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보살(tārā; Dölma):
티벳 불교에서 중요한 존재이자 상징으로서 여겨진다. 그녀는 대승불교와 금강승불교에서 여성 형태의 불보살로 나타난다.
티벳불교에서 그녀는 관세음보살의 여성적 측면으로 알려져 있다. 타라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의 눈물이 현신한 존재로서, 지상 생애 동안 타라 보살은 옛 왕국의 공주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멸시와 질시, 배척과 연민, 오해와 미련의 시선(六根)이 단지 축생이나 다름없는 인간들의 불붙은 악행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인간이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의 일류에 불과하였다.
그녀 자신도 그러했으면서.
그녀는 그녀 자신의 육체가 독사밭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얼마나 보잘것없고 정신의 힘과 그 탄성 또한 얼마나 유약한지에 대해서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특유의 맑은 심안을 깨워, 인간의 뿌리 차크라에 존재하는 성욕과 과시욕과 탐욕과… 온갖 번뇌망상이 한 인간을 지배하여 그 자신을 얼마나 스스로에게조차 무책임한 존재로 만드는가를 관조하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철없는 교만과 정당화의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약자의 도덕이었다.
약자의 도덕 끝에는 항상 신들의 세계가 있엇다.
그래서 그녀는 신을 찾았다.
그녀가 찾으려 했던 존재는 대암흑천 시바왕, 그리스도 예수왕, 청정법신 여래왕…
신을 찾을수록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지고, 마음은 더욱 약해져갔다.
그녀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온실 안에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도로 위의 풀꽃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육신의 지병으로 몸이 상하여 고된 혹사를 치르고야 말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눈물과 원망으로 밤을 지새면서도 스스로의 마음과 인생을 되돌아보고야 말았다.
아아! 그녀가 그곳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대로 이미 보리살타, 즉 정견을 지닌 보살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그녀에게 보였던 허위와 거짓의 시선들, 연민과 책임의 시선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책임이 없다. 한번 크게 죽으면(大死一番)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들조차도 하늘이 지상에 내린 보살의 일족들이었다.
하나의 물체에 대해 만화경에 비친 상(相)이 여럿이듯, 모든 것은 이어져 있었고 결국 법신(Dharma)이라는 진리의 고요한 일체 안에서 하나일 뿐이었다.
그 빛의 푸른 물결 속에 그녀와 그녀가 알고 또 모르는 이들의 상이 맺혀 있었다. 모든 이들이 이미 존재 자체로 욕망의 덩어리요 헛된 존재들이라 불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허상을 깨고 나오면 모두는 이미 법신의 화신이요 아름다운 보살이었다.
옴 따레 뚜 따레 뚜레 소하
“신들이시여, 나에게 왜 이런 진실을 알려주시는지요?
두렵습니다. 참으로 두렵습니다.”
신들이 답하기를: 찬탄하나이다, 보살이시여. 당신은 그 자체로 거룩한 존재이니이다. 그대 보살의 지혜가 이미 사방에 빛을 발하나이다. 타라 보살이시여,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옴 따레 뚜 따레 뚜레 소하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자, 극락의 여왕이시며, 법신불의 배필인 그대가 아니십니까?
옴 따레 뚜 따레 뚜레 소하
그러니 이제, 보살이 말하기를:
그럼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깨어난 자와 깨어났다고 착각하는 자, 반쯤 깨어난 자와, 깨어나지 못한 자, 깨어나지 않으려 마음의 눈을 질끈 감고 칼을 휘두르며 비틀비틀 나아가는 자가 사바세계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이 다섯부류 중 어느 하나로 특정지어서도 아니된다. 우리 인간은 눈을 깜빡거리며 살아야 낮에 사물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고, 햇빛의 기운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늦은 밤에는 떴던 눈을 다시 감고 무의식의 세계에서 휴식을 취해야 다음 날의 아침햇살을 맞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세상도 이와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은 중생과 만물이 각자의 눈을 감고 뜬대로 받으리라. 그러나 그 자리에는 어떠한 빛도, 어둠도, 선도, 악도 자리 잡지 못한다. 다 제 인연대로 되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애와 마음도 이와 같다. 모든 사람이 마음의 눈을 깜빡이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감았다 떴다 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단 한 장면만을 사진 찍듯이 찍어 판단하지 말라. 우스꽝스럽게 눈을 감은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요, 예쁘장하게 눈을 크게 뜬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함부로 판단짓는 그대 역시 지금 눈을 질끈 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눈을 뜰 때에는 함께 눈을 맞추고, 눈을 감을 때에는 서로에게 자비의 입맞춤을 하라. 그것이 보살의 하늘에서 하는 일이다.
p.s.
보살의 입을 빌려 함부로 삶을 논하는 것만큼 악업을 크게 쌓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분신도 되지 못하는, 일개 중생의 육신을 입은 인간 남성인 제가,
이러한 글을 쓴 것이 타라보살의 거룩한 위신에 되려 흠집을 낸 것이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법신의 화현이요 알파에서 시작해 오메가로 끝맺는 존재요,
한 명 한 명이 타라보살, 관세음보살, 아미타부처, 석가부처의 수족(手足)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 진실일 것입니다.
고승들의 상상력으로 방편을 삼았던 많은 대승경전들과 마찬가지로
이 짧은 글 역시 부족하지만 21세기판에 부치는 한 가지 소박한 영험록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많은 법우 형제자매 여러분들에게 기쁨으로 읽히길 기도 발원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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