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신자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원형 스님께서 쓰신 '대승 계율의 세계'라는 책을 읽어보니 좋더군요.

이 책에는 유가사지론 경전의 좋은 말씀이 담겨 있는데, '중생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요익중생'이라고도 하는데, 줄여서 '중생계'라고 합니다.

이는 '요익중생', 즉 중생을 넉넉히 이롭게 하자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말로 무엇과 같을까요? 바로 홍익인간과 같습니다.

인간을 중생의 대표로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이는 인간만 이롭게 하고 동물은 제외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먼저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존재들도 이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대표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홍익중생이 더 넓은 개념이지만,

실천적으로는 홍익인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끼리도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동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지구에서 인간만 바르게 살면 우주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동물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바르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홍익인간 사상이 인간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대승불교와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사상은 하나입니다.

요익중생의 계율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살의 계율을 보시면 보살이 어떤 존재인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절에 다니시는 분들도 '보살'이라고 하면 정확한 모습이 잡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절에 다니시는 여성 신자를 보살이라 부르는 것이 현재의 모습인데,

이는 보살의 진정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살은 재가자의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불교 초기에는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처럼 출가자의 이상적 인간상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나면서 그들이 소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진정한 양심을 구현하는 대승적 보살상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모습입니다.


유마거사는 어떤 분이었을까요?

그는 백만장자로 처자식이 있었고,

조정에도 나가고 술집에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도를 설파했습니다.

술자리에서도 도를 이야기했죠.

이것이 바로 동양의 선비 정신입니다.

왕을 만나면 도에 입각한 간언을 하고,

집에서는 육바라밀을 가르쳤습니다.


가정교육의 핵심이 육바라밀이었으며, 이는 단순한 가정교육을 넘어섰습니다.

백만장자의 집에는 많은 고용인이 있었을 텐데,

이들을 포함한 모든 식구들을 육바라밀로 대하고 경영했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집은 하나의 큰 기업체와 같았으니까요.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도, 가족들도 육바라밀로 대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조정에서도 육바라밀에 맞게 간언을 하고,

심지어 술집에서도 육바라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재가자의 가장 이상적 인간상으로 보살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관세음이나 지장보살만 떠올리신다면,

그것은 보살의 참모습을 잘못 이해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이미 신비한 존재로 등장하잖아요.

하지만 진정한 보살은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 같은 사람입니다.

그냥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이에요.

우리와 똑같은 중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사람 안에 보살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 안에 어떤 분이 보살이냐면,

육바라밀을 따르는 사람은 무조건 큰 보살이고 부처님의 화신이라는 겁니다.

육바라밀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육바라밀을 안 따르면 아무리 석가모니의 제자라고 해도 보살이 아닙니다.

육바라밀만 따르면 누구나, 심지어 술집에 있는 사람도 보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거예요.


이것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기존 불교가 수용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보살의 계율이 기존 초기불교 계율과 같을 수 없었죠.

초기불교 계율은 죄를 짓지 않고 살생하지 않아 업을 짓지 말자는 데 중점을 둔 계율이에요.

'내가 이번에 열반에 들어야 하는데 더 이상 업을 짓지 말자'는 것,

즉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은 선이고 방해되는 것은 악, 이렇게 규정하는 계율이었어요.


대승에 오면 계율이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었냐면, 초기불교에서는 열반이 기준이었는데,

대승에서는 중생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선악의 기준이 됐어요.

이렇게 기준이 바뀌면 무서워지는 겁니다.

이것으로는 소시오패스를 이길 수 없어요.

소시오패스들이 재미보고 본인은 숲에서 자신들의 열반만 챙기려 하지만,

이제는 밖에 나가서 소시오패스들을 제압하면서 중생들이 살만하게 해주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정치도 해야 하고 술집도 가야 하고 온갖 일을 다 해야 해요.

그러면 기준이 무엇이 되겠어요?

업을 짓느냐 안 짓느냐가 아니라,

중생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입니다.

