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님이 쓴 메뚜기 다리 4개가 관용적 비유라는 글 잘 봤음.
부탁인데 할배님이 주장의 근거로 삼은 출처라든지 링크 좀 제시할 수 없을까?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안가고 새로운 의문점들이 계속 생겨나.
노파심에서 말하는 거지만 지금부터 하는 말은 할배님 아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진짜 순수하게 납득이 안가고 궁금해서 의문점 제기하는 거여.
기억날까 모르겠지만 나 한달 전에 할배님이 올린 삼위일체 모순글 보고 삼위일체는 모순이라면서 왜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은 모순이 아니라고 말하는지 이해안간다고 할배님과 논쟁했던 사람임.
그때 할배님이 엄청 화내시면서 스탠포드 철학 백과 사전을 미리 공부하고 와서 반박해도 반박해란 말을 듣고 많이 반성했음. (개인적으로 그때 일은 진심으로 사과함)
그래서 이번에는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할배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출처를 보고 확실히 공부한 다음 내 생각 정리해서 글 올리려구 함.
출처와 근거 링크를 부탁하는 건 이런 이유여.
그러기 때문에 지금부터 하는 건 반론처럼 보이지만 반론이라기보다 진짜 할배님 주장에 대해서 납득이 안가고 새롭게 생기는 의문점을 제시하는 것임.
반론도 제대로 알아야 반론하는 거니까.
우선 할배님 주장에 대해서 납득이 안가고 새로 생기는 의문점들은 할배님 말씀하신 이 부분이야. 우선 할배님 아래 주장부터 먼저 제시
===================================================================================
2. 그럼 "4다리로 기는"은 뭐냐?
이 구절 때문에 무슨 메뚜기 다리는 손으로 치니 마니, 정말로 히브리인은 다리가 4개인줄 알았느니 마느니 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얘기가 나오는데, 애초에 원문은 "네 다리"라는 말도 없어. 그냥 "넷으로 긴다"라고만 나와. "haholek al arba"라고 해서 직역하면 "넷 으로 가다"인데 (손이나 발, 다리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는 것에 주목), 이걸 KJV에서는 going on all fours 로 제대로 옮긴 거고, 저기에서 "넷 으로 간다/돌아다닌다"는 건 당연히 의미로는 "사지로 기어다니다"이지.
근데 저게 정확히 네 발로 돌아다닌다라는 말이 아니라 걍 저 문구 전체가 "기어다니다"라는 뜻의 관용구야. 저거랑 동일한 표현은 오늘날 영어권에도 있어서 지금도 쓰여. 누구보고 "엎드려서 기는 자세 취하라"고 할 때 "get on all fours"라고 한다고. 심지어 한국말로도 그렇잖아? "야, 너 엎드려서 네 발로 기어라"라고 요구할 떄 "아니, 난 발은 두 개 밖에 없는데요?" 내지는 "아니, 정확하게 '두 발 두 손으로 기어라' 라고 말해야죠?"라는 사람 없잖아. "네(4) 발로 가라"라고 하는 거 자체가 짐승이 취하는 것처럼 기어서 가라는 소리니까.
그니까 앞서 말한 "하늘것"은 날아다니는 거고, "땅것"은 기어다니는 거고, "물것"은 헤엄치는 거라고. "걷는" 것은 두 발로 선 인간 뿐인 거고, 신이 창조했다는 각 생물들은 저렇게 각자의 영역에 따라 지정된 모범적 행태에 따라 움직이는 거고, 그 표준적인 행태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제 부정하다고 한 거지. 그래서 물에서도 딱 전형적인 물고기처럼 지느러미에 비늘 있는 것 이외의 것들은 지정된대로 "헤엄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니까 부정하다고 본 거야.
그리고 그런 관념의 연장선상에서, 당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보는 가축들이 소라든지 양이라든지 하는 것들이고, 그것들이 기어다니는 행태는 걍 "going all fours"로 된 거지.
그러니까 관용적 표현에 대해 "왜 여섯 개 다리인 곤충에 대해 네 발로 걷는다고 말하냐?"라는 것은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잘못된 이해야. 그런 측면에서 나온 질럿의 지적들은 옳아.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구체적 구절들 짚어 까면서 "이런이런 과학적 사실과 미부합하니까 모두 날조에 거짓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효과도 없고 그냥 그런 소리 하는 사람만 더 우습게 보이게 만든다고. 적어다고 해당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야. 그리고 그건 기독교인들만의 인식이 아니라 걍 당대 역사적, 고고학적, 종교학적 연구에서 동의하는 것들이야, 대부분은.
