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만약 5근(根)을 알고 

속세의 근본을 뛰어넘음에 이른다면 진리를 따라 그것을 살핀다.
무엇을 5근이라 하는가?

첫째 믿음의 뿌리[信根]ㆍ
둘째 정진의 뿌리[精進根]ㆍ
셋째 뜻의 뿌리[意根]ㆍ
넷째 선정의 뿌리[定根]ㆍ
다섯째 지혜의 뿌리[慧根], 이것이 5근이다.
마땅히 이런 행(行)을 볼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체 법은 인연에서 일어나 뒤바뀜에 서서 허무와 합하여 이루어져 옮기고 옮겨 일정하지 않음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 끝없이 헤매며, 또한 꿈꾸는 것과 같아서 자연히 물러가 버린다.
일체 법은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임을 믿으며 질병과 상처투성이로 늙어 오래 있지 못하고 오래 머물 수도 없으니 마땅히 다시 이별하여 여의며,
모든 법은 진실하지 않고 모두 실다움이 없으며 황홀하게 놓아 버리되 모든 근(根)을 평등하게 놓아 버린다.
마치 채색한 그림 같고 어린아이의 능력 같고 사상(思想)과 거짓 유희[欺戱]가 진실하다 하여 허황하게 속이는 것을 알지 못하되 다 있는 바가 없다.

그 신근(信根)이란
일체 모든 법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없고 공하여 모양도 없고 서원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행함도 없고 생각도 없고 미혹됨도 없다.
계(戒)도 청정하고 정(定)도 청정하며, 혜(慧)와 해탈로 제도함[解度]도 청정하며, 지견(知見)의 종류[品]도 청정하다.
능히 이 신근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곧 되돌아오지 않고, 독실한 믿음으로 으뜸을 삼고, 금계(禁戒)를 세워서 다 잃음이 없으며 도업(道業)을 어기지 않는다. 잃는 바가 없으므로 곧 정법을 따르며 독실한 믿음에 머물러 동요함이 없다.
선한 덕으로 보응(報應)하면 다 와서 귀의하고 보호하며, 곧은 업[直業:正命]을 세워 아첨함이 없고 모든 사견 예순두 가지의 연(緣)을 끊어 외도의 학문을 찾지 않고, 그래서 스승[師主]이 되니 마치 해와 달을 보는 것 같아 등불이 소용없다.
오직 여래에게 귀의하여 성인[聖衆]을 알고 구족하게 이루며, 청정한 업의 계(戒)를 세워 인욕하고 인화(仁和)하며, 이와 같이 독실하게 믿어 동요하지 않고, 능히 동요하지 않음으로써 깊이 옳은 믿음[義信]을 품어 곧 도법(道法) 갖춤을 믿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정진의 근[精進根]을 관찰한다고 말하며 무엇을 방편을 훤히 알고 갖추어 이루었다 하는가?
만약 보살이 도를 두텁게 하면 어기지 않고 정진하는 까닭으로 5개(蓋)가 휴식하며, 설사 듣는다 할지라도 이와 같이 깊고 미묘한 경전을 우러러 본받아서 부지런히 따라 받들어 행하며,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진하여 겁나고 나약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마음은 멀리 원대함을 잊지 않고 뜻은 널리 듣기를 사모하며, 걸림이 없는 법으로써 모든 폐단을 끊고 정진을 그만두지 않는다.

