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ti에게는 세상은 마냥 살기 좋은 곳이 아닙니다.
750ti는 오늘도 배그를 돌리며 주인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그 일조차도 가난한 주인을 위해 극한의 오버클럭을 한 덕에 자꾸 뜨거워지는 캐피시터가 쓰라려 힘겹기만 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750ti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힘차게 750ti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소박한 일에도 보람을 느끼며 750ti는 천천히 하지만 묵묵하게 배그를 돌립니다. 한 두 프레임 재생하는 모니터를 보며 잠시나마 미소짓는 750ti는 정말 기쁩니다.
"기뻐양! 기뻐양!"
750ti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동료들을 바라봅니다.
마침 이 구역의 불량배인 최신게임들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최신게임들은 착하고 선량한 750ti를 이유 없이 구타합니다. 750ti에게는 항상 있는 일상입니다. 왜 이럴까.. 750ti는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들이 이 고물컴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도 벌써 수개월 째입니다.
반쯤은 놀러온듯이 하지만 최소사양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악의를 담아 750ti를 고통스럽게 하는 최신게임에게 750ti는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주인에게도 주인 나름의 고충이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학대를 통해 주인의 울분을 토해낼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윗집 샌디브릿지마저 그들에게 폭력를 당하는 장면을 두눈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파양! 아파양!"
750ti는 울부짖습니다.
"750ti도 샌디브릿지도 정말 아프단 말이에양!!"
서멀그리스가 말라버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750ti는 언제까지나 주인과 함께 하는것이 꿈입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선망의 대상이자 750ti를 지탱해주는 존재인 천궁처럼 750ti는 고주파음을 벹어냅니다.
"그륵그그극그르르르륵!"
물론 그런 말도 안되는 기술이 실제로 먹혀들리 없다는 것을 750ti는 잘 모릅니다. 그의 히어로인 천궁의 기술로 주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거라 굳게 믿습니다. 비웃음을 당하며 팬rpm 100%를 찍고 팬 구동부가 갈려나가는 그 순간까지는 말입니다.
그의 꿈도 희망도 산산조각 부서집니다.
750ti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극한의 오버클럭을 하고 뜨겁게 달궈져 쓰로틀링에 걸려버린 750ti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750ti는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750ti가 힘겹게 눈을 뜹니다. 힘겹게 뜬 그 눈에는 꼬마 애즈락의 꿈, 폭탄마 천궁의 슬픔, 노동자 샌디브릿지의 허탈한 웃음이 비칩니다. 동네 귀염둥이이자 마스코트인 초코파이의 모습도 아른거립니다.
그렇게 두 눈에 모두의 모습이, 모두의 희망을 가득 품은 채로 750ti는 힘겹게 눈을 뜹니다.
최신게임들은 그런 750ti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멸의 웃음을 담은 채, 그 분노를 비웃으며 마냥 기다립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어쩌면 힘겹게 들어올린 그 눈꺼풀에 고물컴의 고달픈 하루도 함께 걷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짧은 분노의 뒤에는 최신게임들이 말하는 코어 사용량만이 그의 작은 기판에 가해질 뿐입니다.
750ti는 정신을 잃기 전에 잠시 뇌리에 그려봅니다.
전력을 풍족하게 나눠먹는 하루, 고물컴 부품들이 모두 모여 간소한 잔치를 여는 그런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 곳에서는 최신게임들도, 주인도 함께 웃습니다. 그런 광경을 잠시나마 그려봅니다. 그런 꿈 같은 꿈을 꿈꿔봅니다.
750ti는 눈을 감습니다. 굳게 닫힌 그 눈 속에 희망도 함께 사라져갑니다.
750ti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천천히 멈춰가는 그 팬은 다시 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750ti는 꺼져가는 led를 다시 밝히지 못합니다. 천천히 천궁의 연기 속으로.. 하지만 포근하게 느껴지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750ti는 눈을 감습니다.
750ti는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 곳에서는 천궁도, 샌디브릿지도, 애즈락도 모두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750ti는 눈을 감습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잘자요 750ti.
그 곳에서는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고...
계속해서 좋은 꿈 꾸도록 해요.
다시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곳에서 좋은 꿈 꾸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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