 힘을 못 탄다니까요.
"내가 죄가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냐?" 하면서 자기가 가다가 멈춰요.
안 멈추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끝없이 자신을 바로잡으면서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로잡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예전부터 다 성인 소리 듣고 한 사람들은요,
자기를 바로잡아서 (세상을 바로잡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LKjB0qz8I&list=PLaNHcYq59k3znNuY8wrpAuuqIZ61nzaFS&index=19

(강의 中) “밖을 바로잡겠다, 나는 빼고. 나는 그래도 양심적으로 살았으니까. 남들이 지금 문제니까.” 그 말도 맞죠. “지금 문제는 남이 일으킨 거지 내가 일으킨 건 아니니까 남만 바로잡으면 양심 세상 오겠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해요, 중생심에는. 그런데 이 원리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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