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가 "사람, 저 사람이 좀 사람됐으면 좋겠다" 하는 게 들어가 보면 영성 지능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능이 좀 좋아져서 주변도 좀 돌아보고, 천지 분간도 좀 하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의 그 결과도 좀 예측하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

이게 지능이 아닐 리가 없잖아요. 이게 지능입니다. 영성 지능.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머리가 밝아져야 된다" 그럴 때 그 머리는 영성 지능을 말해요.


저는 항상 사단, 육바라밀이죠,

이게 인문학의 핵심이니까 이것만 잘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드린 글입니다.

그게 우리의 영성 지능이고요.


최근에 TV에서도 그 아홉 번째 지능이라고 해서 영성 지능을 다뤘어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낼 때도 영성 지능에 대해서 제가,

제가 이제 제가 생각하는 의견을 여기 책에 다 써 놨습니다.

그래서 영성 지능 개발하는 법,

영성 지능은 어떤 건지 그런 내용들을 다뤄 놨으니까

제 강의 들으신 분들은 늘 들으신 내용이고요.


예, 최근에 그 내용이 정리돼서 TV 내용이 책으로 나온 것 같아요.

아홉 번째 지능이라고 해서 나온 신간이 나왔더라고요.

이게 영성 지능입니다.


왜 아홉 번째라고 자꾸 하냐면, 그 미국에서 지금 현재 다중지능,

인간이 가진 지능을 크게 여덟 개로 분류해서 지금 교육에 활용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요건 아홉 번째 지능.

그런데 가장 핵심이 되는 지능이다.

나머지 재능의 가치를 높여 주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니까요.


그래, 그렇게 해서 설명했는데 이 책에서

제가 영성 지능이란 말을 되게 많이 써서 생각나서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인성 교육이다 그러면 단순히 우리가 좀 사람 성격 좀 좋게 만들고,

뭐 착한 사람 만들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인성 교육이 지금 필요하냐를 가지고 의견들이 분분하신데요.

뭐, 잘못된 방식의 인성 교육을 하면 더 폐해가 될 수도 있겠죠.

그건 이제 얘기해야 되는데, 인성 교육의 핵심은 영성 지능의 개발의 문제,

즉 지능이 떨어진 아이들이 세상에 나온다는 거예요.


인성이라는 건요. 영성 지능이에요. 영성 지능이 개발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나오게 되면요,

예, 내 욕망만 추구하고 타인을 짓밟아서라도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그 의식 속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하게 됩니다.

상당히 무서운 위험한 상황이죠.


예, 그걸 막으려면 지능을 높여주면 돼요. 영성 지능이라는 걸 인의예지니까

남을 사랑하고 남의 입장을 공감하고,

예,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자명한 것만 옳다고 하고

사리 분별을 정확하게 하고,


예, 책임감 있고 충동 억제도 잘하고 몰입도 잘하고요,

어떤 일에 집중도 잘합니다. 요것들이 영성 지능을 이루는 요소예요.

인의예지신 그리고 성실인데, 신에서 신이 성실이 하나 더 하면 깨어 있음, 몰입. 옛날 선비들은 경이라고 했죠,


경. 그래서 그걸 여섯 개를 해야 육바라밀이란 게 딱 맞게 돼요.

그래서 불교에서 그 이미 육바라밀로 있고,

유교에서는 인의예지신경이라고 해서 선비들이 추구했던 덕목이고

요거 이상 더 할 필요도 없어요.


모든 좋은 것은 이 여섯 개가 들어가서 좋은 게 됩니다요.

양념만 넣으면 뭐든지 맛있는 게 되고 진선미하게 돼요.

그러니까 이렇게 쉬운 법이 있는데 이걸 모르고 인성 교육을 하겠다 그러면

내 마음에 드는 가치관을 후세에 주입시키는 작업밖에 안 돼요.


노예 교육, 노예 도덕이 이제 가르쳐집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요.

인간이 원래 타고난 가장 선한 그 가치들,

그거를 개발해 준다, 그게 하나. 그걸 잘 쓰는 게 지능이니까 그 지능을 개발해 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중지능에 음악 지능도 있어요.

음악, 우리가 하나 그 활용하는 것도 지능이에요.

공간 지능, 공간을 파악하고 다루는 지능,

신체 운동 지능, 몸 쓰는 것도 지능이에요.

몸 쓰는 것도 지능인데 여러분, 양심을 쓰는 게 지능이 아닐 수가 있습니까?

근데 다중 지능에는 양심 쓰는 지능이 없다고요.

그래서 영성 지능이 자꾸 지금 주목받는 겁니다.


특정 종교의 것도 아니고,

영성 지능은, 영성 지능이라는 학술 용어는 인간이 가장 인간의 본질과 선악 판단에 있어서 얼마나 지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요거 떨어지면 여러분, 그런 사람은요 만나면 답답합니다.

여러분이 만나서 편하고 그 뭔가 존경할 만하고 또 만나고 싶고 한 사람들은요,

영성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에요.

