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도는 대외적으로는 요동후(遼東侯), 평주목(平州牧)을 자칭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중앙에서의 책봉과 무관하게 왕을 칭했다. 조조는 공손도를 회유하기 위해 공손도를 영녕향후(永寧鄕侯)로 임명했는데 공손도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요동에서 왕이거늘, 영녕향후가 무엇이냐(我王遼東,何永寧也)?"
공손도는 조조가 임명하는 영녕향후를 거부하고 거의 반독립국으로서 당시 중원 세력의 한 축을 차지했을 정도 성장했지만 그가 죽은 뒤 공손강, 공손공 형제는 조조에게 복속되고 손자인 공손연은 결국 위나라에 맞서다가 위나라와 고구려의 협공을 받고 무너지고 말았다.
와 제미나이 무섭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