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인간을 외부의 강제성으로만 종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담론(가스라이팅)으로 지배하고자 하였음.
그것이 중국의 유교사상을 조선식으로 합리화하고 발전시킨 성리학이었다.
군사부일체 등, 임금은 부모와 같으며 임금을 해하는 것은 부모를 죽인 자와 같다는 기득권의 자기옹호적인 논리를 만들어 냄.
그러나 왕이 제대로 못하고 부모가 제대로 못하면 그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세계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나 또한 내가 남들이 주입한 가스라이팅에 억눌려 살았다는 걸 얼마전 어떤 디시의 여성 유저가 카톡방에 들어와 깨우쳐 주어서 번쩍하고 깨달음.
"전생에 죄를 많이 졌다", "니 인생 니가 그렇게 만든거다", "이유없이 원한귀가 붙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이 모든 것들이 남들이 나를 언제까지나 병신으로 살게끔 만드는 한국식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이었다.
설사 죄를 졌으면 어떤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의지가 나에게는 있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해 외부의 가스라이팅을 나도 모르게 내면화 하고 있었는 지 모른다.
이것이 노비의 자기체념적, 세상순응적 태도이며 사악한 자들이 세상의 자원을 독식하는 데 일조한다.
이 깨달음을 준 디시의 여성 유저는 내가 이때까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였으며 고마움을 다시 전한다.
바로 전에도 내가 썼지만 있는 집 애들은 야자 면제받고 학원에서 미리 유출된 문제를 외워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본다 치면,
피지배층 집안 아이들은 밤 9-10시까지 학교에 붙들려 "무조건 엉덩이 의자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대학가고 배우자 얼굴 바뀐다"라는
조선의 성리학과 다를 바가 없는 담론에 지배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야자라는 것은 지배층이 자신의 자녀들의 경쟁자들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고갈시키기 위해 고안된 제도일 수도 있음.
지금 한국은 이재명이냐 김문수냐로 나뉘어 석전질을 하고 있다.
양자택일을 요구하며 마치 다른 대안은 없는 마냥 몰아가는 것도 한국 지배층의 담론으로 지배하기임.
아마 500년 뒤의 미래인들이 이것을 보면 마치 조선의 예송논쟁 마냥 이해되지 않는 부분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예송논쟁은 조선을 지탱하는 거대 담론의 중요 결합부위와 같았으며 당시 사대부들은 이것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던 것.
조선인이나 현대 한국인이나 담론에 놀아나는 노비였다.
지금도 여전히 언론과 TV에 의해 놀아나고, 진정으로 자유인이 된 적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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