그게 영성 지능이에요.

여러분을 맞춰 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편하신 거예요.


그만 했음 할 때 그만하고,

저것 지금 멈췄음 할 때 멈추고,

이게 지능이에요. 보통은 못 멈춰요.

지능이 떨어져서,


사실은 그쪽 지능이 떨어진 거예요.

IQ는 좋을 수도 있어요.

근데 영성 지능이 떨어지면요, 잘 모릅니다. 무감각해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다 잘 몰라요.

충동 억제 잘 못해요. 몰입을 잘 못해요. 이런 모습들을 보인다는 겁니다.


이 중에 뭐 다 잘못되면 큰일 나죠.

어떤 일부라도 뭔가 문제가 생기니까 전체적으로 균형이 깨져서

뭔가 우리가 볼 때 안 좋은 모습으로 언행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 저 사람이 좀 사람됐으면 좋겠다" 하는 게 들어가 보면 영성이 좀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능이 좀 좋아져서 주변도 좀 돌아보고,

천지 분간도 좀 하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의 그 결과도 좀 예측하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

이게 지능이 아닐 리가 없잖아요. 이게 지능입니다, 영성 지능.


제가 어떤 강의 갔는데 인의예지 얘기하니까,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다 있잖아요?"

"없는데요" 앞에서 이러고 있습니다.


제가 "영성, 이건 지능이다.

영성 지능이 떨어지면 이런 걸 잘 모를 수도 있다니까 조용해지면서


양심 없는 건 안 부끄러워요,

"양심 없으시죠?",

"저 없는데요",

"양심, 요건 안 부끄러운데요" 그거 지능인데요, 그러면 조용합니다.

자기 머리 안 좋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요.


이해되시죠? 지능으로 접근해야 사람들이 좀 뭔가 분발하지 않을까 해서 제가 얘기드린 거예요.

진짜로 지능인데, 지능이란 걸 모르고 양심 없는 걸 자기가 되게 무슨 성공한 뭐 특권을 누리는 그런 그 모습인 줄 알고,

지금 양심 없는 모습을 당연시하는 거요.


"내가 뭔가 남보다 더 우월하니까 양심 어기지" 이런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제가 단언컨대 머리가 딸려서 그러는 겁니다.

머리가 딸려서. 남들이 뭐 그 무슨,

남들은 뭐 비굴하게 뭐 예절 지키고 있는지 아세요? 배려 더 해주는 거예요.

머리가 있으니까


"요렇게 하면 저 사람 기분 안 좋을 텐데" 해서 맞춰 주는 그 사람이 머리도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남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전혀 계산조차 안 되고 있는 사람이 지능이 좋은 사람이겠습니가? 구분하셔야되요.

머리입니다, 머리.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머리가 밝아져야 된다" 그럴 때 그 머리는 영성 지능을 말해요.

"머리가 밝아야 된다" 그래서 "머리가 총명해야 된다".

그 총명은 이렇게 암기잘하고 단순히 이게 아니에요.

요것도 총명하다고 하죠.


우리가 그것은 뇌 기능이 좋다는 뜻이에요.

총명의 핵심은 영성 지능이에요.

그래서 중용에 보시면 총명성지라고 그래요.

총명한 아주 그 총명하고 성스럽고 지혜로운 그 지혜,


예, 그러면 그거는요 총명예지(聰明睿智)입니다.

그게 성인, 성스럽고 지혜롭다는 뜻의 예에요.

그럼요 이 말을 쓸 때 그거는요, 성인을 뜻해요.


성인이 갖고 있는 지혜를 총명예지, 그때 총명이라는 게요,

그 두 가지 의미가 다 가능합니다.


귀 밝을 총, 눈 밝을 명입니다.

귀 밝고 눈 밝다니까 뇌 기능이 좋은 사람들도 총명하다 그래요.

보면 금방 파악해 버린다고요.


뭐, GPS 같은 거, 그냥 내비게이션 그냥 딱 봐도 지금 딱 어떻게 하라는 거구나,

무슨 말이구나 바로 파악해요.

수학 어려운 수학 문제나 퍼즐을 봐도 금방 풀어요.

보고 들은 거를 금방 이해하고 그 안에서 원리를 찾아내요. 요게 총명하다입니다. 아이큐가 좋다는 얘기죠.


그런데 고전에 나온 총명은 뭐냐면은,

들으그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버리는 거를 총명하다고 합니다.

의미가 완전히 다르죠.


이 총명은 성스러운 여러분의 영성 지능을 얘기하는 거고,

그냥 우리가 흔히 저 사람 박람강기라 그러죠, 많이 보고 많이 기억하고 있다, 들으면 금방 사태를 파악한다,

이럴 때는 총명은 뇌기능이 좋다는 거 칭찬해요.


단순히 뇌 기능이 좋아 가지고, 여러분 IQ 좋아 가지고는

절대 이게 우리가 인격적으로 훌륭하다 말을 못 듣죠.

"참 저 사람 머리는 좋은데" 이런 말 주로 들어요.

