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양심이니까 끌고 가겠다" 이런 게 아니고요.
백성들의 양심이 발현되게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요. 이게 민주주의랑 맞아요.
이 철학이 민주주의의 근본이념하고 맞아요.
그래서 과하거나 부족한 양극단을 피하고,
과하거나 부족하면 다 이건 악이니 피하고, 백성들에게 항상 그 중심을 쓰셨다.
딱 양심에 자명한 것만 쓰셨다. 그래서 순임금이 되신 것이다.
그러니까 순임금, 유교에서 최고로 높이 치는 성인 군주의 그 노하우가 뭐죠? 아주 실전 노하우가,
경영의 노하우가 누가 하는 말이든 다 듣고 자명한 걸 취합해서 자명한 것만 결론해서
자명하지 않은 건 드러나지 않게. 이걸 옛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풀었어요.
저는 일부러 이렇게 푼 거예요. 옛날 분들이 뭐라고 풀었냐?
"남의 단점은 감춰 주시고 장점만 드러내 주셨다." 그건 일종의 사기예요.
이거는 서로 중매 설 때나 이렇게 해 주시면 되고요.
그럼 결혼하고 나면 사기 당했다고 아시죠? 그 이거는,
이게 성인이 이걸로 정체됐다는 게 말이 안 돼서 제가 이건 말이 안 되는 풀이인데 다 그렇게 풀어요.
주역을 뒤져가서 주역에 똑같은 구절에 이렇게 풀었어요. 주역에서는 이렇게 풀어요.
"선을 드러나게 해줬다." 아예 한자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더라고요.
"악은 드러나지 못하게 막았다"는. 그러면 성인 군주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양심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신하나 백성들이여,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 보면 양심적이게 되는 거예요.
같이 있다 보면 욕심은 자꾸 뒤로 후퇴하고,
뭐 대화를 나눠도 양심적인 거는 바로바로,
내가 아무리 낮은 사람이 한 말도 구현이 되고,
욕심으로 한 말은 구현이 안 되니까 자꾸 뒤로 후퇴하게 되고,
사람들이 알아서 뒤로 이제 그 욕심을 내려놓게 되고,
양심 얘기는 하기만 하면 천자가 다 들어 주니까 어떻게 돼요? 계속 하게 돼요.
다 같이. 그니까 천자도 양심을 구현하고 모든 백성들,
신하들이 다 양심을 구현하는 구조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서 항상 찜찜한 거는 버리고 백성들에게 양심에 맞는 것만 썼다는.
그니까 요즘 말로 하면 이거 어렵고요.
요즘 말로 하면 쉽게 말하면,
국민들하고 늘 소통하고 국민들 말을 잘 경청하고,
국민들 말 중에 자명한 게 있으면 반드시 현실화시키게 도와주는 리더였다.
그럼 이 사람은요, 순임금이 모든 걸 알고 있어서 선을 하는 게 아니에요.
국민들의 눈가짐을 자신의 눈가짐으로 삼아서 선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훌륭한 리더는 역지사지의 전문가여야 돼요.
국민 전체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요,
국민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묵살해 버리죠. 그걸 왜 구현해 줘요?
내 국민 한 명 한 명, 아무리 낮은 사람도 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 사람이 자기 양심을 구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그 나부터 양심을 구현하면서 국민 모두가 면에서 자명·찜찜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 의견 중에 진짜 자명한 것들은 반드시 현실화되게 도와주고,
찜찜한 거는 반드시 뒤로 물러나게 도와주기만 하면 온 국민이 다 함께 대업을 달성하는 거예요.
다 함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이런 리더를 노자는 무위의 경영이라고 하고,
유교에서는 덕치라고 하는 거예요. 덕스러운 경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이것은 다 같은 설명이에요. 제가 다른 강의에서 말씀드렸듯이,
노자가 말한 '아무것도 안 하는데 백성들이 변한다'는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양심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리더가 자연 그대로의 마음인 양심만 따르고 개인적인 꼼수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가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중용 마지막 33장을 보시면 똑같은 말씀을 합니다.
워낙 재미있는 글이니 한번 보실래요?
시경에 이르기를 "그대가 집에 있음을 보니 방구석 모퉁이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남이 아무도 안 보는 자리에서도 홀로 깨어 있구나." 그러므로 군자는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받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간다고 해요.
이것은 이미 그 원리를 보여주는 거예요.
두 구절이 얼핏 보면 안 맞아 보이죠? "방구석 모퉁이에서 홀로 깨어있다"는 말과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받고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간다"는 말이 일반적으로는 바로 연결이 안 되죠.
이게 왜 그런가 하면, 중용에서 '신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진실하게 하고 참되게 한다는 뜻이에요. 마음을 참되게 한다는 건데,
그게 언제냐면 바로 혼자 있을 때예요.
