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에 나오는 그런 인간처럼 지속적인 가정폭력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한번씩 술쳐마시고 터지는 날이 있었고 심할땐 애비가 나 칼로 찌르려고 한적도 있음.그때 여기에 신세한탄 하면서 자취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역시나 독립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음
난 그 조언을 받아들였고 자취라이프가 시작됨
처음 시작은 4평 원룸이었음. 대학다니며 저녁, 주말, 방학때 음식점이나 학교 내부에서 알바를 했음. 대부분이 튀김기를 쓰는 알바라 항상 작업복엔 기름 쩐내가 베어있었고. 공부랑 알바만 하느라 여가는 방구석에서 게임 정도 하는게 전부.
그 방은 빨래도 안마르고 음식냄새도 안빠지고 바선생도 두어달마다 한번씩 마주칠 수 있으며 옥상에서 개가 짖었어
펑펑 울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에 누워있을때마다 서럽긴 서럽더라. 집에서 애비랑 계속 같이 있을 엄마 걱정도 되고. 그래도 집과 군대에서 최악의 상황을 많이 경험해서인지 멘탈이 많이 단단해져서 버틸 수 있었던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흙수저인 덕분에 등록금은 전액 국가장학금으로 충당이 됐음. 덕분에 대학교 포기하지 않고 공부 좀 열심히 하다 보니까 연구실에서 월급도 받고 이런저런 돈이 생기면서 알바도 그만둘 수 있게 됐음.
여유가 생긴 상태에서 급격하게 공부에 탄력이 붙었고 다행히 졸업 직전까지 꽤 괜찮은 스펙과 실력을 쌓게 돼서 결국 좋은 곳에 입사했음.
이후 서울에 살게된 난 주민등록 교부제한 걸고 연락수단 다 차단하며 애비와 연을 끊었고, 엄마는 무사히 이혼에 성공함.
최근엔 신축 역세권청년주택 첫입주를 앞두고 있음... 햇빛이 잘 드는 고층에서 통창을 통해 서울 도시뷰를 내려다보니 4평짜리 햇빛도 못받는 초라한 방에서 서러워했던 시절과 너무 대비돼서 울음이 나올것 같더라.
아무튼 그 당시에 자취에 대해 확신을 심어줬던 자붕이들한테 고맙다. 그때 그 선택 덕분에 답이 안보이던 삶에서 벗어나 가능성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어. 몇 년 후엔 내 집을 처음으로 매매하고 여기에 자랑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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