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시대라 불리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일본 사회는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갖게 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권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일본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문화수준은 나날이 높아져갔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일본 음반사들은 해외의 프로듀서와 최고급 장비를 도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버블시대 특유의 자본력과 그를 바탕으로 구축한 음악적 인프라는 일찍이 핫피 엔도의 흥행이 입증하듯 자연스럽게 일본 가요 전체의 질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 가요계의 프로듀싱 능력도 진일보하게 된다.[1]
이러한 기조가 절정에 달할 시기, 일본 가요계에는 AOR[2]로 대표되는 영미권 대중음악계의 최신 유행 장르들, 곧 재즈, 펑크, 디스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3] 실제 당시 일본 음악계에서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펑크, 퓨전 재즈 분야의 유명 뮤지션들을 일본으로 불러와 자신들의 음악 작업에 적극적으로 세션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이런 퓨전 재즈의 장르적 문법을 기반으로 신디사이저와 전기악기, 이른 시기의 디지털 음악등을 기반으로 짜여진 그루브한 진행의 일련의 곡들이 점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도쿄 등지의 대도시권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냈다. 이것이 이른바 '시티 팝'으로 이름붙여진 음악적 사조의 등장이다.[4]
한편 한국에서는 '시티 팝'이라는 말이 언론이나 네티즌들에 의해서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이전의 과거 데이터 베이스를 뒤져봐도 '시티 팝'이라는 말을 가게 간판 이름 기사 하나 빼고, 단 한 건도 발견할 수 없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시티팝이라고 검색을 해도 7개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극히 적었다. 이러한 시티팝에 대한 규정은 2017년부터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예전에도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한국의 뮤지션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지만, '시티 팝'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으며, 자신들이 하는 그런 음악을 시티 팝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한국 대중 음악가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음악적인 원류를 미국에서 유행하던 펑크, 퓨전 재즈, 블루 아이드 소울 등에서 찾았던 것. 일련의 장르에 대해 '시티 팝'이라고 부르게 된 유행은 201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일부 네티즌이나 앞서 설명한 몇몇 언론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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