"머리는 참 좋은데 성질은 지랄 같다" 이러면 그럼

"아, 내가 머리가 좋아서 그래" 이렇게 사람들이 덮을 수도 있다고요.

"너네보다 머리가 너무 좋다 보니까 말이 안 통하니까 내가 이렇게 성격이 안 좋아진 거야" 이렇게 나오면 어떡하실래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음,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머리 좋은데 영성 지능이 떨어져서 지금 그걸 못맞추고 있다라고 보셔야 되요.


그래서 저는 인성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되게 교육의 핵심이라고 봐요.

지금 인성 교육 필요 없다는 분들도 계세요. 뭐냐면

"학교에서 왜 인성을 가르치려고 하냐, 사람 성격은 개성, 자유인데" 그분들은,

저는요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이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잘못된 인성 교육을 하게 될까 봐.


그런데 본질은, 교육은 우리 동양 교육의 본질이 뭡니까? 인성 가르치는 거에요

소학, 대학의 모든 핵심이요, 소학에 예학, 사어, 서수, 지덕체를 가르쳐서 뭐 해놓겠다는 얘기죠?

인성의 기초를 잡아놓겠다는 거고,

대학은 수기치인할 수 있는 양심을 개발해 놓겠다는 얘기예요.


동양의 모든 교육론은 인성 교육이 본질이고,

지덕체 지혜 교육이 본질이고, 지식 교육은 부수적인 겁니다.

그죠? 영성 지능이 본질이고 나머지 재능은 부수적인 것이였는데

이게 지금 뒤집어져서 지식이 위주가 되고, 이런 이런 지혜에 대해,

영성 지능에서 나오는 그런 더 수준 높은 지혜에 대해서요,

그거는 각자 책임이다 해버리면 교육의 본질을 뭔가 망각하고 계신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다만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을 해야 되고,

저는 어렵지 않다 이거죠. 돈 들여서 하실 게 아니고

양심 노트, 양심 노트 가지고 온 가족이 대화하고 그렇게 살고,

교사가 양심 노트 쓰면서 학생들과 양심 사단에 맞게 대화하고

교육이라는 행위를 하나씩 이렇게 만들어 가시면 그냥 그게 그대로 인성 교육이 돼요.


그러면서 적절하게.

보세요. 양심을 따르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 있겠죠.

고전에서 좋은 정보들이 있으면 적절하게 그 나이 때 맞게 소개해서 그 아이들이 더 깊이 생각하게.


이런 인간관계나 모든 선과악을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정보들을 적절하게 취할 수 있게만 도와주시면서 삶 속에서 이렇게 몰아가면요,

함께 토론해 가면서 부모와 교사가 도와주시는 누구나 성숙한 인간이 나옵니다. 머리 좋은 인간이 나와요.

그래서 예전에 봉우 선생님이 인터뷰를 하신 잡지—어디 잡지 인터뷰한 내용인데—지금 이런 IQ로 생각하고 접근하시면 이해가 안 되는 말씀하신 게 있어요.


"단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집니다." 그래서 기자가 물어보더라고요.

"머리가 진짜로 좋아집니까?" "예, 요즘 젊은이들도 단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져서 나라 위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럼 뭔가 좀 이상하죠. IQ가 좋아졌다고 나라를 이해할 줄 알게 될까요?

뭐, 안 맞잖아요. 그러니 어른이 생각하신 '머리 좋아진다'는 것은 영성지능인 거예요.

지금 용어로 말하면 "머리가 좋아집니다. 나라를 이해할 줄 알게 됩니다."

나라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이해할 정도로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죠.


영성지능이 떨어지면 IQ 아무리 좋아도 이해 못 합니다.

"도망가면 그만이지. 거기 왜 목숨을 걸어요? 취할 거 취하고 빠지면 그만이죠."

이런 내용을 이해를 못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왜 그렇게 독립운동 했는지 이해 못 한다고요.


"나 같으면 이때 친일을 해가지고 취할 거 취한 다음에 저 멀리 미국으로 이민 가서 지금 보면 아주 잘 살았을 텐데, 어리석게 그랬나 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머리 좋은 거냐, 이거죠.


근데 우리 수준들이 비슷하면 그렇다고 생각하고 말을 들었을 때 혹하게 돼요.

우리도 머리가 지금 안 좋으니까 곧 말을 들으면 자극받는 겁니다.


그니까 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나오면,

머리가 밝으면 딱 보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이 말이 딱 나와야 되는데 이 말이 안 나와요.


쉽게 계산이 안 떨어져요. 확신이 없거든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확신이 없으시니까 말을 못 하잖아요.


근데 누군가는 확신하고 있다면 그분이 머리 좋은 분인 거예요.

"음악을 들었는데 적어 봐라." 못 적죠. 모차르트는 바로 적단 말이에요, 다섯 살 때부터.


그 확신이 어디서 나오나요? 지능이 좋아서 그래요.

음악 지능이 좋아서. 그래서 이렇게 지능이라고 한번 접근해 보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