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글을 쓰면서 들은 곡입니다



저는 1년이나 자리를 비우고 최근에야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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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1년전부터 해리성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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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버렸었고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는 그에게 약1년간 몸을 빼앗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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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그와 저에 대한 얘기를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짧게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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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1년전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골프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유학사기를 당해서 다시 귀국한 뒤 고등학교입학을 준비하면서 프로님과 합숙을 했을 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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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간 몇시간에서 몇일씩 몸을 빼앗겼고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합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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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저는 언제 갑자기 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절망감에 빠져 히키코모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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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걱정시키는것을 원치 않았던 저는 해리성다중인격장애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그닥 좋지 않은 가정형편속에서 골프를 할만큼 프로골퍼라는 꿈이 절실하지 않아서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또래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 때 골프장에서 혼자 외롭게 인내하며 키워왔던 꿈을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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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많은 사람들중 제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세상을 비관하며 서서히 썩어들어가던 중에 저때문에 싸우시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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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미 어린 나이에 저를 너무 내몰고 있다면서 골퍼로 키우는것은 물론이고 유학도 반대하셨었는데 그것이 사기인데다가 돌아온 제가 이렇게 망가져버렸으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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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대로 있으면 가정의 불화는 계속 될것이라는 생각에 그 때부터 수많은 거짓말들로 스스로를 속이며 평범하게 고등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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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골프를 하는데다 유학까지 떠났는데 아는 얼굴들을 보면 무너질것 같아서 살던 지역을 떠나 할머니댁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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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거짓말들로 겪지도 않은 일들을 만들어내어 과거를 꾸며내며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는것처럼, 괜찮은 척 하면서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갑자기 몸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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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격에게 전해줄 말들을 빼곡하게 적어서 핸드폰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불안함은 가시질 않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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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달리 아무탈없이 2학년이 된것도 잠시로 그 해 여름 몸을 빼앗겼고 그 뒤로 수차례나 몸을 빼앗겼지만 그는 제가 그에게 남기는 모든 기록들을 무시한 채로 제멋대로 행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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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6시간정도 몸을 빼앗긴 동안 자살소동이 일어났고 몸을 되찾자마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말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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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정상으로 의사가 내린 진단은 꾀병이였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경찰병원에서 뇌파검사를 받았음에도 이상이 없는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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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라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몇번이고 말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끝까지 거짓말할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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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저는 죄송하다는 말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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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수차례나 몸을 빼앗기고
다른 인격은 저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검사결과는 정상으로 나와서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점점 미쳐갔고 이런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게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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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몸을 빼앗기는 시간은 길어지고 주기는 짧아져서 제가 몸을 점유하는 시간이 더 짧아졌고 오히려 몸을 빼앗긴 동안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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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한 상태로 시간은 흘러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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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달간 몸을 빼앗긴 뒤 돌아왔을 때는 자취를 하면서 대학교를 다니던 중이였고 이미 모든것을 놓아버린 저는 학교에 가지 않고 틀어박혔고 제가 걱정되어 저를 찾아왔던 아마도 대학의 동기나 선배로 보이는 사람들을 문전박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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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은 어머니가 저를 데리러 오셨고 그대로 휴학을 하면서 다시 히키코모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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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해에 징병통지서를 받았고 1급현역판정을 받고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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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에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훈련소에서 내 행동이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피해가 갔기 때문에 적당하게 열심히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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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빼앗기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그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아서 병장까지 별 탈없이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선후임간부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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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역을 한달앞두고 나간 휴가의 마지막날 복귀전에 아버지가 병원으로 불렀었고 아버지가 췌장암3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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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별거중이시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간호해줄 사람이 친척들밖에 없었는데 간호를 매일 해줄 수 있는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중대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아껴두었던 연가박치기로 다시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를 간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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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정도 아버지를 간호하고 끝내 어머니에게 알린 뒤 부대로 복귀하였지만 저는 그대로 미쳐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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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을 차린건 국군수도병원에서 조현병진단을 받고 입원하여 약을 먹은지 몇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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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입원생활을 하고 한달정도 뒤에 의과사로 처리하면서 퇴원하였고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3개월시한부판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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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아버지는 저와 함께 아버지의 지인에게 소개받은 기치료원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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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원장님은 제게 조현병외에도 다른 병을 앓았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을 해달라고 하였지만 저는 없다고 얘기를 하였고 원장님은 언젠가 준비가 되면 얘기하러 와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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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와 달리 아버지는 치료를 받고 건강을 어느정도 되찾았고 시한부판정과는 달리 1년을 더 사셨고 그동안 기울어가던 회사를 함께 바로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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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 저는 몸을 빼앗겼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기치료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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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은 제게 그가 찾아와서 해리성다중인격장애에 대해서 얘기를 하였고 그가 저의 다른 인격이며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하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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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간 치료를 받은 뒤 제가 돌아오게 되었고 원장님은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기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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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핸드폰에 많은 것을 남겨두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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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제가 10월말에 써서 올리려고 