중생에게 도움만 된다면 극단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유마경에 보살도 오역죄를 짓는다는 말이 나왔고,

보살도 중생에게 도움이 된다면 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즉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죠.


이는 초기 불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개념이었음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대승 보살에 대한 정확한 상을 잡으셔야 하는데,

지금 중생의 모습으로서 육바라밀을 구현하는, 즉 양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생의 리더인 보살입니다.

특히 이 시대에 보살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정치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물론 기업인의 모습도 좋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가장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 중에서 보살이 많이 나와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보살 사상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정치나 경제로부터 떠나 숲속에 들어가 보살도를 닦겠다는

환상을 가진 분들이 계신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올바른 보살도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대로 내려오던 유가사지론이며 옛날 경전에 나오는 보살계를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보살은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첫 번째로 모든 보살은 모든 중생의 안녕과 이익을 위하여

중생들에게 선을 제시해 주고 이로움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돕는 벗이 되고,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야 합니다.

중생이 부르지 않아도 찾아가서 벗이 되어주고, 중생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며 이익이 되게 해주어야 합니다.


지금 이것을 가장 잘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입니다.

우리가 그러라고 월급을 주는 것이지요.

다른 것 하지 말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연구하라고 월급을 주고 특권도 준 것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는 것은,

원래 이것을 알아서 해주는 존재가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요즘 보살도를 닦고 싶다면, 혹은 소승도를 닦고 싶다면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보살도를 닦고 싶다면, 출가가 아닌 출마를 하시라는 것입니다.

세속에 나가서 부딪히며, 그 현장에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도가 닦입니다.

숲속에서는 도가 닦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출가를 해도 숲속에서조차 보살도를 닦게끔,

하늘이 도와주려는 듯 그곳도 속세 못지않은 현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출가해도 됩니다.

거기서도 보살도를 닦을 수 있고,

어디서든 육바라밀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야 보살도가 닦입니다.

그저 명상에 들어가 이것저것 찾고만 계시면 보살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대승을 하시겠습니까? 보살은 무조건 육바라밀입니다.

죽으나 사나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보살입니다.


베풀어야 하고, 남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인욕으로 진실을 수용해야 하고,

정진하여 양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며,

항상 깨어 있는 선정을 유지하고,

지혜로써 매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중생에게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서

모든 이에게 생기는 질병 등의 괴로움에 따라 병까지도 다 고쳐주는 사람이 되어요.

아플 때 병도 고쳐줘야 되고, 보세요,


육체에게는 병을 다스리는 지혜를 주고 정신한테는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보살은 세간·출세간의 온갖 옳은 것,

이것을 중생들에게 그 핵심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해요.

자, 또 한편으로 모든 보살은 지금 선악과 질병의 문제를 다뤘는데,

또 한편으로 모든 보살은 두려움에 떠는 모든 중생들을 두려운 곳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국민들이 걱정할 때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 돼요.

국민들한테—국민을 넣어볼게요, 중생 대신에—국민들한테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줘야 되고,

국민들이 아플 때, 전 국민들이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 줘야 되고, 모든 보살은 재산이나 가족을 잃은 중생들을 위해 근심과 걱정을 멀리하게 해 줘야 됩니다.


이 지금 아주 불우한 처지에 있는 국민들을 보살펴 줘야 돼요.

그리고 또 모든 보살은 살림을 돕는 도구들이 모자란 중생들,

그 국민들한테 살림 도구를, 의식주의 도구를 제공해 줘야 돼요.

이 지금 보살이나 출가한 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이분은 사업가여야 돼요.

지금 사업을 하시는 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사회사업이라도 하셔야 돼요.


그다음에 모든 보살은, 아, 모든 보살은 도리에 따라 올바른 의지처가 되어서

법대로 중생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돼요.

진리대로 국민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됩니다.

보살은 벌써 뭐, 이게 행정까지 하실 수 있어야 돼요.