어두운 방구석 모퉁이에 있어도, 혼자 방에 있어도 양심적인 거죠.
겉으로 드러나기엔 이해가 빠르신데. 중용에서는 이걸 어떻게 의미하냐면.
이건 단순히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해요.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거죠.
방구석 모퉁이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남들은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은 알고 있는, 여러분의 속마음이에요.
그걸 독이라고 해요.
발표는 아직 안됐어요. 근데 자기는 알아요.
이때가 가장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때 이미 선과 악이 갈리기 때문이에요.
양심을 성찰하는 이유는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그 마음 속에서 선악을 따져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미 거기서 일이 시작되요.
그래서 격물치지(格物致知) 선이 뭔지 악이 뭔지 안 다음에 성의라고 속마음을 관리잘해라가 나오는 이유가 그거에요.
지성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의지가 작용하는데, 이게 바로 속마음이에요.
의지는 감정으로 이어지고, 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죠.
유교에서는 이때 정심(正心), 즉 감정을 올바르게 다스리라고 해요.
지성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연구해서 부족한 점을 따져보고 올바른 지혜를 얻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선악을 이미 알게 되죠.
이때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해야 해요.
의지에 '성실할 성(誠)'자를 쓴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말한 대로 꼭 이루라는 뜻이죠.
의지에서 이미 행이 시작이 되요.
의지는 지성과 감성의 중간이에요.
아는 것과 실천의 중간단계죠. 미세한 상태에요. 아직 밖으로 실천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속에서는 이미 실천이 시작된 거예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날 때 이미 마음이 움직인 거죠.
하고 싶어하는 속마음이 일어날 때 이미 악이 시작되었어요. 발표는 안했는데.
즉 공식적으로 도구는 사러가지 않고 현장 답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악이 시작된 거예요.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죠. 이미 나쁜 마음을 품었으면 '악'이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영역을 진실하게, 정성스럽게 다뤄야 해요.
좋은 마음이 들었다면 반드시 실천하고,
나쁜 마음이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제거해야 해요.
알고 있는 선한 것을 반드시 이루라는 거죠.
이것이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거예요.
밖으로 표현될 때는 이미 속에서 충분히 성숙된 상태여야 해요.
그래서 방구석 모퉁이에 있을 때, 즉 자기만 아는 자리에서도 성실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어떨까요? 말이 밖으로 드러날 때 진실되게 이루어지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이미 올바른 마음가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그래서 군자는 실제로 행동하지 않아도,
그 속이 양심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무언가를 느낀다는 거예요.
"저 사람은 진실해 보인다"고 느끼고, 말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거죠.
왜 그럴까요? 속마음이 양심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행을 안하면서(신독) 이런 신뢰를 바라면 안 되죠.
"내가 죄짓지 않았는데 왜 사람들이 나를 멀리할까" 하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의 속마음에서 양심적으로, 육바라밀의 원칙대로 마음을 관리한다면 남이 말하지 않아도 신뢰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마치 기적처럼 예전 같으면 안 될 일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해요.
여러분이 양심적으로 마음을 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주는 거죠.
이건 인과관계로 일어난 일인데,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원리를 모르니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군자와 보살들은 이 공식을 아니까 마음을 계속 이렇게 굴려서 계속 업을 지어버리는 거죠. 좋은 업을,
생각에서 일어난 업이지만 이미 이것은 엄청난 영향을 발휘합니다. 이 앞으로 이 얘기만 계속 나와요. 보세요,
『시경』에 이르기를 "음악의 연주로 신이 강림하여 말이 사라질 때" —
옛날 어른들이 그 공중에서 제사 지낼 때 음악을 연주하는 게요, 음악을 연주하면요
다 이렇게 몰입이 돼서 무아지경이 들어가죠.
그때 신이 강림했다 보는 거예요.
자, 자, 음악을 통해 다 깨어날 때, 예전에 '나는 가수다' 들으시면 막 깨어나요.
막 가수들, 요즘은 또 뭐죠? 뭐 '복면가왕'인가요?
노래, 사람들이 노래 왜 이렇게 좋아하나요? 듣다 보면 몰입이 잘되고 깨어나요. 음악에 이게 효능입니다.
"신이 강림하여 말이 사라질 때", 아, 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빠져서 말을 잃을 때,
이때는 다툼이 없다네. 이땐 다 깨어난다는 이게 음악의 효능인데,
이 때문에 군자는, 이 『시경』의 이 구절을 이어 놓고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이 때문에 군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격려되고,
꾸짖지 않아도 백성들이 도끼보다 더 두려워한다." 좀 안 맞지 않나요? 갑자기 여기가 왜 나오는지.
그러니까요, 이렇게 지금 무아지경에 몰입된 상태에 깨어 있는 이런 마음을 군자는 늘 품고 있어야죠.
