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인신공양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네요
고구려 중천왕때는 사람들이 순장을 자처하자 이를 금했다고 합니다.
인신공양은 신라와 가야에서 가끔 보이던 풍습이라고 하네요.
한반도 무속은
소규모의 공동체가 각기 산천을 모시면서 다핵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복수 신관 체제를 가졌습니다.
일원화된 교리를 가지는 대신 각자 공동체가 다른 교리를 가졌고
그 중 일부가 인신공양 풍습을 가진 듯 합니다.
불교 도입이 되고 나서 적극적으로 사라진 악습입니다만
인신공양이 무속의 기원인 것은 아님을 알아주세요. 무속의 기원은 산천, 나무, 하늘 숭배가 원형이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단군의 명령이었습니다.
다만 불교 도입 전에 우리 주변의 악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 못한 죄가 있네요..
고구려가 인신공양하는 신라를 벌했어야 했는데.
나쁜 풍습이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말립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인신공양하려다 야훼가 금했는데, 금했으니 있었다는 논리면 유대교도 인신공양을 한게 됩니다. 고구려 옆이 순장하던 중국이었음을 알아주세요
@응애 아뇨... 유대교도 산천과 하늘숭배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훼가 모세에게 처음 모습을 보일 때 불타는 떨기나무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산천숭배=인신공양이라는 논리는 오류가 있어 보입니다
@응애 말씀드렸듯이 복수신관체제라, 오늘날 허주잡귀라 불리는 자들을 고대 무속이 믿고, 인신공양한 것을 우리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넋을 빌고 아파하겠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악을 멀리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속이 악은 아닙니다...
@응애 네... 고구려도 옅에 순장하던 중국이 있어서요.
@응애 응애님, 욕설좀 멈춰주시지요. 종교에 귀의하신 분께서 계속 욕하신다면 자신의 종교를 먹칠하고 계십니다.
@응애 네 그렇습니다만 고구려도 인신공양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신라의 악습을 막진 않았지만요. 무속의 복수 신관 체계를 이해해줬으면 해요.
@응애 아뇨, 자연물숭배와 인신공양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유대교도 자연물 숭배의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초기 야훼는 소금산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고등종교가 반인신공양 사상을 가져서 고등종교가 되었지만, 그 반인신공양을 무속도 가지면 되요.
@응애 인신공양 하지 않던 무속도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안하고 있는데 욕하지 말아주세요
@응애 자연물 숭배=인신공양이 아니라니까요... 선생께서 지금 타종교를 비방하고 계십니다.
@응애 인신공양은 제사의 방식이고, 자연물 숭배는 신앙의 종류입니다. 둘이 결합한 종교도 있지만, 멀리한 종교도 있습니다. 한반도 고대 무속은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복수 신관 체제였습니다. 신라는 인신공양을 했지만, 고구려는 하지 않았다 해요. 저희는 저런 허주잡귀 신앙을 지금은 알지만,막을 수 없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것이 죄이고, 무속의 일부가 인
@응애 인신공양을 하여 희생당한 넋을 기립니다. 하지만 선생의 시선과 달리 무속은 일원화된 시조를 가지지 않았을 뿐더러, 시조를 정한다면 나오는 단군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길 바랬던 분이심을 알아주시길 바래요
@응애 저는 이만 일을 해야해서요. 이제 대화하지 못하지만, 응애님 샤먼과 무당을 혼용하시고, 인신공양과 산천숭배를 혼용하신 걸 속으로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응애님도 타종교에 대한 비방으로 속상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속도 그러합니다
@응애 1. 사료상의 직접 기록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구려 제천행사(동맹, 영고 등)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인신공양을 명시한 부분은 없음. 주로 동물 제물, 곡물, 술 등이 제수로 등장합니다. 중국 사서들: 《위서》, 《후한서》 등 고구려 관련 기록에도 인간을 제물로 삼았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음.
@응애 즉, “고구려가 제의에 사람을 바쳤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는 게 현재까지의 정설입니다. 고구려 안했대요. 응애님... 그말 응애님께 하는말이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