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마트의 슬로프들은 광활한 설원을 가로지르는 느낌이었어요. 그 형태만 놓고보면 레인보우 파라다이스와 유사한, 일반적인 "빅마운틴"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슬로프들이긴 하지만 그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특히 몇몇 슬로프는 1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야 마을로 내려갈 수 있었어요. 나무하나 없는 만년설 빙하 위에서 마테호른을 보며 끝이 안 보이는 슬로프를 내려오면 '자연과 함께 하는 스키가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눈덮힌 한계령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재미있었던것이, 많은 슬로프들이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내려갈 수 있게 설계되어있더라고요. 체르마트 주변엔 여러 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테호른을 향하는 사면 위주로 슬로프들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덕분에 어딜 가도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내려갈 수 있었네요.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의 철로노선설계도 그렇고, 슬로프의 위치선정까지 진짜 자연 관광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아는 스키장이었어요.
(마테호른에 구름이 살짝 덮힌 신비한 모습)
(어딜가도 바라볼 수 있는 마테호른)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체르마트였어요. 스키장의 왼쪽 두번째 봉우리 (Hohtalli)에서 마테호른을 보며 내려가는 슬로프)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슬로프를 빠른 템포로 가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더군요)
(슬로프 하나하나의 길이가 어마어마합니다, 평균적으로 한번 내려오는데 3-4km 정도를 달려야 하고, 일부 슬로프는 11km 가까이 달려야 하는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었어요)
체르마트의 지형 특성과 알프스의 문화적 특성때문인지 레이싱계열 스키가 참 많이 보이더라고요. 체감상 약 70프로 이상은 레이싱 계열 스키가 아닌가 싶었어요. 거리가 긴 정설 슬로프 위주로 운영하기도 하고, 오프피스트 지역들은 지형 자체가 너무 험준하거나 나무가 적어서 프리라이드 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워 보였었어요. 물론 프리라이드/올마운틴 계열 스키가 유의미한 비율로 보이긴 했지만, 북미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비중이기도 했고요. (대략 20프로 미만) 그래서인지 다들 상대적으로 점잖게(?) 스키를 즐기더라고요. 북미 스키어들을 보면 살짝 굴곡만 져도 점프를 해대는, 까불어대며(?) 공격적인 스키를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체르마트에서는 대부분 스키를 슬로프에 착 붙이면서 타는 모습들을 보았어요.
또한 체르마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알프스 스키장들이 슬로프를 운영하는 기준에 따르면 정설구역 경계, 즉 슬로프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식너머는 오프피스트(=비관리 구역)로 간주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슬로프 경계에서 수 미터 이내는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온 자국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너머의 본격적인 오프피스트 구역은 전문 산악스키장비(=아발란치 키트)를 들고 가시는 분들만의 구역이었어요. 북미의 경우 스키장 바운더리 이내는 정설이 되어있건 안되어있건 별도의 표식이 없는 한 모두 인바운드로 간주되고 진입이 자유로운데 비해 체르마트는 다소 엄격한 인바운드 경계를 설정해서 운영한다는 차이가 있었어요. 덕분에(?)
그래서인지 일단 "피스트"로 구분이 되면 정설만큼은 확실하게 해 주더라고요. 북미의 경우 인바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정설한번 없이 운영하는 슬로프도 많고, 또는 어쩌다 한번씩만 정설하는 슬로프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범프스킹이나 트리런같은 다양한 종류의 슬로프를 보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왔어요.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최근 프리라이드라는 스키 장르가 아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인지, 체르마트에서도 제한적으로 프리라이드용 인바운드 슬로프를 지정해서 운영하더라고요. 그리고 난이도 표시도 별도의 색상인 노란색으로 하고 있었어요.
북미 스키장들은 스키를 타는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많이 강조하는 운영을 하는 느낌인데, 체르마트의 경우 스키를 (북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동수단/관광수단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운영하는 느낌을 받았다랄까요? 북미의 스키문화와는 어떤점이 다른가 하나하나 관찰하고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는 여행이기도 했었어요.
(알프스 스키장들의 난이도 표기법, 도형으로 표시하는 북미랑은 달리, 색상으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비정설 슬로프들은 또 별도의 색상으로 구분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도 "노란색" 슬로프들을 운영하는 스키장이 생겼으면 하네요)
(지도에는 이렇게 슬로프번호+난이도색상으로 표시되더군요)
(그 덕분에 피스트 바깥의 파우더가 꽤 오래 남아있었어요. 북미같았으면 진즉에 다 트랙아웃되고 남았을 시간인데 말이죠)
(체르마트 슬로프 특, 이렇게 산 속 마을을 지나가곤 합니다. 실제로 촌락이 형성된 알프스 산 중턱의 마을이고, 여름철엔 이곳에 목장 주인이나 건물 주인들이 와서 생활한다고 하네요. 겨울엔 주로 숙소나 식당으로 사용된다고 해요)
(또 다른 마을을 지나가는 슬로프. 북미나 일본과는 대비되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재미있는 코스를 설치해 둔 체르마트의 터레인 파크. 우리가 잘 아는 레일이나 키커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파크들도 있었어요)
(기문 대신 원형게이트 사이로 통과하는 터레인 파크코스)
(가끔 보면 이건 원래 차가 다니는 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슬로프들이 많습니다. 여름에 진짜 찻길로 쓰여도 이상하지 않은 슬로프들이었어요)
(기찻길 옆으로 뻗은 슬로프. 하행선 시간 잘 맞춰 내려가면 마을로 복귀하는 기차를 바라보며 함께 내려갈 수 있습니다)
(저 멀리 구름이 보이는 멋진 풍경. 고도가 높은 스키장이라 이렇게 역전층이 형성된 풍경도 종종 감상할 수 있었어요)
(눈이 있으면 눈이 있는대로 아름다웠던 상단부였고,)
(눈이 없으면 없는대로 장엄한 풍경을 보여주는 하단부였어요)
... 생각보다 정리할 사진이나 글들이 많아서 한편 한편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이제 한 두세편정도 더 남았습니다 +
· 체르마트의 신기했던 산악운송 시스템 - 2) 지하승강열차와 산악열차
· 체르마트의 아찔했던 산악운송 시스템 - 3) 마테호른 글레이셔 라이드
· 체르마트의 피스트 - 4) 슬로프 표기방식과 운영
· 체르마트의 피스트 - 5) 스키로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을 넘다
· 체르마트 원정기 마지막편 - 6) 산 중턱 마을들과 아프레스키 문화
생각보다 프리라이드가 북미 위주였군요 마을 통과하는 슬로프가 진짜 어릴때부터 타보고 싶었는데 꼭 가야겠어요 ㅋㅋㅋ
체르마트에서는 프리라이드를 타려면 결국 전문장비들을 구비하고 오프피스트로 나가야 하는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정설사면은 단조로울수 밖에 없으니..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간 스키자국들 보면 확실히 북미랑 체르마트랑 사람들이 지나가는 루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북미는 바위같은게 보이면 꼭 누군가가 점프한 흔적이 보이거든요 ㅋㅋㅋㅋ
후기글 잘 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체르마트 가보는게 버킷리스트가 되었네요 ㅋㅋㅋ 꼭 가봐야겠습니다
체르마트 정말 제 인생 스키장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거 같아요! 겨울철 유럽에 들르실 수 있으시다면 알프스 스키장들 진지하게 알아보시는걸 추천합니다!
ssx 게임 생각나네여 잘보고갑니당
ㅋㅋㅋ 추억의 그 게임. 막상 저는 콘솔게임기가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가끔 친구집 가서 신나게 플레이했던 기억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