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모든 문화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관용구가 있지.
바로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야.
이 관용구에 대해 칼 세이건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라 말한 적 있었지.
정확하게 표현하면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해야 하지만 지구가 돈다는 걸 모르는 고대인들은 이런 잘못된 표현을 오랫동안 관용적으로 써왔다구.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관용구는 지동설이 사실로 밝혀진 현대에도 사람들은 표현을 전혀 고치지 않고 습관적으로 써먹는다구 칼세이건이 말했어.
물론 현대에는 문제의 관용구를 고대인과 다른 의미로 써.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를 비유한 의미로 현대인들은 의사소통하지.
그러나 고대인뿐만 아니라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중근대 시기까지도 사람들은 현대인들과 다르게 문제의 관용구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의사소통했었다.
성경에도 이러한 관용구가 등장하고 이걸 근거로 해서 루터와 캘빈 그리고 갈릴레이를 이단 취급했던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갈릴레이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지.
즉 갈릴레이 시대까지도 사람들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구를 현대인이 비유적 의미로 의사소통하는 것과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의사소통했다는거야.
만일 누가 나한테 와서 옛날 사람들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구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 의미로 썼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음.
"내게는 그러한 주장이 옛날 사람들도 현대인처럼 지구가 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옛날 사람들이 문제의 관용구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현대인들과 똑같이 비유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고고학적 문헌학적 언어학적 증거가 있는가? 내게는 이 주장이 내 차고 안에 용이 있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느냐구?
사실 이 글은 어제 할배님의 메뚜기 네발 관용구 글에 대해 출처 요구 질문을 하면서 추가로 더 쓰려고 했던 내용인데 때마침 일이 생겨서 지금 쓰는 거야.
내가 할배님 메뚜기 네발의 성경 표현은 관용적 비유 표현이란 말을 듣고 딱 떠오른 생각은 위의 예화처럼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구를 옛날 사람들도 현대인과 똑같이 비유적 의미로 썼다는 주장과 같다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무엇보다도 근거부터가 납득이 안갔어.
어제도 했던 말이지만 영어의 on all fours나 우리말의 "네 발로 기어라"나 둘 다 사람한테 쓰일 땐 비유적 의미로 쓰는 건 맞아.
하지만 이 관용구를 동물한테 쓸 때는 분명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진짜 네 개의 발로 기어 다닌다라는 뜻으로 쓰거든.
한국어든 영어든간에 동물한테 쓸 때 절대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 게 "네 발로 기어라"라는 관용구야.
특히 할배님의 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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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게 정확히 네 발로 돌아다닌다라는 말이 아니라 걍 저 문구 전체가 "기어다니다"라는 뜻의 관용구야. 저거랑 동일한 표현은 오늘날 영어권에도 있어서 지금도 쓰여. 누구보고 "엎드려서 기는 자세 취하라"고 할 때 "get on all fours"라고 한다고. 심지어 한국말로도 그렇잖아? "야, 너 엎드려서 네 발로 기어라"라고 요구할 떄 "아니, 난 발은 두 개 밖에 없는데요?" 내지는 "아니, 정확하게 '두 발 두 손으로 기어라' 라고 말해야죠?"라는 사람 없잖아. "네(4) 발로 가라"라고 하는 거 자체가 짐승이 취하는 것처럼 기어서 가라는 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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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히브리어 원문의 표현이 정말로 영어로 번역하면 on all fours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네 발로 기어라"로 번역 가능하다면 문제의 히브리어 원문 표현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구처럼 어느 문화권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도 똑같이 오랜 세월동안 쓰인 관용구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해당 관용구는 고대 이스라엘인들도 현대인과 똑같이 사람한테 쓰일 때는 비유적 의미로 쓰지만 동물한테 쓸 때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구일 가능성이 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야.
왜냐하면 전에 내가 썼던 글처럼 고대의 대단한 현자였다는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착각했던 게 곤충 다리 갯수고 과학의 여명기라는 18세기까지도 사람들이 헷갈렸던 게 곤충 다리 갯수거든.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인들도 현대인처럼 곤충 다리 갯수 잘 아는데 현대 관용어구와 똑같은 관용어구 표현을 비유적 의미로 썼다?
나는 암만 생각해도 이건 고대인들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어구를 현대인과 똑같이 비유적 의미로 썼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예화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 차고 안에 용이 있다라는 것과 동급의 주장처럼 들려.
어제도 인용했던 거지만 칼 세이건은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면서 내 차고 안에 용이 있다라는 주장을 하려면 거기에 걸맞는 특별 증거가 필요하다 했어.
내 기준에는 할배님의 메뚜기 4발로 기어다닌다라는 성경 표현은 관용적 비유라는 주장이 바로 이런 케이스에 해당돼.
아니 나뿐만 아니라 할배님 주장에 단 댓글이라든가 그 외 할배님 주장을 이해못하겠다는 글이 올라온 걸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분들이 여럿 있는거 같네.
"4발로 기어라"라는 관용구를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현대인들과 다르게 동물에 적용할 때에도 비유적 의미로 썼다면 진짜 아주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문헌학적 고고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생각해.
계속 강조하는 거지만 "해는 동쪽에서 뜨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관용구를 고대인들도 현대인과 똑같이 비유적 의미로 썼다는 주장과 동급이니까.
사족: 여담이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할배님이 어떤 출처글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히브리어에도 우리말과 영어의 "4발로 기어라"라는 관용구랑 똑같은 의미의 관용구가 있었다는 자료만 보고 할배님이 오해하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듦.
아마 그 자료에서도 그 현대의 관용구랑 똑같은 관용구가 고대 히브리어에도 있다고만 서술했지 현대의 관용구랑 다르게 동물에게도 무리한 비유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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