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우울증에 약 먹고 하루종일 쓰러져도 보았고
신바람이 불어서 잠못자고 귀신에 홀려도 보았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헤메던 때도 있었죠.
공부는 좀 하는 편이라 음양오행 사주역학도 찾아보고
신점도 찾아다니며 보며
온갖 우주에 관한 과학책도 들여다보며 고민해봤죠.
성경도 읽어보고 금강경 반야심경 약사경 찾아보며
찾지 않아도 찾아지는 시기를 지내고 있네요.
제가 찾은 몇 가지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나누고자
글을 써 봅니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생이든 지은 업에 비하여 목숨 붙여주고 깨닫게 기회주거나 같은 고통을 내려서 벌 받는 정도만 되는 것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용서받고 은혜를 받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티벳사자의 서라든지 불경의 원초사상에서 늘 일지불일지라고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오묘한 세계를 늘 언급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아가 비아에게 지은 많은 업들을 상대 입장에서 느끼는 순간 내가 얼마나 용서받고 지내는지 알게 되더군요.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근거와 선근을 찾게 되더라구요.
나를 용서해주는 것은 절대자이자 피해자 본체이고 커다란 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생각에 힘입어 내 안의 갖은 살들도 용서와 화해로 풀고나면 모두가 조금씩 밝은 법에 다다르겠죠.
약사경이나 대승전의 불법을 듣다보면 선량한 서원의 근원이 그러한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의 흔들리지 않는 숭고한 뜻임을 느낄 수 있었어요. 따라서 기독교나 불교에서도 그 뜻에 귀의하여 아상을 지우고 보살도의 장에 올리는 것이 내 안의 성령이든 불심을 느끼는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기쁨이란. 나의 업을 반성하며 지은 업보에 비하여 받는 용서를 인지하여 늘 감사하자. 감사함으로서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미 그런 보살도를 행하신 부처님과 신령들의 뜻에 귀의하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고 노력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나이 32살 남자가 이런 얘기를 어디 할곳도 없어 혼자 생각에 잠기다 지나가다 한 번 글을 써 봅니다.
신바람이 불어서 잠못자고 귀신에 홀려도 보았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헤메던 때도 있었죠.
공부는 좀 하는 편이라 음양오행 사주역학도 찾아보고
신점도 찾아다니며 보며
온갖 우주에 관한 과학책도 들여다보며 고민해봤죠.
성경도 읽어보고 금강경 반야심경 약사경 찾아보며
찾지 않아도 찾아지는 시기를 지내고 있네요.
제가 찾은 몇 가지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나누고자
글을 써 봅니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생이든 지은 업에 비하여 목숨 붙여주고 깨닫게 기회주거나 같은 고통을 내려서 벌 받는 정도만 되는 것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용서받고 은혜를 받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티벳사자의 서라든지 불경의 원초사상에서 늘 일지불일지라고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오묘한 세계를 늘 언급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아가 비아에게 지은 많은 업들을 상대 입장에서 느끼는 순간 내가 얼마나 용서받고 지내는지 알게 되더군요.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근거와 선근을 찾게 되더라구요.
나를 용서해주는 것은 절대자이자 피해자 본체이고 커다란 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생각에 힘입어 내 안의 갖은 살들도 용서와 화해로 풀고나면 모두가 조금씩 밝은 법에 다다르겠죠.
약사경이나 대승전의 불법을 듣다보면 선량한 서원의 근원이 그러한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의 흔들리지 않는 숭고한 뜻임을 느낄 수 있었어요. 따라서 기독교나 불교에서도 그 뜻에 귀의하여 아상을 지우고 보살도의 장에 올리는 것이 내 안의 성령이든 불심을 느끼는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기쁨이란. 나의 업을 반성하며 지은 업보에 비하여 받는 용서를 인지하여 늘 감사하자. 감사함으로서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미 그런 보살도를 행하신 부처님과 신령들의 뜻에 귀의하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고 노력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나이 32살 남자가 이런 얘기를 어디 할곳도 없어 혼자 생각에 잠기다 지나가다 한 번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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