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어느 늦은 봄날 같은데 그때 상황이 누가 버린지도 모를 걸레짝 보다 쓸 곳이 없겠구나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비관적이었읍니다.

재수 실패 > 도피성 군입대 > 전역 후 생활비 벌러 알바 시작 과 동시에 망하거나 가게에 불이 나거나... 해서 오래 다녀봐야 두 달 컷ㅡ트...

크리를 연속으로 맞으니 돈 없는 젊은 청춘을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기에 시골집에 잠시 내려와 면허나 따자 싶었죠.

그러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들어가게 된게 면사무소 민원실 사무보조 였는데 이게 14년 간 목 메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읍니다..

한 번 발을 들인 민원실에선 별의별 일이 다 있었죠.
정신병이 있는 환자가 와서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고 담당자 없이 민원실을 지켰던 약 달 반, 여직원 간의 기싸움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일 그리고 지금은 아예 도로명 주소를 쓰지만 그땐 지번 주소를 도로명 주소로 바꾸는 사업이 있었는데 이걸 하면서 온갖 스트레스에 전립선염 까지 얻어 정말 인생에 현타가 오더군요.

3년 6개월 동안 민원실 근무를 하면서 얻은건 전립선염 후유증, 그리고 월급은 83만원인데 지역상품권이 30맨원... 으로 버텨야 했던 빈곤한 기억만 가진 채 떠나는 절 아쉬워 하는 분들을 뒤로 하고 그 해 여름 해안가 쓰레기 상하차를 시작합니다.

이게 또 약 11년 동안 띄엄띄엄 하게 되는데 참 욕이 절로 나옵니다.

그 당시 심계장님이 계셨었는데 이 분은 그래도 소싯 적에 좀 치셨던 분이라 그런지 상남자 스타일에 배포도 크고 특히 없는 분들에 대해 인정이 있는 편 이었습니다.

이 분께서 명퇴를 하신 뒤 계장 자리를 이어받으신 분이 김계장님 이신데 이 분이 ㄹㅇ 100% 공무원 마인드의 표본입니다.

1년 연봉 천만원, 그 당시 근처 리조트나 펜션 같은 곳 정직원 월급이 160~170하던 시절 근무일수가 적은 2월 같은 경우 60만원대 월급도 타봤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우리 문크예거 형님의 최저임금 상승 땅고르기에 제 월급은 200이 간신히 넘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니 국밥 한그릇에 맨원 실화냐... ㄷㄷ

그러다 결국 안되겠다 싶어 딱스터콜... 결국 이번엔 공채에 됐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어온 숱한 차별과 그 공무원식 서열질에 한이 맺혀 당해온건 김계장님 한테 쳐맞아 온 세월을 후임으로 들어온 형들한테 술집에서 술병 던지고 술잔 내리쳐서 깨고 화장실 문짝에 구멍 내는 식으로 청구서를 내밀었으니.. 저도 참 인간 되기는 멀었습니다.

허나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건 그 인정해주는게 그리도 어려웠나?
왜 나이 어리다고 잘못은 공무원이 한 걸 내가 망쳐논 것 마냥 날 가지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읍니까?


군청에서 만들어 논 쓰레기 상하차 시스템에 하루 일당 주니까 상관없단 식으로 AI 자동화 생체봇 정도로 여겼으면서 이제 어디가서 호구짓 하지 마라던 네 놈 아가리를 진짜 찢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