그런 깨어 있음 속에서 사람들이 다 안 싸우죠.
이렇게 다 같이 깨어나면 안 싸우죠. 군자를 보면요,
군자는 늘 깨어있으니까 상을 주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그 격려되는 그 감흥이 다 같이 하나로 이렇게 쫙 감흥되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화를 안냈는데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중용』 끝에 가면 이상한 얘기들이 이 얘기로 끝나요.
지금 이거 아주 뭐라는 겁니다. 제가 제목을 "항상 깨어 있어라"고 달았는데, 이 구절을 이해를 못 하면요,
왜 이렇게 막 윤리 도덕 정치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마지막 것은 말하지 않아도,
뭘 안 해도 노자 책에나 나올 법한 얘기들이 막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유교와 도교가 원래 하나라는 겁니다.
노자와 공자는 원래 한 가르침이, 똑같은 원리를 깨달으신 분들이에요.
임금이 무위,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백성이 변하게 되는 그 공식을 체득한 거거든요.
노자도 공자도 그걸 얻은 거예요. 이름만 다르지.
그래서 그 음악의 연주로 다 한마음이 돼서 뿅 갔을 때,
어, 그런 상태처럼 이 사람들 마음에 그런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군자는 재밌죠.
그러니까 군자는 그 음악을 연주하듯이 만나는 사람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것을 못하면 무위의 임금이 무위라고
— 옛날 중국의 천자들 침실에 '무위'라고 써 있어요.
그런데 뭘 어떻게 이용한지 아세요? 천자들은 자기가 하는 행동을 백성들이 아무도 모르게 해야 된다.
그래서 무위, 뭘 하는지 몰라요.
우리나라 대통령도 어디 계신지도 잘 모르죠.
원래 그러니까 안 밝힐수록 이게 고단수,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히 국민들이, 직원들이 우리 회장님이 어디 계신지 뭐 하는지 몰라야 돼요.
지금도 그래요. 권모술수 경영은 이렇습니다. 악용해요, 무위를 그런 식으로.
그런데 진짜 무위는 지금 국민들 가슴에 막 전율이 일어나게 해야 무위예요.
그 그걸 꼼수로 하면 전율이 안 일어나요.
양심 안에서 다 말이 없어지고 하나가 될 때 국민들이 스스로 각성되어 자책하고 바로잡고 합니다.
죽이죠. 이제 이런 얘기하면 뭔 이상한 얘기하나, 이상적인 얘기하나 하는지 모르지만,
이게 실감 나는 얘기라는 것을 이제 아셔야 돼요.
하나만 더 풀어드릴게요.
이런 게 쭉 나열돼 있는데, 『시경』에 이르기를 "나는 광명한 덕을 보듬어 주니 말로 떠들고 얼굴빛을 바꾸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말라."
이게 이제 하늘이 하는 얘기예요. 임금한테
"나는 광명한 덕을 제일 높이 치니까 군주가 말로 떠들고 막 화를 내고 안색을 바꿔서 이렇게 통치하는 거, 난 대단히 안 본다.
네가 그런 식으로 통치를 잘해도 난 대단하게 안 본다."
덕으로 통치하는 걸 최고로 친다. 이게 『시경』에 있는 말인데, 그걸 가져다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로 떠들고 얼굴빛을 바꾸면 백성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말단이다. 그것은 정말 하수가 하는 것이다."
이해되세요? 이상하죠, 이런 얘기들.
아, 하나 더, 중간에 제가 하나 빼먹었네요. 하나 더 해드릴게요.
지금 다 같은 얘기예요. 같은 맥락만 지금 여러분,
이거 이해하시면 그 엄청난 『중용』의 제일 어렵고 난해한 부분을 이해하시는 거예요.
막판의 이 구절을 못 풀어요. 왜 이런 말들이 갑자기 밀려나와 있는지.
『시경』에 이르기를 "드러나지 않는 덕을 여러 제후가 본받는다." 봄,
제후는 천자가 막 화내고 짜증내고 겁주고 협박했을 때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렇게 움직이는 건 신복?이 아니고 겉만 움직이는 거고,
진짜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드러나지 않는 덕을 군주가 보여줬을 때 제후들이 따른다.
고로 이 때문에 군자가 공손함을 돈독케 함에 극치로 깨어 있는 거예요.
이 속마음부터 깨어 있을 때 천하가 화평해지는 것이다.
천하가 화평 — 이게 노자의 무위경과 똑같은 얘기라는 걸 아셔야 돼요. 이해되시죠?
이거랑 노자를, 이거 보고 『중용』 보고 『노자』 보시고 하면요,
이 정도 철학하시면 죽을 때까지 하셔도 이것은 다 이해 못 하세요.
