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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게릭(Lou Gehrig)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NO.4

명예의 전당 최연소 헌액자

MLB 단일 시즌 득점 
167 득점 (역대 단일 시즌 득점 2위)

MLB 단일 시즌 타점 
185 타점 (역대 단일시즌 타점 2위)

MLB 개인 통산 출루율
0.447 (역대 개인 통산 출루율 3위)

MLB 개인 통산 장타율
0.632 (역대 개인 통산 장타율 3위)

MLB 개인 통산 OPS
1.080 (역대 개인 통산 OPS 3위)

MLB 통산 개인 만루홈런
23개 (역대 개인 통산 2위)

2130경기 연속 출장 (좌타자 1위)


루게릭은 베이브 루스와 함께
뉴욕 양키스의 
살인타선(Murderers' Row)을
이끌며 뉴욕양키스의 제국의
만들어 갔던 전설적인 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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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게릭(좌) 베이브 루스(우)


하지만 그에게 비극 찾아온다

1938시즌 

루 게릭은 자신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음에도
몸에 피로감이 느껴지고
컨디션의 난조가 계속돼었다
하지만 전반기에서 
성적은아직도 훌륭했기 때문에
문제 없이 넘어갈수있었다
그러나 후반기에서의 실력은
처참했다 
모든 성적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루 게릭은 자신이 나이가 들어
잠시 슬럼프가 온거라 생각하며
1939시즌의 부활을 노리며
운동과 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1939시즌


그의 몸은 더 이상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그는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했고
주루 중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기자들은 그런 
루 게릭을 보며 나이가 들어서 
그런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 상태에서 4월 정규시즌이
시작되면서 루 게릭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분명 배트로 공을 정확히 맞추었지만
공은 뻗어 나가지 못했고 
어느순간 부터는 1루수비 조차
힘겨워졌다 그렇게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던중…

1939년 4월 30일 

루 게릭 앞으로 쉬운 땅볼 타구가 
굴러왔다 원래 라면 매우 쉽게 처리할수있는타구 였지만
이 공을 힘겹게 잡은 루 게릭은 전력을 다해 1루로 뛰어 간발에 차이로
상대를 아웃시킨다 그걸로 공수교대
돼었고 옆 동료가 격려하듯 말했다

"나이스 커버"

루 게릭은 더 이상 자신이
뉴욕 양키스에서 뛸수없다는 것을 
깨닫고 은퇴를 결심한다

1939년 5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경기를
치르기 직전에
루 게릭은 감독 조 멕카시를
찾아가 말했다

"조, 벤치에서 쉬겠습니다."

조 멕카시 감독은 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루 게릭을 설득하고싶었지만
꾹참으며 말했다

 "1루는 너의 것이니 다시 뛰고 싶을 때 언제든 말하라"

경기가 시작 되자 장내 아나운서가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이 막을 내렸음 알렸고
관중들은 루 게릭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그후로 루 게릭이 경기
출장하는 일은 없었다


1939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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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게릭과 그의 부인 엘리노어

루 게릭은 자신의 36번째 생일에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을 
진단 받는다 의사는 곧 루 게릭의 몸은  급격히 마비되여 일어서는 것과 
말하는 것도할수없을것이며 
남은 수명조차도 길지않을거라 진단했다
진단을 받은후 루 게릭은 
양키스가 원정 경기중인 
경기장으로 가 관중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후 기자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나왔다
그때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저의 행운을 빌어주고 
  있지만 저는 죽어가고 있군요."

그리고 다음날 6월 19일
그는 투병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고
6월 21일 양키스는 루 게릭이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음을 발표 하였다
하지만 구단과 팬들은 
루 게릭을 이대로 떠나보낼수없었고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한다




1939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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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와 팬들은 루 게릭을 위해
루 게릭 감사제(Lou Gehrig Appreciation Day)
열어주었고 당시 양키스 스타디움에는
그의 모습을 보기위해 모인 팬들로
가득찼으며 
그 자리의 있던 뉴욕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루 게릭과 관중을 향해

"훌륭한 스포츠맨과 시민의 전형"

이란 찬사를 보냈고

양키스의 조 맥카시 감독은 자신의
아들 같았던 루 게릭에게 

"너는 결코 팀에 방해된적 없었다."

라는 위로를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의 답하기 위해 루 게릭은
마이크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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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제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7년 동안 야구장에 있으며 여러분들로부터 호의와 격려만을 받아 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는 오늘 바로 이 야구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저 멋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걸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전 행운아입니다. 
제이콥 루퍼트와 알고 지내는 
일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야구계 최고의 제국을 만들어낸 에드 버로우 단장은요? 
또 밀러 허긴스란 대단한 인물과 함께한 6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이후의 9년을 함께한 훌륭한 지도자이자, 사람의 심리에도 정통한 오늘날 최고의 감독 
조 맥카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 전 행운아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은 상대인 
뉴욕 자이언츠가 당신에게 선물을 줬습니다. 
이것도 특별한 일입니다. 
또 구장 관리인들과 저 흰색 코트를 입은 소년들까지 모두 트로피를 건내며 당신을 기억해줍니다. 
이것 역시 특별한 일입니다. 
제 편을 들어주시며 자신의 딸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시는 훌륭한 장모님이 계신다는 것도 아주 특별한 일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배울 수 있도록, 또 커갈 수 있도록 본인의 삶을 쏟아 일하시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축복받은 일입니다.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당신이 생각한 그 이상으로 큰 용기를 보여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건 제가 아는 가장 멋진 일입니다.

이런 시련을 겪게 됐을지라도, 
전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누려왔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관중들 박수 갈채를 보냈고
루 게릭은 흐르는 눈물 닦아냈다
그리곤 동료였던 
베이브 루스와 포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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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양키스는 
루 게릭에 등번호였던 4번을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루 게릭은
메이저 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이 
되였다


그후 루 게릭은 
1939년 12월 7일 
역대 최연소 명예의전당 헌액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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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941년 6월 7일 오후 10시 10분

자신의 38세 생일을 17일을 앞둔때

루 게릭은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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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루이스 루 게릭
(Henry Louis  Lou Gehrig)

(1903~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