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유의지’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정의한다면, 맞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침팬지와 개, 앵무새도 마찬가지이다. 앵무새는 크래커를 먹고 싶으면 먹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앵무새와 사람이 내면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애초에 자신의 욕망을 선택할 수 있느냐이다. 왜 앵무새는 오이가 아니라 크래커를 먹고 싶어 할까? 왜 나는 짜증 나는 이웃에게 다른 쪽 뺨을 내어주는 대신 그를 죽이기로 결정할까? 왜 나는 검은색 자동차가 아니라 빨간색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할까? 왜 나는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에 투표하고 싶을까? 이 소망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내 선택이 아니다. 내가 특정한 소망을 느끼는 것은 내 뇌에서 일어나는생화학적 과정들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들은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일 뿐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책에 나온 글인데 저 사람이 말하는것 처럼욕망이나 본능을 내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조건들은 이미 주어진 상태이지 내 자유의지로 좌지우지 할수있는 문제는 너무나 작다는것.. 현재까지 자유의지의 문제는 결론이 확실하게 난게 없음 만약 자유의지라는게 있다면 그건 주어진 거대조건속에서 미약한 자유의지만 있다..이정도 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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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 대한 생각 남겨주셈. 동의하는 부분, 동의하지 않는 부분 등
내 생각이랑 비슷하네. 물론 나도 유발 하라리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니까 어렴풋하게 흩어져 있던 생각이 완전히 정립된거긴 한데... 여튼 본문에서 반박할만한 부분이 있나? 잘 모르겠군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라고 볼 수 있음. 자유의지 범주를 행동/욕망 으로 이분하고 후자까지 포괄해야 진정한 자유의지라고 주장하고 있는건데,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인간은 감정과 욕구를 따라서만 행동하는 동물이 아님. 또한 욕망이 결정론적이라는 전제를 수용하자면, 욕망은 곧 환경에 의해 촉발된다는 의미가 되는것. 그렇다면 욕망이 내재적인 것인지 외생적인 것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어지고, 욕망은 그냥 영향력중 1 이 되어버림. 행동의 자유 문제에 있어서도 물리적인 영향력1 을 받는다고 해서 그사람의 행동자유가 없어진다고 볼 수는 없음.
욕망의 촉발까지 조절할 수 있어야 자유의지다? 이건 자유의 의미를 확대해석한 재정의의 오류임 보통 자유의지는 초월적인 능력보다는 가능한 선택지중 하나를 고르는 능력을 의미하니까
감정, 욕구 없는 순수이성이 있다면 그 이성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 수 있지?
주사위 던지기? 아무 이정표 없는 갈래길 앞에서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자유를 자유의지라고 본다면야 네 말도 맞기야 하겠다만
감정 없는 순수이성 조건이 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나는 감정이 온전히 결정론적으로 촉발되는 것이라 가정하더라도 그것은 판단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중 하나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는건데... 감정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어야 자유의지? 이건 마치 행위자유에 있어서 100미터를 5초에 뛸 수 있어야 자유라고 부르는것과 마찬가지 비약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