의식주 해결, 행정, 선악, 질병. 또 모든 보살은 세간에 따르면서,

즉 세간에 나아가서 일하면서 말하고 중생들과 인연에 따라서 다른 이로부터 음식도 받는다.

즉 세상에 나가서 일하면서 월급 받으란 얘기예요.

숲에 있지 말고—이야기가 완전히 다릅니다—또 중생들과 인연 따라 같이 연구해 가면서 일하라는 거예요.


모든 보살은 숨거나 드러나거나,

숲에 있건 도시에 나와 있건 항상 진실한 공덕, 즉 육바라밀을 실천해서

모든 이들로 하여금 기뻐서 배우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혹시 세상이 여의치 않아서 등용이 안 되더라도,

세상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혼자 육바라밀 하고 있어야 되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받아주면 세상과 함께, 세상이 나를 등용해 주지 않으면 홀로 그 몸뚱이를 선하게 하고,

세상이 등용해 주면 천하 사람들과 함께 선을 실천해라.

지금 이거예요.


숨거나 드러나거나 항상 선을 실천하고 있어야 돼요. 육바라밀로 무장돼 있어야 돼요.

자, 그다음에 모든, 또 보살은 허물 있는 사람한테는,

뭔가 죄를 지은 사람한테는 안으로는 친하고 이롭게 하며, 안으로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그 사람 잘되기를 바라되,

밖으로는 그 죄를 꾸짖고 조복하여 벌을 다스려서 이끌어야 된다.

어,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결국 뭡니까, 개과천선 시키려고.

그 사람을 착하지 않은 곳에서 나와서 착한 곳으로 가게 편안하게 머물게 하기 위합니다.

중생 위해 처벌까지 불사해야된다.


그래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착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게 만들고

진리를 즐겁게 기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생계입니다.

요익중생을 구현하려면 지금 여러분이 출가해서 어디 산에 가서 암자를 짓고 계시는 것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살도는 묵묵히 수행하고 계시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어요.

그냥 숨 쉬듯이 육바라밀을 계속하고 다니셔야 중생에게 이로움이 갑니다.


이 재미있죠? 그래서 늘 진리를 판단하고 꿰뚫어 보고 계셔야 하고,

늘 깨어 계셔야 하고, 늘 진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셔야 하고,

늘 중생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노력하셔야 하고,

중생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셔야 합니다.

자, 이런 것이 보살입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이 우리나라 홍익인간 이념을 한번 보세요.

환웅이 홍익인간 이념을 구현하려고 이 땅에 내려와서 무엇을 했죠?

다섯 가지 일을 했다고 되어 있어요.

신시라는 신의 도시, 신의 나라를 만들어서...

그러니까 환웅이 위대한 보살인 것입니다.

홍익인간을 하려고 지상에 내려와서 하늘나라에서 보살이 벌써 나라를 만들었어요.

홍익인간의 세계, 홍익인간 이념이 실천되는, 그 진리대로 다스려지는 세계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다섯 가지를 했다고 나와요.

이것이 제일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첫째, 선악을 가르쳐줬어요.

질병을 다스리게 해줬어요.

행정을 어떻게 할지 가르쳐 줬고,

어떻게 사람들을 처벌할지 가르쳐줬고,

곡식 문제를 해결해 줬어요.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줬어요.

이것이 물질과 영혼까지 다 만족시켜 준 것입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대동이라 해요.

몸도 만족하고 욕심도 만족하고 양심도 만족하는 것을 대동이라 해요.

물질도 좋아하고 정신도 좋아하는 것, 이것이 대동이에요.

지금 방금 본 보살의 요익중생과 너무 똑같지 않나요?

아까 다 나왔죠. 선악을 가르쳐주고, 질병을 치료해 주고,

의식주 살림도구를 장만하게 해주고, 또 법대로 다스리게 행정도 가르쳐 주고,

잘못 죄지은 사람은 처벌해서 선하게 만들기도 하고... 똑같아요.

이것이 정치의 덕목들인 것이에요.