다, 다 이 흡수가 안돼요. 『중용』과 『노자』, 잘 흡수하셔도 엄청납니다. 『대학』, 『중용』, 『노자』 많이 말해도 이 정도만 이해하셔도
인간관계 경영, 이 나라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비법이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사람들은 이걸 못 이해해요.
고리타분한 도덕 책인 줄 알고, 아니면 노자 무위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하고 어딘가 자연으로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제일 어려운 노하우를 제시해준 거예요.
그래서 논어의 이 구절을 이해하실 수 있어요.
공자님께서 이렇게 "순임금은, 위대한 순임금은 하신 게 뭐가 있는가? 무위였다 하는 게 없으셨다.
오직 백성을 바라보고 공손히 앉아 계셨을 뿐이다." 뭔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양심, 여러분, 예수님 같은 분이 이제 청와대에서 공손히 앉아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어요.
공손히 앉아 있다는 거, 앉아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 그 천자 자리에 딱 지키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기만 해도 어떻게 돼요?
예수님이 만약에 지금 대통령이 돼서 쫙 온국민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들이 알아서 지금 자신의 양심을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자 하면서 변해가겠죠. 그거를 말하는 거예요.
순임금이 통치할 때는 하는 게 없다는 게요, 꼼수 부린 게 없고 무슨 권모술수... 요즘 정치 구단이라는 것은 권모술수 구단들을 말하지,
이런 왕도정치술의 9단이 아니라니까요. 폐도 정치 술의 9단들이...
왕도 정치술은 이거 잘해야 9단이에요.
다 앉아서 깨어서 이 천하가 양심적으로, 내가 말을 하고 욕을 안 하고, 국민들을 협박 안 하고,
정치인들을 협박 안 하고, 공직자를 협박 안 해도 양심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끌고 갈 수 있는 리더... 이게 너무 비현실적이죠.
그런데 이런 경영법이 있습니다.
예, 우리 홍익당에서 혹시 이제 권력을 잡게 되면 그런 정치를 실험해 봐야죠.
앞으로 이제 또 정치에 나가면 이런 걸 실험해 봐야죠.
다른 것은 패도술의 실험은 지금 이미 몇천 년간 너무 많이 돼 있어요.
그냥 역사책 사다 보시면 아, 패도를 쓰면 이렇게 되는 건 다 있어요.
근데 왕도를 쓰면 이렇게 되는 것은 너무 드물어요.
조금씩 세종 때도 조금 모양만 나왔지, 이 근사한 모양만 나왔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어요.
그거를 지금 해보자, 이 정도 원을 세워야 뿌듯하지 않나요?
이게 이렇게 되면 여기가 현실이 정토가 되는 겁니다.
이런 리더가 다스리는 나라가 정토... 양심의 제일 전문가가, 양심의 제일 전문가가 아니면요, 이렇게 못 해줘요.
무위를 못 하고 있어요.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어요.
모든 일에 양심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라... 양심 전문가...
국정의 모든 문제를 양심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서 현장 전문가들,
장관들과 함께, 그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매사가 양심적으로 진행되는 것만 봐주면 돼요.
천자 대통령은 그러니까 무위라고 하는 거예요.
어느 분야의 일을 꼭 보는 게 아니라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심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으로 치면 양심이 해야 될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게 천자 자리예요.
나머지는 우리 욕심의 분야들이 알아서 또 해요.
근데 양심 51% 유지시키는 것은 결국 대통령의 몫이라...
우리 마음의 대통령이 그 역할 하듯이
나라에서 대통령은 그 역할 해주는...
나라 전체가 양심을 지향해 가고 양심 문화로 가고 양심 51% 항상 유지할 수 있게...
그래서 그 엄청난 권력을 준 거예요,
그 사람한테 그거 지키라고.
이 사람이 이 권력으로 욕심을 부려버리면 끝장나는 거죠.
엄청난 권력을 줬기 때문에... 그 권력을 왜 줬는지 이해하셔야 돼요.
그 권력을 또 개헌해서 뺏자 그러는 게 지금 본질이 아니에요.
그 권력을 어디다 쓸 것이냐가 본질이죠.
그 쓸 사람을 못 찾으니까 뺏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만...
이해되시죠? 이렇게까지 현실하고 연결해서 마음 공부를 이해하지 않으시면
이거 『중용』 읽으나 마나에요. 다 읽고 "음, 좋은 말이네" 하고 기억 하나도 안 나고
어디 가서 "중용 읽었다"고 자랑할 순 있겠죠, 봤으니까... 이렇게 이해하실 책이 아니에요.
이거는, 이거 한 것만 여기 제가 『대학』까지 부록으로 넣죠.
이거 한 것만 남아도 인류가 다시 왕도를 복원할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https://www.youtube.com/watch?v=S6vgd2ISa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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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이 있는거임? 대박? 아무튼 잘 보고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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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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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순임금 3박자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