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A를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B를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진격거의 전반적인 연출 방식임.


작품이 에렌의 악행을 미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에렌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으며 대학살을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함.


그러나 캐릭터의 입장과 작품의 시선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둘은 분리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음. 실제로, 이 작품에서 대학살은 잘못이라는 주요 인물의 입장과 에렌의 최후를 조명하는 연출 방식에는 심한 간극이 있음. 


만약 작품의 후반부가 제노사이드 비판에 주안점이 있다면, 피카레스크물처럼 에렌의 주관적 동기에 대해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요소들을 배제하고 최대한 건조하게 서술했어야 함. (예를 들어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정의로운 검사였던 하비 덴트는 극 후반부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계기로 빌런으로 타락하지만 여기에 감성적 연민이 개입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음)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정반대의 연출 방식을 채택함. 에렌의 최후를 앞두고 시조 거인의 좌표 능력은 주인공 에렌을 위한 '자기고해의 장'으로서 기능함. 미래를 예견한 에렌이 느꼈을 고독감,  미카사를 향한 애틋한 사랑, 조사병단 식구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의무감 등을 감성적인 내레이션 및 음악과 함께 아르민에게(= 사실상 관객에게) 고해성사하며, 줄곧 주인공 에렌의 시점에서 대서사의 여정을 함께 해왔던 관객 입장에서 에렌의 선택에 대한 감정적 지지를 철회하기 어렵도록 유도하는 연출법을 씀. 여기에 더해 운명론적 세계관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가능성들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에렌의 선택에 여러 참작 사유가 있음을 강조함. 에렌의 땅울림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청자가 많은 것도 이러한 연출의 효과라고 생각함.


작품이 마레와 엘디아 사이의 관계에서 엘디아 편향적인 시선을 취하고 그것을 은근히 주입한다는 것은 마레와 엘디아의 입장 차를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  그중의 하나가 마레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화자는 대걔 엘디아를 대변하는 화자보다 논리적으로나 인품적으로 덜 지지받을 만한 인물을 채용한다는 사실임. 대표적으로 카야와 가비가 대립하는 레스토랑 씬. 여기서 가비는 전쟁범죄의 책임 주체를 국가가 아닌 민간인으로 확대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억지 주장으로 일관하는 비호감 캐릭터로 그려지고 엘디아를 대변하는 카야는 비교적 성숙하고 논리정연한 주장을 펼침.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언제든 땅울림을 할 수 있다는 군사적 위협까지 가한 엘디아가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방어적 태도로만 일관하는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할만한 논리적 캐릭터가 비중있는 화자로 채용되는 일은 작중에서 없음. 엘디아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적 공백은 엘빈이 평생을 매달릴만큼 굉장히 중요한 미스테리로 다루어지지만, 막상 진실이 밝혀지고 난 후에 학살의 과오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어 버림. 심지어 일반 민간인도 아니고 군 간부인 한지는 1700년 전의 일이 뭐가 중요하냐는 발언까지 하는데 작중에서는 쓸데없는 일로 싸우는 멍청한 사람들에게 가하는 사이다 일침처럼(...) 묘사됨. 거기다 극 중에서 마레인과 엘디아인의 갈등은 엘디아인이 먼저 관용을 베풀고 마레인이 그에 감화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구조를 반복함.


마레와 엘디아의 학살 묘사도 상당히 비대칭적임. 마레에 희생된 엘디아인들의 고통은 매우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묘사되는 반면, 그 증오의 시발점이자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엘디아 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시조 유미르와 엘디아의 과거사를 밝히는 과정에서도 '사랑을 이용당한 불쌍한 여자 유미르'의 이야기에 집중할 뿐 유미르의 사유하지 않는 복종으로 인해 죽어나간 대륙인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 증오의 연쇄는 수천년에 걸친 엘디아의 학살(A) ‐ 마레의 파라디섬 학살(B) -  에렌의 대륙 학살(C) 순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작 A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건너뜀으로써 시청자가 화면으로 경험하는 것은 B-C에 불과하게 되어 증오의 연쇄 과정에서 A-B의 인과관계보다 B-C의 인과관계에 더 주목하기 쉽게 됨. 

 

결국, 이 작품에서 "증오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는 도덕적 구호는 전범을 미화하는 연출적 문제점과 맞물려 정치적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양비론을 펴는 것에 불과하며, 인류의 80%가 짓밟혀 죽은 후 땅울림을 주도한 파시즘 정권에 평화사절단을 보내는 전후 세계만큼이나 현실감각이 없음.





+ 전쟁범죄에 대한 정말 깊이 있고 잘 만든 걸작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면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 이 영화 ㅊㅊ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