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인명피해가 많은 대형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가 생존[4]한 덕분에 일련의 전후 상황이 상세히 파악 가능했다. 당시 117호 무궁화호는 전역인 양산 물금역을 지나고 구포역[5] 정차를 앞두고 시속 85km 속도로 해당 구간을 통과 중이었다. 그러다가 사고 지점 100m 전인 덕천2동 빅토리아호텔 뒤 덕천천 앞에 이르렀을 적에 사고 지점 선로의 지반이 무너지는 모습을 기관사가 발견하여 비상 급제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제동거리가 부족했던 탓에 결국 견인 기관차였던 7116호, 발전차와 객차 2량이 무너진 지반으로 전부 곤두박질쳤다. 뒷차량들은 구덩이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탈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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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고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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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는 삼성종합건설의 미허가 구조변경 사실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노반 바로 아래에서 발파, 붕괴되었다.

사고 당일 MBC 뉴스센터의 꼭지 중 하나.철도청의 긴급대책본부 구성을 전하는 기사이다. 58초 경 사고 원인이 ' 우리청과 협의 없이 삼성종합건설에서 노반 25m 지하에 한전 전선관 매설작업 중 노반침하 '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선로의 지반침하, 즉 땅이 꺼진 이 황당한 사건의 원인은 사고 당일 밝혀졌다. 당시 사고현장은 한국전력이 1989년 12월부터 2백억 원을 들여 화명동 북부산변전소-감천동 남부산변전소 간의 345kV 4회선 지중선로 지하전력구 공사현장이었으며 1994년 6월 완공 예정인 곳이었다.[9] 설마설마 했으나 실제로 지반 아래에서 지하전력구 설치를 위해 발파 작업을 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시공사인 삼성종합건설 맘대로.

삼성종합건설이 한 짓만 놓고 보면 영화에서나 보는 열차 테러나 공성전에서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 붕괴시키는 원리와 동일하다. 실제로 공항의 경우 이런 방식의 폭파 테러로 주요 시설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활주로나 계류장 밑으로 지하차도를 잘 파지 않는다. 철도는 중간에 멈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좀 낫지만, 지하차도는 테러리스트가 중간에 잠깐 내려서 폭탄을 설치하고 슬쩍 도망친다면 속수무책이다. 김포국제공항만 해도, 지하차도를 뚫으면 부천까지 5분도 안 걸리지만, 이런 문제로 강서구 발산동 혹은 인천 계양구 상야동 쪽으로 뺑 돌아가는 것이다. 서해선이 여길 지나가는데, 최대한 공항 바깥쪽으로 돌게 공사했다.

실제 발파는 하도급을 받은 한진건설이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삼성종합건설의 지시 하에 일어난 일이라 책임은 한진건설과 삼성종합건설 둘 다에게 있었다. 이들은 철도청과 어떠한 협의나 통보도 없이 공사를 수행한 것이었다.

철도법에는 선로 밑 발파 작업은커녕 선로 주위에 나무도 함부로 못 심게 되어 있다. 선로 지하물의 공사와 설치는 철도청 철도건설창(현 국가철도공단)이 하도록 되어 있다. 즉 시공사가 법을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한 100% 인재였다.

2.3. 사고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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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명의 승객 중 28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후 후속 조치로 선로 30m 근처 공사는 교통부에 신고를 해야 하고 벌칙 조항도 강화되었다.

이 사고로 삼성종합건설 사장 남정우와 김봉업 한전 지중선사업처장 및 현장관계자 허종철 등 공사 관계자 16명이 구속되었으나, 대법원은 회사 임원급 6명에 대해서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버렸고 이들의 뇌물공여에 대해서 집행유예로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사고 이후 연이은 대형참사가 지속되면서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사법기관에서 책임이 가장 큰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관련자 중 남정우 삼성종합건설 대표는 사건 후 삼성신용카드로 전보됐다.

결국 시공사였던 삼성종합건설은 당시 법률상 최고 기간이었던 6개월 영업 정지를 당했고, 해당 기간 동안 국내 수주는 불가능해졌다. 그외에 2550만원의 껌값 과징금을 물었고 6개월 영업정지로 인해 예상되는 수주 손실액이 1조원이었다. 이후 삼성종합건설은 삼성건설로 사명을 바꾸었다가 1996년 삼성물산에 흡수되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됐다. 사실상 이 참사의 영향으로 엄청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내린 그룹 차원의 자구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약
1.삼성계열 건설사(삼성물산의 전신)가 허가도 안받고
지들 꼴리는대로 철도 밑으로 발파작업하다가 철도 지반이 내려앉아서 280여명의 사상자가 생김

2.사고관련자들(삼성건설사) 솜방망이 처벌받고 끝남
하지만 부산사람들에게 이미지가 ㅆ창나서 삼상물산으로 이름바뀜

3.국내에서 더이상 적극적으로 건설사업을 할수가 없어서 해외진출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됨


삼성이 우리나라에 대형사고 친게 몇갠지도 모르겠다 ㅋㅋㅋ
미국이었으면 이미 도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