여러분, 환웅천왕이 이 땅에 와서,

곧 고조선 이전에 인류를 그렇게 다스렸다는 그 항목이 똑같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생각해 보시면 보살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죠.

이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홍익학당을 통해 보살도의 핵심을 말씀드리고,

홍익당을 통해서 지금 보살 정당을 만들어보자고 외치는 것이에요.


보살도 한 명으로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쪽에 소인배들이 있듯이 이쪽에 보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소인배들은 욕심으로 뭉치지만, 이쪽은 양심으로 뭉쳐야 해요.

불교에서 말한 보리심으로 뭉쳐야 해요. 보리심이 양심입니다.

보리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중생들이 저 모리배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육바라밀의 힘이 없기 때문에 이기지 못해요.

육바라밀의 힘이 탐진치를 제압합니다.


진리가 어둠을 쫓아내죠. 진리가 아니면 어떻게 어둠을 몰아낼 수 있겠어요?

불이 아니면 어떻게 어둠을 밝힐 수 있겠어요?

여러분에게 불이 있냐는 것이죠. 그 불이 보살도 안에서 말하는 6바라밀입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이 육바라밀을 택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땅이 밝아질 수 있겠어요?

말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힘은 제가 보기에 태양빛 같은데,

국민들 안에 있는 양심, 보리심은 태양빛처럼 은은히 밝아요.

그런데 태양빛이 바로 불을 일으키진 않잖아요.

그래서 홍익당이라는 보살당을 만들어서 돋보기 역할을 하게 하자는 것이죠. 그러면 불이 납니다.

육바라밀의 힘을 더 결집시키게 도와드리면 여러분 내면의 육바라밀 힘이 나서

주변을 변화시키는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이런 역할을 오늘날 보살들이 해줘야 합니다.

보살들이 그런 돋보기 역할을 해줍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당으로 한 그룹을 만들어서,

보살의 그룹을 만들어서 한번 일을 한다면 이 중생계가 한번 들썩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짜 보살들이 살아숨쉬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보면

전 세계에서도 "아, 저것을 따라해야겠다"는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저기 한국에서는 정토가 만들어졌다... 정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정토를 보시면 정토가 무엇이죠? 학교예요.

학교 정토가 아미타불 직강 학교예요.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 받는 학교가 정토의 이치죠.


그래서 이 땅을 정토로 만든다는 것은 보살들이 정치도 하고

교육까지 담당하면서 온 국민들이 보살도를 배워가고 익혀가고

또 몸으로 실습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토예요. 이것이 대승불교의 이상입니다.


지상을 포기하니까 자꾸 정토에 가서 태어나길 바라죠.

지상을 정토로 만들라는 것이 원래 유마경의 핵심 사상이었습니다.

정토는 중생들이 있는 곳이며, 허공에서는 연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중생들이 있는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중생심 속에서 육바라밀이 발현될 때 거기가 정토입니다. 허공이 정토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홍익당의 육대 원칙이 육바라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아시죠?


선정은 항상 양심에 깨어 있겠다는 것이고,

보시에 해당되는 것은 우리는 항상 국민들 마음과 하나 되어 국민에게 이로운 것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계와 통하는 것은 무엇이죠?

우리가 국민들에게 절대 해로운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인욕과 통하는 것은 무엇이죠? 우리는 항상 겸허히 진실을 수용하고 국민들에게 겸손하게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정진은 어느 순간에도 양심 구현을 우리 당의 사명으로 알고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항상 자명하고 근거 있는 것들만 국민들에게 알리고 또 그것에 근거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바라밀을 실천하겠다는 것을 육대 원칙으로 해서 정당의 원칙으로 삼은 것인데,

이런 정당이 전 세계적으로 있을까요?


육바라밀 정당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불교 색채를 안 가지려고 육대 원칙이라고 한 것뿐이지,

모든 종교인들이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불교 신자분들은 그런 측면에서도 한번 홍익당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하나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