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가 통일된 이후, 당시 고구려는 영양왕의 중흥기 아래 다시 예전 수준의 국력을 수복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고구려 판세)
(단, 이건 최전성기 시절이고 6~7세기에는 지두우 지역(내몽골) 쪽은 소실하고 실위부락의 상당수도 돌궐에게 넘어간 상태+한강은 신라가 먹은 상황임. 6~7세기에 간접통치구역 포함한 지도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이거 씀.)
수문제:고구려 니놈들을 내가 오늘 단죄하러 왔다.
수문제:옛날에 우리 북위가 북연 멸망시키려고 군대로 쳐들어갔을 때 니들이 어떻게 했지?
영양왕:군대 보내서 니들 기세로 눌러버리고 용성 먼저 따버렸지. 그리고 풍홍도 깝치길래 목 따버렸는데?
수문제:우리에게는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은?
영양왕:있겠냐?
수문제:그리고 너네나라 임금을 뭐라고 하지?
영양왕:태왕. 왕은 격이 떨어져서 새로 팠다.
수문제:연호도 니들이 만들어 쓰고, 제후왕도 니들 맘대로 책봉하지? 저새끼들이 너네를 뭐라고 부르는지 볼까?
돌궐:뵈클리 카간(고구려 황제라는 뜻, 돌궐제국 비문에서)
영양왕:그래서 어쩌라고?
수문제:지금부터는 중화질서를 강화할 거임. 너도 이제 종속국으로서 다음의 요구사항을 해라.
(1)고구려왕이 수나라에 신하로서 조공을 바칠 것.
(2)요서에서 패권 반납하고 우리에게 붙는 거란족 탄압하지 마라.
(3)조공을 거역하면 우리 황족 중 1명을 너희 왕에 앉힐 거임ㅇㅇ
영양왕:시발 그게 되겠냐? 씹선비 새끼야?
수문제:개 씨발련이 끝까지...
영양왕:임유관에 군사 '넣을게'
임유관(현 산해관)의 위치
수문제:야이 개 씨발련아!!!!
법정 백과사전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배경설명
전쟁의 원인은 수의 대외적인 팽창 정책에 있었다. 581년(평원왕 23)에 건국된 수는 돌궐(突厥)을 격파하고, 이어 589년에 남중국의 진(陳)을 멸망시킴으로써 300여 년간 분열되었던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에 동아시아 국제 정세는 그 전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5세기 중반 이래 동아시아는 중국의 남북조, 몽고 고원의 유목민 국가인 유연(柔然)과 이를 이은 돌궐, 티베트 고원 서북 지역의 토욕혼(吐浴渾), 동북 아시아 지역의 고구려 등 주요한 몇몇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원적인 세력 균형 상태를 장기간 유지해 오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고구려는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독자적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고구려와 중국 왕조 간에는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가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것은 기존의 다원적인 세력 균형 상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건이었다.
수는 동아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여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국제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도 아래 돌궐을 격파하고 진(陳)을 멸망시킨 수의 차기 침공 대상은 당연히 고구려였다. 진이 멸망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고구려가 곧바로 전쟁 준비에 착수하였던 것은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수는 고구려의 독자적인 세력권을 부정하고 수에 복속할 것을 강요하였다. 수의 세력이 점차 동북 아시아 방면으로 뻗치자, 고구려 휘하에 복속되어 있던 거란족과 말갈족의 일부가 그 영향력에 끌려 수 쪽으로 이탈해갔다. 이런 양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속화되었고 고구려 제국의 해체를 몰고 올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에 고구려는 수에 복속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독자적인 세력권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의 길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고구려는 후자를 택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기존의 다원적인 세력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측과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측 간의 대결이었다. 따라서 이는 양국의 운명을 건 숙명적인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여수전쟁(麗隋戰爭))]
세줄요약
1.고구려가 거란, 말갈, 실위 가지고 제국놀이 하고 있었음.
2.중국이 통일되니 눈치 빠른 새끼들이 통수치고 중국에 붙음. 이걸 고구려가 막음.
3.중국이 "제국 칭호 유지할거면 나랑 싸우든지, 그럴거 아니면 칭호 내려놓고 내 밑으로 들어오든지"이라고 제시함. 여기서 맞짱을 선택함.
결과:수나라가 플래그 잔뜩 세워서 지가 대가리 깨짐.
응 전쟁은 일으킨놈이 개새끼임
사실 수나라전쟁은 고구려가 선빵떄려서 시작함
내말이 ㅋㅋ
팩트)선빵 안쳤으면 헬반도는 짱깨 지방정권됐다
언젠 전쟁 일으킨놈이 개새끼랬다가 갑자기 말 쓱 바꾸노
말바꾼적 없는데? 고구려 개새끼라고 병신아 ㅋㅋ
좆선족 어서오고
예방전쟁 모르냐
2차세계대전도 하도 평화 평화 외쳐대다가 난거다
수문제 당태종도 막은 후손들이 어찌 이리 된걸까 - dc App
백제 신라 흡수통일 못한 국력의 한계임
수나라 당나라 막으면서 국력에 한계가 온거임 고구려 멸망 직전엔 더이상 동원할 군대도 없었댔음
지금 센징들 얘기하는 건데 뭔 헛소리냐? - dc App
심지어 고려 때 까지만 해도 몽골한테 좀 버티지 않았냐?
