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그러실 수 있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아버지 저 감당 못하겠어요!" 이럴 수 있죠.
여러분도 똑같아요. 어떤 내면에서 신호가 올 때, 자명·찜찜의 느낌이 올 때,
아버지가 이쪽이 자명하다고 외쳐도 에고가 어떨 수 있어요?
"아버지, 저는 역량이 안 돼요."
근데 이거 아셔야 돼요. 여러분보다 여러분을 더 아시는 분이 아버지예요.
여러분도 여러분 역량 잘 몰라요.
그냥 여러분 한 몇십 년 살아본 그걸로, 데이터로,
제한적 데이터로 내가 이 정도 역량이다 라고 생각하지 사실 나의 진정한 역량 잘 몰라요.
누가 알겠어요? 참나는 알아요. 아버지는 알아요.
여러분도 모르는 여러분 역량을 아버지는 알아요.
아버지가 할 만해서 하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내 에고는 못 감당해 보여도.
그러니까 진짜로 에고가 못 감당할 일인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도 움직여보면서,
현실 속에서 자꾸 체크해 보면서, 아버지의 뜻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시면 그걸로 훌륭한 거예요.
아버지는 그 과정을 보세요! "넌 진짜 내 자식이다." 이 과정이 아름다운 거예요.
역량이 달리고, 무지랑 아집에 치여 있는 중에도 아버지의 신호를 읽어내려고 하고,
아버지 뜻을 구현하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자명한 쪽으로 더 다가가는 그 모습이 아버지의 훌륭한 효자의 모습 아니에요?
효자·효녀의 모습 아니에요?
"역경이 너무 큰데요!" 역량껏 다가가 보시라, 역량껏!
근데, 역량껏 가다 보면 아버지가 또 활로를 열어주세요.
아버지를 믿으시고 가보세요!
아버지가 여러분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압니다. 효도하세요!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면서.
그러니까 이거예요! 내가 감당이 힘들면, "아버지, 아버지 저 알죠? 저 감당 못 하는 거?"
그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일단. (에고는, 에고도 살아야 되니까)
"아버지 그럼 여기까지 가볼게요."
"그 안에 아버지 또, 그럼 자명한 은총을 좀 내려주세요, 더 갈 수 있게. 아버지 알잖아요?
저 확신 없으면 못 가는 거. 확신을 좀 더 주세요!"
이렇게 아버지랑 수작도 해보세요.
제가 예전에, 그런 동지도 있었어요.
결혼을 못 해서 안달하는 동지한테 제가 그랬어요.
"결혼 못 하면 어떡하냐?"
"나 보살도도 좋은데 결혼 못 하면 어떡하냐?" 내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네가 여자 좋아하는 거, 아버지가 더 잘 아실 거다."
"너를 보살 시키려면 아버지가 너한테 여자 보내주시지 않겠니?" 확 와닿아 하더라고요.
그런 느낌으로라도 좀 받아들여 보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아버지가 제일 잘 알죠.
예수님이 기도할 때, 어떻게 얘기하시죠?
"말 안 해도 들어주시는 줄 압니다, 아버지!"
"근데 오늘 부러, 사람들 있으니까 말 좀 해볼게요."
예수님은 말도 안 하셨어요.
그냥 아버지가 다 아는 줄 알고 그냥 사신 거예요.
"아버지! 저 뭘 원하는지 알죠?" "갑니다!"
홍익학당식 위로법, 괜찮죠?
아니, 아버지가 여러분을 더 잘 알아요! 여러분이 여러분을 몰라요.
왜냐? 본인이 본인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거나 이러거든요.
있는 그대로 평가 못 한다고요,
자기가 자기를. 보살들이 여러분을 더 알아보지,
여러분이 여러분을 더 알아보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요, 더 알아봐요.
그 아버지가 나를 인도하시는데 뭘 걱정하는 거예요?
"한 걸음만 더, 자명한 한 걸음만 더"하면서 가시면서 욕심 비우고 가다 보면요, 해법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가라는 길이 확실하다면.
확실한지는 끝없이 정보를 가지고 분석해 보시라고요. 결과를 열어놓고.
역경을 아까 못 감당하겠다고 그랬죠?
에고가 역경을 감당하려니까 힘들죠?
그런데, 아버지랑 함께 수작을 하면 역경이 역경이 아니게도 된다니까요! 이거 안 믿기시죠?
아버지 뜻을 들으면서 가다 보면요,
아무리 미로에 빠지고, 역경에 빠져도 빠져나올 길이 있다니까요!
근데 정면 승부하려니까 죽겠는 거예요.
내 역량껏 둘 수 있는 수만 둬도 빠져나올 수 있는데, 실제로는.
https://www.youtube.com/watch?v=43IsW214Z1M

(강의 中) 예수님도 그러실 수 있죠.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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