했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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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아직 다듬지 않았고 다 쓰지 않았지만 1년전아기로켓단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을 때부터 윤곽을 잡았던 것으로 자기자신을 희생한 다른 인격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자신을 약자의 입장에 두면서 제가 이룬것들이 대단해보이게끔 만들기 위해서 정신병은 이미 완치수준까지 왔음에도 미친척을 하며 벌인 사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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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글을 적으면서 다른 인격이 있는것을, 그 인격이 이야기속의 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구상하면서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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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미 사회적 최약계층인 정신병자인데도 거짓말을 하려고 했었던것은 제가 정신병자임을 말하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하는 저의 추악하고 나약한 면을 감추기 위함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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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년전 정신병을 얻었지만 힘들게 살고 있는 아무개들처럼 왕따를 당하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거나 지체장애인이 되는 등등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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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가 말도 안되게 나약했기 때문에 별거 아닌 일에도 병을 얻은 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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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가 진짜 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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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거짓말을 한것은 초등학생 때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로 사람들의 생각을 곧잘 읽었던 저는 아버지가 제가 골프선수가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있다는것을 눈치채고 골프선수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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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골프가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인생을 바칠 정도는 아니였으며 단지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했었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을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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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학교친구들과는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어울릴 수 있게 되고 연습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라운딩성적이 언더를 기록할만큼 실력이 올라왔고 학교성적도 모두 수에 평균이 95점밑으로 내려가지 않게 유지했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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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대회에서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해서 실수를 하여 대회성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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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는 한가지 더 욕심을 내었고 그것이 미국유학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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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눈치챈 저는 가고싶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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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그곳에 저는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공허해져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고 주변에서 원하는 저의 모습을 읽어내어 그대로 행동하며 살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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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유학사기였는데 유학비용의 대부분이 친척의 도움으로 만들어진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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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제가 짊어진 심리적 부담감은 더욱 커져갔고 이제는 연습라운딩에서도 실수를 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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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끝내 성공하겠지만 그것은 꿈이라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로 저에게는는 그것에 인생을 내걸만큼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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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정신병자인것처럼 연기를 하기 시작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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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던대로 저에게 내비치던 무거운 기대감은 사라지며 골프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온갖 거짓말들로 스스로를 숨겨가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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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윗글에서처럼 정신병자를 연기하며 위클래스를 병행하며 고등학교생활을 하다가 대학을 가고 히키코모리가 되고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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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는 저의 행동하나하나가 그곳의 일원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그래도 책임감이 강했던 저는 제대로 된 군생활을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고 70kg대의 포신을 혼자들어야하는 4.2인치보직에 적응하지 못하여 폐급소리를 듣다가 어느순간부터인가 선후임간부에게 인정받는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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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병장이 되었고 전역을 한달앞두고 나갔던 휴가에서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연가박치기로 다시 나간 휴가복귀 이후 저는 제가 온갖 거짓말들로 도망치고 있을 때 제가 짊어져야할 책임을 부모님이 대신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해 책임감과 자괴감에 짓눌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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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걸 견뎌내고 전역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겠지만 한심하게 나약했던 저는 견디지 못하고 자괴감에 미쳐버렸고 조울증진단을 받으며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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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고 제정신을 차렸을 때 여기서 제가 무너져내리면 안된다는 책임감에 퇴원을 위해 약효가 가장 강하게 들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오전오후에 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약효가 약해지는 3시쯤부터는 광기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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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담당의사에게 아버지의 병환과 그간의 행동이 적혀있는 관찰기록들을 근거로 퇴원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하여 1달만에 퇴원을 하고 군대는 의과사로 불명예전역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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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찾은 곳은 저의 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한 원장님들의 세미나였고 저에게 맞는 약물과 치료방법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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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찾은곳은 아버지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기치료원으로 그곳을 다녀올때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저또한 치료를 받으며 정신이 맑아지는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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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끔 광기가 내비칠 때는 현실에서 미치지 않기위해서 이곳 섀도우버스갤러리에 핸썸어썸레이썸과 아무튼로얄약함으로 뻔뻔하게 쏟아내면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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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드림투어와 점프트어라고 불리는 수십개의 KLPGA2~3부리그를 개최하였고 마지막으로 1부리그를 하나 개최하면서 아버지의 병환으로 기울었던 작은 회사는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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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뒤 저는 다시 미쳐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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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때의 기억은 약에 취해서 엉망진창이여서 어떤 순서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운이 좋게도 코로나때문에 입원을 피할 수 있었고 기치료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저의 상태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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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의과사를 하고 1년반이 지난 작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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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완전히 망가져버린 어머니의 정신상태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를 몰아붙이는 친가친척들이였고 우리가족을 옭아매려는 친가친척들과 대립하기에는 아직 제가 많이 약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과 연을 끊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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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완전히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 작은고모가 대표이사로 되어있는, 제가 사장자리에 오르게 될 아버지의 회사를 포기하였고 그걸로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면 후회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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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거래처들이 지금까지 함께해준 이유는 업계에서 전설적인 아버지의 사업이력과 그 아들인 저의 행보로 생긴 기대감때문인데 그 둘이 없는 회사가 다른 원동력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을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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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사를 와서 프리터로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제가 가장 먼저 하려고 한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것이였고 그걸위해서 비호감캐릭터 아기로켓단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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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적이나 승률은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었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그러니까 대기업직원의 완벽주의와 허무주의에 대한 글들처럼 거짓말들을 조금씩 섞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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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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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 골프를 하고싶다고 말한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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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의 죄악에서 눈을 돌리고 또다시 도망치며 같은 과오를 저지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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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기 위한 저를 위한 글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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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곳에서 광기를 쏟아낼 때 여러분들중 누군가가 여기는 그러라고 있는 곳이니 미안해할 필요없고 힘내라고 말해주었던 여러분을 저는 속여왔고 더 크게 속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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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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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기로 물들어있는 저는 다른 직업이 직업특성으로 사기를 칠 때 혼자만 .