고구려땐 말할것도 없고 고려때도 동네힘쎈나라였는데 조선 들어오면서 개좆밥됨
고구려는 지금 북한이랑 그 위쪽 북방 민족이라서 전투력만땅임
병신 섬짱깨년 아이디도 조선족스럽네 ㅋㅋㅋ
동네 힘쎈 나라(몽골에 줘터지고 왜구에게 줘터지고 거란에게 줘터지고 여진에게 줘터짐)
조선족은 만주라서 그냥 짱깬데 섬짱깨찾고 있는거 봐선 115.91새끼도 짱깨네
산악지형이라서 창칼기병가지고 나대던때나 살아남은거지
국력한계 치곤 연개소문 자식들이 개판친거랑 부흥운동으로 발해건국까지 간거보면 국력결딴만으로 보기는 힘들지
걍 신라 새끼들이 선 넘은 거지 시발 병신 새끼들 삼국일 때 제일 밸런스 좋은 건데 시발 당나라 끌여 들여서 개병신짓 한 거잖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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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파워 꼬라지 보면 확실히 썩은 게 맞다
이새끼들 보니 진짜 짱깨는 상종 못 할 바퀴벌레들이 맞다.
223 이 새끼는 대놓고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소국인데 왜 숙이지 않냐? 이 얘기만 주구장창 쳐 하고 있으면서 뭔 미래를 못 보니 이런 말을 하노? 전쟁하든가 씹새야 ㅋㅋ
대통령 한명이 병신인데 왜 너까지 병신처럼 굽신대고있냐 추하네 ㅋㅋ
짱깨새끼ㅋㅋㅋㅋㅋㅋ
시진핑 뒈지기전까진 미래고뭐고없는데
저러고 한 30년뒤에 당나라한테 개처럼 멸망 ㅋㅋ
백만명죽여도 짱깨년들 보지에서 인구가 복사되는건 ㄹㅇ 못막음 - dc App
고구려: 선빵
그래서 보급했냐?(못했음) 그러다 망한다(망했음) - dc App
요동을 넘어 요서까지 들어온건 내전중이면 몰라도 통일왕조 중국입장에서는 용납할수가 없지
정보) 당나라는 고구려를 조지고도 만주를 지배하지 못했다. 고구려를 진정으로 조진건 거란임
거란이조진건 발해잖아 - dc App
중국이 무서운건 수나라때 지고 당나라때 계속 져도 기어코 고구려를 멸망시킴
짱
수나라 잘못인지 고구려 잘못인지가 뭐 중요한가? 어차피 중국vs중국 싸움인데
-짱-
시진핑개새끼해봐 - dc App
선족년 지랄났네
ㅋㅋ 재밌노
국뽕이 아니어도 고구려 동네 힘 센 사람 맞지 않냐?
자긴 국뽕 아니라는새끼들 특 국뽕임
진짜 고구려 아니었으면 우린 짱깨한테 흡수당했을듯 고구려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 계보로 현대 한국의 민족성이 이어지니 고구려야말로 진정한 승자라 할 수 있지않을까
언어학적으로도 현대 한국어는 고구려어의 후계자로 봄
ㄴ 신기하노...
ㄹㅇ
고구려 부흥운동 하다가 신라 조정에 의해 검거
중국은 중원 통일하면 항상 우리나라 조졌음 싸가지없는놈들
고구려도 수나라 당나라 잘 막긴 했는데 막느라 국력 다 써서 결국 망한거고
고려는 잘 싸운것도 잘 싸운건데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 얘네 사이에서 라인타면서 깡패짓했고
몽골은 논외긴 한데 그래도 몽골 상대로 잘 버텼고 국가가 멸망하지도 않고 부마국으로 대접 잘 받았음
섬짱깨 좆선족들이 많아봤자 얼마나 하겠노 했는데 이 좆만한 마갤에서도 섬짱깨 선족이 드글드글하네...
고구려는 수, 당 70년 동안 7차례, 10년마다 한번씩 총력전 벌임
고구려 인구 450만 수나라 4500만 인구 최대3프로 동원해 135만 동원하고, 그중 113만 3800명 고구려로 이동시킴. 다른나라는 2프로가 한계인데, 중국만 3프로가능하다 치고. 고구려는 이상하게 쥐어짜내서 20만은 넘게있었단 얘기인데, 대략 전체인구4프로임. 리얼 미스테리임. 수천년후 조선은 임란첫해와 둘째해 17만동원하고, 정유땐 3만이 다임.
고구려에 복속된 거란 말갈같은 유목민족들로부터 정예용병을 끌어다쓰면서 20만 이상의 병력을 운용할수 있었던 듯
이게 동원력의 차이임. 고구려는 산성간 연계방식으로 국토를 방어하느라 지방 성주마다 병력을 거느리는데 중앙에서 병력을 요청하면 각 성에서 훈련된 병력을 차출하기 때문에 십수만의 병력을 즉각적으로 충원할수 있음. 이런점은 고구려의 명맥을 이은 고려에서도 보여서 사서에 기록된 고려의 최대 병력이 40만을 넘긴것만 봐도 알수 있음.
조선은 인구가 1200만이 넘는데도, 상비군 1만유지겨우했음. 그렇다고 예비군들이 잘싸웠느냐 용인전투보면 참 답없다. 그후 전쟁경험 풍부해지고,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만든 조선은 병자호란때 깨짐. 수도 한양이 8일만에 털림. 세금 납부자가 적어 30도 안되 재정이 빈약했고, 군사력은 허약했음. 당장 태종이방원때만 해도 함경도 기병이 2만이있었음
근데 나중에 인조때가면 이괄이 이끈 편곤기병이 1만이 다임. 그 기병이 청국과 전쟁때 쓸 병력인데, 반란으로 도륙나고, 없어짐.그래서 기병이 없어진 조선은 1선은 포수, 2선은 사수, 마지막엔 살수가 청나라 군대를 막는다는 전략을 짜지만 군사훈련 미비로 포수총 못쏴 전멸함. 그때부터 기병막을 보병없음. 참 신라시대엔 당기병 막는 장창부대로 나당전쟁에서 이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