========================================================================
일단 우리말에서 "네 발로 기어라"라는 관용적 비유 표현은 사람한테 쓸 때 어느 누구도 두 발 두 손으로 기어라라고 알아듣지 않아.
어느 누구라도 비유적인 말로 알아 듣고 이러한 표현을 자주 쓰니까 관용구가 된거야.
그러나 사람한테 쓰일 땐 비유적 관용구로 이해되는 "네 발로 기어라."라는 표현을 다리도 없는 뱀한테 쓴다면 어느 누가 비유 표현으로 이해할까?
어느 누구든 "저 자식 왜 팔 다리도 없는 뱀한테 네 발로 기어라라는 헛소리 해."라고 미친 놈 취급해.
즉 우리말의 "네 발로 기어라"라는 관용구는 사람한테만 비유적 의미로 쓰이지, 동물한테는 이런 관용구를 전혀 쓰지 않거나 비슷한 말을 하더라도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람들은 이해해.
영어는 더해.
위의 kjv going on all fours 이거 현지에서는 4발로 기어다녀라라는 숙어야.
정확히는 on all fours가 숙어지.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ekw000004830
==================================================================================
on all foursI need you on all fours.
무릎 꿇은 자세로 엎드리세요
On the ground, chimpanzees usually walk on all fours.
침팬지는 지상에서는 네 발로 걷는다.
I think I inherit it from my mother, who, used to crawl around the house on all fours.
저는 저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네 발로 집안을 기어다니곤 했었죠.
====================================================================================
자 보다시피 영어의 on all fours는 사람한테 쓰일 때는 비유적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적 숙어지만 침팬지 같은 짐승한테 쓰일 때는 문자 그대로 네 발로 걷는다는 의미를 가져.
그러니 kjv의 레위기 영 번역도 내가 보기엔 직역이 아니라 의역으로 보여.
왜냐하면 kjv 영 번역의 의미도 넷으로 간다라는 직역이 아니라 영어 사전대로라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네 발로 기어다닌다로 해석되니까.
문제의 레위기 구절이 관용적 비유라면 우리말이나 영어의 4발로 기어다닌다, on all fours라는 관용적 표현처럼 사람한테 쓸 때는 비유적 표현, 동물한테 쓰일 때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해당 레위기 구절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히브리어의 관용적 비유는 다르다고?
다르다면 비록 번역이라 하더라도 문맥으로 비유적 의미인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
당장 우리말 관용구인 "네 발로 기어라"라는 표현도 사람한테 쓸 때 그것이 비유적 의미라는 걸 이해할 수 있고, 동물에게 쓸 때는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는 걸 이해할 수 있어.
어느 나라 언어든 비유냐 문자 그대로 의미냐는 문맥으로 파악 가능하거든.
하지만 레위기 메뚜기 구절이 관용적 비유라면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고 너무 어색해.
문맥상 비유적 의미라는 단서가 해당 구절 앞 뒤 문맥 어디에도 안보여.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어느 누구도 그 구절 표현의 진짜 의미가 관용적 비유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다는거야.
내가 여기 관련해서 울 나라 뿐 아니라 많은 변증 사이트들을 돌아다녀봤거든.
근데 아무도 할배님과 같은 식으로 변증하는 걸 못봤어.
내 입장에서 뭔가 좀 이상하더라구.
미국의 변증론자들은 바이블 오류를 변명하기 위해선 문맥상 비유가 아닌데도 비유라 억지를 부리는 변증을 자주 하거든.
고대 히브리어를 잘 아는 사람들이 없다는 걸 이용하여 히브리어 사전에 명명백백히 나와있는 용례나 문법을 무시하고 번역잘못이 아닌데 번역잘못이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어.
그런데 정말로 "4발로 기어다닌다"로 번역한 원 히브리어가 자주 쓰인 관용적 비유라면 그 인간들 입장에서는 아주 합리적인 변증이자 메뚜기 다리가 과학적 오류라고 비판하는 외국의 무신론자들을 단번에 항복시킬 수 있는 사실인데도 그렇게 변증하는 걸 못봤어.
