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 실베 글을 보고 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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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 계층의 대량 개종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정체된 현상을 단순한 '탄압'의 결과로 치부하는 것은 역사적 실체에 다가가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 기독교가 보여주는 폭발적인 생명력과 일본의 침체 사이에는, 사상을 대하는 민족적 태도와 형이상학적 상상력의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유교(성리학)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나, 이를 수용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한국인에게 성리학은 국가를 지탱하는 논리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규정하고 사후 세계와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절대적 신앙’이었다. 반면,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본질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합리주의적 도구’로서 그 기능을 발췌하여 사용했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기독교 수용 과정에서도 반복되었다. 한국인은 성리학을 ‘통째로 삼켰던’ 방식 그대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절대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치환했다. 반면, 성리학을 도구적 지식으로 다루었던 일본인은 기독교 역시 서구 근대화의 한 부속품으로 인지했으며, 그 본질적인 영성이 일본 특유의 실용적 사고와 충돌할 때 이를 삶의 전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일본의 ’무교회주의(無教会主義)‘와 한국의 ‘교회 중심주의’다. 일본 기독교 사상의 거두인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는 서구적 제도인 교회라는 외피를 벗겨내고 일본적 정신과 성서의 진리를 결합하고자 했다. 이는 매우 지적이고 내면적인 신앙의 형태였으나, 결과적으로 대중적인 확산력을 잃고 소수 지식인의 고고한 철학으로 남게 되었다.
그에 반해, 한국은 기독교를 수용하며 그 제도적 형태인 교회를 민족 공동체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유교적 가부장 질서와 권위주의적 구조를 교회 내부에 고스란히 이식하며, 오히려 외부 사회보다 더 강력하고 배타적인 질서를 구축했다. 이는 한국은 기독교라는 강력한 외부 질서를 수입해 그 내부에 유교적 전통과 열정적 신앙을 버무려 넣었음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차이는 ’인지 너머의 의지‘를 상상하는 능력에 있다. 일본인의 사상 체계는 인지적 현실을 토대로 형이상학을 쌓아 올리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서구 기독교의 인지 초월적 절대자를 상상하는 데 있어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했다. 즉, 일본인에게 신앙은 삶의 양식 일 수는 있어도 삶의 절대적 근거가 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성리학적 전통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理)’와 ‘기(氣)’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투쟁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몰입’의 경험은 기독교의 초월적 신 관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토양이 되었다. 이 관점을 통하면,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유교가 가졌던 절대적 원리에 대한 집착과 권위주의적 질서를 기독교라는 더 크고 새로운 그릇에 옮겨 담은 것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한일 기독교 인구의 격차는 단순한 역사적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 즉 사상을 ‘도구’로 보느냐 ‘전부’로 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필연적 귀결이다. 우치무라 간조가 추구한 고독한 진리는 일본의 지적 풍토를 풍성하게 했으나 대중의 심장에 불을 지피지는 못했다. 반면, 한국은 유교적 열정과 기독교적 조직력을 결합하여 전례 없는 종교적 에너지를 생산해냈다.
사상의 정수를 발췌하여 사용하는 일본의 절제미와, 사상을 통째로 삼켜 자기화하는 한국의 역동성. 이 두 가지 태도는 기독교라는 렌즈를 통해 동아시아 사상사의 가장 깊은 층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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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교회를 다 다녀보고 제가 느낀 점을 좀 담았습니다.
안그래도 오늘 주일이라 교회를 다녀왔더니 좀 더 열이 붙어버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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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살아서 정말 좋은 점이 일본에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밤에 도시 야경을 봐도 한국처럼 시뻘건 십자가로 뒤덮히지 않아서 너무 좋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기독교인 숫자가 적어서 정신적 피해 입는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