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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Focus - 중국 위협에 ‘전략적 모호성’ 흔들

중국 남중국해 영해권 주장 도발에

필리핀, 군사기지 4곳 미국 사용 허가

일본 · 호주 등과 잇단 방위협정 체결

말레이는 ‘아세안 일치단결’ 강조

싱가포르, 독일 잠수함 4척 들여와

인니, 초음속 순항미사일 도입 등

대중 방어력 확보 움직임 빨라져

‘실리적 침묵’ 외교정책 변화 주목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하는 국가는 중국이지만, 정작 아세안 국민은 미국을 지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2023년 동남아 현황 보고서에 나온 조사결과다. 실제 아세안 회원국의 정부, 학계, 기업, 언론, 시민 사회 등 전방위적인 분야 종사자 1308명을 대상으로 벌인 이 조사에서 동남아에 경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 및 기구 1·2·3위는 중국(59.9%), 아세안(15.0%), 미국(10.5%) 순이었다. 하지만 미·중 양국 중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국가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61.1%가 ‘미국을 지지한다’고 답했고, ‘중국을 지지하겠다’고 한 이들의 비중은 38.9%에 그쳤다. 이는 미·중 양국이 동남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나온 매우 흥미로운 결과다. 지금까지 아세안의 경제협력은 전반적으로 중국과 이뤄지고 있지만, 미국과의 협력 및 교류에도 긍정적이라는 방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갈등 속에서 침묵하며 실리를 챙겨왔다. 이는 그동안 강대국 간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아세안의 외교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으로 인해 아세안 정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해권을 주장하며 도발을 이어가자, 생존을 위해 자국 수호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균형외교를 이어가던 아세안 국가들에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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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권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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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줄타기는 끝났다?…필리핀이 친미로 돌아서자 흔들리는 아세안 = 아세안 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작점은 필리핀의 ‘변심’이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미국 순방 기간에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친미 선언’을 했다.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2월부터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2월 2일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 내 주요 군사기지 4곳을 미군이 사용하도록 합의하며 미군의 거점을 총 9곳으로 늘렸다. 중국이 필리핀과 미군의 유착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남중국해에서 도발을 이어가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달 “이 나라의 영토를 1인치도 잃지 않을 것이고 헌법과 국제법에 따라 영토 보존과 주권을 계속해서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와 일본과도 방위 협정을 잇달아 체결하고, 지난 12일부터는 필리핀 최대의 군사 기지인 포트 막사이사이와 EDCA 대상 기지 중 한 곳에서 미군과 3주 일정의 합동 군사훈련 살락닙을 시작했다. 필리핀은 미군의 ‘중국 견제용’인 군사기지 4곳의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로이터 통신은 해당 기지가 “필리핀 영토 중 대만과 가장 가까운 최북단 카가얀과 이사벨라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군의 ‘대만 방위 기지’ 역할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필리핀의 명확한 시그널로 이해된다.

필리핀의 ‘변심’에 동남아 국가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미·중 갈등에 대해 일절 언급을 피하며 양국 모두에 인프라 투자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뤄진 마르코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남중국해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아세안 차원에서 먼저 대화하고 중국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고 강조하며 문제 해결에 아세안 국가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포함해 브루나이, 베트남 등 중국과 남중국해 갈등을 겪는 국가들끼리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베트남은 최근 선출된 보 반 트엉 국가 주석이 ‘실용주의자’라고 꼽히는 만큼, 외교 노선이 친중주의 심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남중국해 문제 심화하자 ‘잠수함 열풍’ 시작된 동남아…싱가포르·태국 달려들어 = 최근 동남아 국가들은 해군력과 자국 영해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잠수함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도발을 이어가는 남중국해 논란이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자,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들이 연달아 국방비를 강화하고 방위협정을 맺고 있다. 미·중 간 무력 충돌 시 최소한의 방위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동남아 국가들에 잠수함 보유는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잠수함 전력 확충에 가장 적극적인 동남아 국가는 싱가포르로, 독일 티센크루프사의 218급 잠수함 4척을 들여올 예정이다. 1990년대 스웨덴에서 들여온 중고 잠수함 4척을 운용해온 싱가포르는 2019년부터 독일산 잠수함을 들여오고 있다.

잠수함을 0척 보유하고 있는 태국과 필리핀도 잠수함 도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필리핀은 프랑스와 최신형 잠수함 2척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태국은 지난 2017년 중국 잠수함 3척 구매 계약을 맺었지만, 유럽연합(EU)이 ‘중국 무기 금지조치’를 발동해 중국 잠수함에 들어갈 독일산 엔진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인도산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도입하고, 남중국해 주변 동남아 국가들과의 방위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러시아 합작 방위산업체 브라모스 에어로스페이스의 아툴 레인 CEO는 지난 15일 인도네시아와 올해 안에 최소 2억 달러(약 2622억 원) 규모의 ‘브라모스’ 초음속 순항미사일 구매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의 브라모스 도입 결정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반중(反中) 전선을 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9월 필리핀과 해양 안보 강화를 위한 방위협력 협정을 체결했고, 베트남과 남중국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협약을 타결하며 가스전과 원유 개발에 나섰다. 말레이시아·브루나이와는 올 상반기 중 나투나 제도 인근 해역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추진하고 있다. 친미로 돌아섰다고 보긴 어렵지만, 반중 연대 구축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친미로 완전히 돌아설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향후 누구의 손을 들어주냐에 따라 미·중 간 판세도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큰 만큼, 아세안의 역할에 관심이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의 뒷짐’으로 미얀마 사태 장기화… 새 의장 조코위 리더십 주목

■ 쿠데타 혼란 해법 마련 관심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이 미·중 간 신냉전 시대에서 외교전략 새판 짜기에 골몰하는 가운데,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사태 해결이 지지부진한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2020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자 이듬해 2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수지 고문 등 정치인들을 대거 구금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는 최장 2년간 유지될 수 있다. 이후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군사 정부는 올해 8월 총선을 치르고 권력을 새로운 정부에 이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군정은 쿠데타를 일으킨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지난달 1일 갑자기 국가비상사태를 6개월 연장하면서 총선을 미루려는 의중을 드러냈다. 미얀마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큰 데다 저항이 거세지자 최대한 총선을 미뤄 군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군정 치하에서 치르는 총선은 군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미얀마 군정을 배후에서 돕고 있는 러시아는 총선을 지지한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미얀마 군부와 가까운 중국 역시 사태 해결에 뒷짐을 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세안의 리더십 부재’가 꼽힌다. 아세안은 지난 2021년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특별 정상회의를 열고 미얀마 내 폭력 중단 및 당사자 간 건설적 대화 개시, 아세안 의장 특사의 중재 등에 합의했지만, 사실상 그 어떤 항목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21년 브루나이, 2022년 캄보디아가 아세안 의장국이던 시절에도 미얀마 사태 관련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미·중 간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분열되며 미얀마 군부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미얀마 사태 장기화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이에 올해 아세안 의장이 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리더십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위도도 대통령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아세안 내에 중추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코위 대통령 역시 아세안 사무국에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 사절 사무소’를 설치하고, 아세안 특사 임명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미얀마 문제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태국, 로힝야족이 피신을 가 있는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아세안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회원국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3월 필리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미얀마 군정이 아세안 회원국들과 협력하도록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역내 안정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김선영 기자(sun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