그렇다면 할배님 말이 맞기 위해서 남은 가능성은 단 한가지 뿐이야.
현대인들은 "4발로 기어라"라는 관용적 비유를 인간한테만 쓰고 동물한테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의사소통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뱀이나 곤충한테 "4발로 기어라"라는 표현을 쓸 때도 현대인과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 의미로 썼다는거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도 납득이 안가는 게 있어.
그렇다면 왜 자유주의 신학 쪽에서는 할배님과 같이 문제의 레위기 구절을 해명하지 않느냐는거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성경을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해.
정말로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동물에게도 "4발로 기어라"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비유적 의미로 사용했다면 고고학적 언어학적 성서학적 문헌적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고 분명히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해당 레위기 구절의 과학적 오류에 대해서 그렇게 해명할거거든.
그런데 내가 검색한바로는 자유주의 쪽에서도 그렇게 해명하는 자료 못봤어.
아니 오히려 자유주의 쪽은 바이블 무류설을 부정하는 쪽이라 성경이 오류가 있다는 증거로 레위기의 메뚜기 다리 4개는 고대인들의 인식 한계가 성경에 나타나있다는 증거 어쩌구 글들만 검색이 돼.
그리고 마지막 내 개인적 의문은 이 부분부터는 할배님이 화내실지 몰라 좀 조심스럽긴 한데 오해는 말고 들어줘.
웬지 할배님 말씀이 비유풀이 이단들이 비유 아닌 성경 구절을 억지로 비유로 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져.
왜 그렇게 느껴졌느냐하면 이것도 메뚜기 다리 검색하다가 알게 된건데 다음의 안티 기독교 카페에서 어떤 비유풀이 이단이 어느 누가봐도 비유법이 쓰인게 아니라 직설법이 쓰인 성경 구절을 비유적 의미라고 우기는 바람에 논쟁이 벌어진 적 있었거든.
그때 어떤 안티 회원이 이런 예화를 써서 조롱하더라.
대충 기억 더듬어가며 구성할게.
==================================================
비유풀이 이단이 어느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종업원은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비유풀이 이단은 여기에 답하지 않고 대뜸 식당 안으로 들어온 뚱뚱한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우와 저 뚱뚱이 봐. 완전 돼지네. 돼지여."
그러자 종업원은 재차 물었습니다.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때서야 비유풀이 이단은 대답했습니다.
"돼지고기 한 그릇이야."
그래서 돼지고기 한 접시 갔다줬더니 이 비유풀이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주문대로 안가져왔다고 막 화를 내니까 종업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분명 돼지고기 주문하시지 않았나요? 그래서 돼지고기 갔다 드린건데요."
그러자 비유풀이 이단은 다음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니가 내 말을 잘못 이해한거야. 나는 방금 식당 안으로 들어온 뚱뚱이를 돼지로 비유하고 그 놈을 잡아서 사람고기로 만들어라고 주문한거야. 문자 그대로 돼지고기를 달라고 한게 아니라 뚱뚱한 사람을 돼지로 비유해서 사람 고기를 달라고 말한거야."
=============================================================================
한마디로 비유와 직설법을 구분못하고 비유가 어떤 건지 모르는 비유풀이 이단의 억지 성경 비유 논리를 박살내는 예화였지.
물론 할배님은 예화랑 다르다고 말씀하실거야.
예화에서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을 쓴게 문제고,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쓴 "4발로 기어라"라는 표현은 동물한테 썼다 하더라도 현대인과는 다르게 비유적 의미로 이해하고 제대로 의사전달하니 문제없다고.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정말로 현대인과는 다르게 그렇게 이상한 비유법으로 의사 소통했다는 게 너무 비상식으로 느껴지고,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진짜로 고고학적이고 언어학적이며 문헌학적인 특별 증거가 필요하다
생각해.
칼세이건은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그랬거든.
나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예화의 비유풀이 이단들이나 할법한 이상한 비유로 의사소통했다는 게 아주 특별한 주장처럼 들리고 아주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 생각해.
한줄 결론 요약: 그러니 할배님 제발 할배님 주장이 일리가 있고 합리적이라는 걸 나타내는 출처랑 증거 제시가 필요하다고 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