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3년 좀비 데이날. 야구가 몹시 보고 싶어 혼자 포수 뒤쪽 2층에 자리잡고 앉았다. 계단 때문에 세 자리가 있었는데 안쪽에 예매할땐 아무도 없었지만 경기장에 가 보니 노부부가 내 옆에 앉더라. 경기를 보면서도 반응이 없는 분들이어서 어느 팀 팬인지 종잡을 수 없었어.
아무튼 04년 횬다이부터 팬질을 했으나 유니폼 하나 안 샀던 나는 충동적으로 클리닝 타임때 하나 지르고 말았다. 원래 이택근이나 유한준 또는 강정호를 하려고 하다가 유한준은 곧 팀을 떠날 것 같아서, 나머지 둘은 마킹한 사람이 워낙 많으므로 나는 '서동욱'을 골랐다. 따끈따끈한 혀니폼을 입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때마침 봇대 타석이었고, 큼지막한 파울공을 뒤로 날리면서 나는 맨손으로(!) 그 공을 똷 잡았지. 물론 직선타는 아니고 내 뒤쪽에 한 번 크게 튕기고 앞으로 떨어지는 공을 계단 옆에 있는 작은 철기둥-목동 직관러들은 알 거라 생각한다-과 함께 몸을 날려 잡았다. 그 가느다란 기둥이 아니었으면 등 뒤에서 넘어오는 타구…라서 못잡았을텐데, 이것 참 운명적이구나 싶었지. 서봇대 혀니폼을 사입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내게 파울공을 보내주다니! 혀우보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다치지 않았냐고 두 번이나 물어보고, 주위 사람들은 서동욱 혀니폼 입은 사람이 서동욱의 파울 볼을 잡았다고 재밌어했다. 나는 혀니폼을 입고, 그 공을 들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혼자 목동의 베이스를 밟아보기도 하고, 펜스에 몸을 던져보기도 했다. 사인쯤이야 11년도에 거의 다 받아놨기에 별로 아쉽지 않았지만 밤느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서동욱에 줄 서 있다가 짤리기도 했다.
그날 밤 동네에서 쥐빠 셋과 혀빠 하나로 구성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왜 하필 주전도 아니고 큰 인기도 없는 봇대로 마킹했냐 물었을때 나는 자랑스럽게 위 영웅담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공을 주었다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봇대가 친정으로 돌아간다는 발표가 있던 날, 나는 선수를 위하는 구단의 결정에 찬성하면서도 봇대를 마킹한 혀니폼을 어떡할까 고민하게 되었지. 다음날 볼일 겸 동대문에 가서 업체에 맡기려고 하다가 출발 직전 내가 직접 마킹 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틀간 다양한 방법을 써봤지. 물파스, 드라이어, 다리미, 삶기, 세제 풀어서 담가놓다가 빨래하기, 아세톤 등. 모조리 실패했다. 부농부농한 접착제를 없애기 너무 힘들다. 이런 작업속도라면 일 년은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어. 게다가 일부 이염된 부분도 생겼고. 인터넷에서 본 쥐니폼 돸니폼 작업 결과물은 다 쉽게 떨어지던데 왜 혀니폼의 접착제는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그래서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혀니폼은 사지 않을 생각이다. 점점 직관횟수가 줄어들어 작년엔 한 번 밖에 안 갔기도 하고, 이젠 그냥저냥 화면으로만 응원하는 (더이상 호갱은 아닌)일반개인팬으로 돌아가야지.
후- sad. 이러면서 혀모자는 하나 사도 괜찮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하하.
ㅠㅠ
끝에 왤케 슬퍼 ㅠㅠㅠㅠㅠ
슬픈글이다...
끝에 슬프다 ㅜ ㅜ 그래도 괜찮다 야구를 쉬고 싶을땐 쉬어야지 간간이 티비보고 조용히 응원하다 다시 직관오고 싶고 혀갱놀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면 돼~ 동욱이도 기아에서 잘할거고. 야구는 항상 열려있으니 자유롭게 오가라^^ 참, 모자는 살만하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