직하게 판을 풀어나가는 로얄의 로드를 자칭할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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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직하게 하루1000점이라는 목표를 세워서 그마3등반을 하고 진중하게 생각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정리해서 공략글을 썼던것은 저의 진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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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퇴색되는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정직하지 못하다면 어디서도 정직하지 못할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글을 썼고 이를 받침으로 거짓말로 물들어있는 제 자신을 버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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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짓말로 쌓아올려진 저의 인생에는 이렇게 자신을 내비칠 곳이 없어서 여기서부터 시작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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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랬던것처럼 다른곳에서도 목표를 정하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루어나간다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근접하여있을것이고 그것은 결코 하찮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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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프리터가 되었을 때 목표한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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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꿈이라는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적도 없고 대학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퇴했으니 이것저것 알아보는 동안 돈이라도 모아두자고 생각해서 1년안에 1000만원을 모으는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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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도 모으는것도 힘들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부끄럽게도 그것을 이루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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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은 사회적으로 푼돈에 불과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약하는 생활을 정립할 수 있었고 그것은 지속가능하며 수입이 늘어났을 때 모일 돈은 그보다 클것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행보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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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간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음 목표를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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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이상한 사람이라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업을 구상하고는 했는데 일단 그 중 한가지를 정해서 그것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잡기로 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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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한것은 도심의 교통체증과 인구밀집, 대한민국의 공간적인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사업으로 활용되는것은 게임산업으로 발달한 그래픽기술과 VR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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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술들은 게임에만 활용되기에는 아까운 기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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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괴리감이 적은 그래픽을 구현해낼 수 있다면,
직장인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오피스프로그램들을 연동시킬 수 있다면,
서버에 가상공간을 만들어서 사무적인 공간을 구현할 수가 있다는 말이고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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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사업들은 돈이 되는 사업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떨어져서 공기업으로서 이를 행하거나 국가지원을 받는것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며 제게는 그런 힘도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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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제에는 공상에 불과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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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선 그 사업들의 실현가능성을 제대로 저울질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갖추는것이 첫번째이고 둘째로 그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혹은 추진되는것을 장려할 수 있는 공직에 오르는것을 목표로 삼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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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변화들을 생각 할 때 저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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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건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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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런 제게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것들을 잘게 쪼개고 쪼개어 그것들을 목표로 삼고 하나씩 이루어나가면 언젠간 그 목표에 근접해있을 것이고 어느새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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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생각들은 닿을 수 없는 공상이며 허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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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너를 키우면서 니가 그런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느꼈고 너의 생각들이 그런 생각들이 공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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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걸음씩 내딛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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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겠지만 이 말은 레이섬의 대사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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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의 말을 본받아 이것들을 정직하게 이루어나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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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종목표는 제 주제에는 터무니없겠지만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가장 앞장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직업인 대통령을 목표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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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갈라서 싸우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다면 정당에는 속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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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그럴 힘이 없지만 언젠가 그럴 수 있는 힘이 된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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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저의 부끄러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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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국가의 주요산업들의 시스템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타국과의 외교,무역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국가의 대략적인 역사와 발달산업들을 꿰고 있어야하는 등 다방면의 지식이 필요한데 그것들은 일단 예외로 두고 우선 눈앞의 목표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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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섀버는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려고 할 생각이고 재미있으니까 능력이 된다면 공략이나 영상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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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 고민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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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앞으로 잘봐달라 이런 말을 하려고 글을 쓴게 아닌 단지 저의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쏟아내면서 정리할 수 있는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또 한번 신세를 지게 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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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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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조울증환자와 정직한 로켓단과 역겨운 거짓말쟁이가 있었지만
덕분에 이 셋중 둘을 버리고 정직한 로켓단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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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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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이상한 컨셉도 잡지 않을것이고 닉네임은 핸썸어썸레이썸으로 바꿀것이니 공략을 계속 보고 싶으신 분들은 그 닉네임의 차단을 풀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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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