만약 마음으로 생각을 내면 착하지 못한 법을 싫어하고 대정진으로써 그것을 없애며, 식법(識法)이 이미 일어나 부지런히 닦음을 세우니 일찍이 게으르지 않았다.
정진에 의지함이 없으면 가다듬어 더 부지런히 닦아, 이러한 행을 어기어 잃지 않고 되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힘쓰면 모든 법을 훤히 알아 분별하여 함께 응하며, 사람을 우러러 받들지 않고 세속에 있어도 정진을 잃지 않는다.
이 정진의 근은 가장 위덕이 있어 옳게 부지런히 배움으로써 정진근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의근(意根)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어떻게 의근을 훤히 알아 받들어 행한다고 말하는가?
만약 보살이 그 뜻을 제지(制止)하여 보시하고 지계하고, 들음에 따라 범행(梵行)을 구족하고, 구경의 계품(戒品)에서 청정한 업으로 정의 뜻[定意]ㆍ혜(慧)ㆍ해도(解度)ㆍ지견(知見)의 종류(品)가 청정하며, 몸[身]ㆍ입[口]ㆍ뜻[意]이 구경에 겸손하고 삼가 바른 뜻을 세우며, 일체 법에 있어서 생기는 것이 없게 하고, 특이한 데 머물러 있어 지극한 행을 관찰하고, 괴로움의 습기가 다하는 도(道)로써 이것을 끊어 없애고, 의지(意止)를 세우며 방편으로 근력(根力)을 알고 통달하며, 일심의 뜻인 정의삼매정수(定意三昧正受)를 깨닫고, 모든 법을 알고 펼치나 생각이 없고 서원도 없다. 혜(慧)가 일어나지 않아도 인욕의 성스러움을 이룬다.
욕심을 여의고 멸도하여 뜻의 멈춤을 얻어 불법(佛法)을 구족하면 성문과 연각의 경지를 행하지 않는다.
걸림이 없는 지혜를 받들어 마음이 미혹하지 않고, 능히 이와 같은 상법(像法)을 한결같이 정진하여 몸과 입을 근신하면 그 뜻을 잃지 않고, 우러러 받드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와 같은 법을 관찰하면 최고로 위덕이 있어 바른 근본을 얻음에 이르니, 이것을 정의근(定意根)을 체득하여 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무엇을 보살이 정의근에 도달했다고 하며, 어떻게 해야 이 정의근을 훤히 깨달았다고 하는가?
만약 어떤 보살이 선(禪)과 생각하는 것을 행하여 일심으로 헛되지 않게 하면 현성(賢聖)의 업을 행하고,
선하는 마음[禪心]이 집착함이 없고 방일함이 없는 선(禪)으로써 잘 정의(定意)를 거두어 바르고 평등함을 밝게 알고,
정의를 밝게 깨달아 뒤바뀐 선(禪)이 없이 정의의 문을 관(觀)하여 산란하지 않음을 통달하여 고요한 뜻에 들어간다.
삼매에서 일어나면 다시 선정에 뜻하지 않고 또한 정수(正受:선정)도 없으며, 능히 사모하고 좋아하여 뜻을 도업(道業)에 세우고 선과 생각으로써 스스로 오락하며, 반드시 남을 우러러 보지 않으며 선과 생각으로 정수하나 선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
위덕에 이름으로써 정의 일심이면 이양(利養)을 탐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음을 행하며, 최고의 위덕으로 정의근에 이르니 바라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지혜의 근[智慧根]을 행한다고 말하며, 어떻게 지혜의 근을 깨닫는 데 이르렀다고 하는가?
만약 어떤 보살이 몸이 곳곳에서 멸한다면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겠는가?
온갖 고통을 다 제거하면 항상 몸의 행함을 소멸한다. 곳곳에 지혜를 행하여 널리 욕심 여읨을 나타내고, 습기를 없애고 도를 다하면 무위문(無爲門)을 향한다.
지혜의 근을 행함으로써 3계(界)를 다 본다. 일체가 불타 3계가 고통임을 알아 그 지혜로운 이는 3계에 의지하지 않으니, 그것을 관찰함에 모두 공하여 생각이 없고 원하지 않고 마음에 생기는 것이 없고 다시 행할 것이 없다.
보이는 것은 유위법이니 그것을 다 놓아 버려라. 머리가 불타는 것을 구원하듯이 불법을 구족하여 오로지 한마음으로 모든 법을 익혀라.

비록 3계에 있으나 일체를 거두어 없애고 다 놓아서 집착을 버려라. 3계에서는 사모할 것이 없다. 모든 즐거워하는 것을 끊고 모든 유위법과 일체 더러움에 물들거나 애욕에 얽매임을 버리면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고 5욕의 쾌락을 사모하지 않고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음에 지혜를 안고 성스러운 공훈을 밝히면 양을 제한하지 못함이 마치 강과 바다와 같다. 행하는 것이 지성이면 끝이 없다. 모든 법을 훤히 알면 곧 지혜로써 3계를 분별하여 다 집착할 것이 없다.

이것이 최고의 덕과 이치이며 지혜를 받드는 바라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아, 무슨 까닭으로 뿌리[根]라고 말하는가? 말하는 근이란 뜻(義)이 능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그 때문에 뿌리라 한다.
움직이는 것이 없음으로써 달아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뿌리라 한다.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고 우러러 보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뜻은 반려할 자 없고 법의 가르침에 수순하니 그러므로 뿌리라 한다.
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능히 흔들 자도 없고 잡되고 어긋나는 것도 없으니 그러므로 뿌리라고 한다.
이와 같으면 지인아, 이것을 곧 보살이 모든 근을 훤히 깨달았다고 한다.

또 다시 지인아, 보살은 중생의 모든 근을 분별하고 방등(方等)을 잘 배우면 중생의 근이 더러움에 물들거나 물들지 않는 자와 욕심이 있고 욕심이 없는 근과 성냄[瞋恚]이 있고 성냄이 없는 근과 어리석음[愚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근을 알며,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질 근과 혹은 인간에 태어날 근을 알고 천상과 시방의 부처님 앞에 태어날 근과 마음이 밝게 통달하거나 혹은 유약하고 하열한 근과 또 중간의 근을 알며 다 보고 그것을 안다. 

하천하고 거칠고 사나운 근과 모든 근이 구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근이 손상되지 않거나 그것을 다 안다. 모든 근이 법에 맞으며 방편이 있는 근기ㆍ방편이 없는 근기도 다 알며, 죄가 있고 죄가 없는 근기ㆍ의지하여 집착하고 집착이 없는 근기ㆍ위해(危害)의 근기ㆍ해가 없는 근기도 모두 당연히 안다.

순히 따르는 근기ㆍ순히 따르지 않는 근기ㆍ걸림이 있는 근기ㆍ걸림이 없는 근기ㆍ욕계에서 행하는 근기ㆍ색계에서 행하는 근기ㆍ무색계에서 행하는 근기ㆍ모든 선(善)을 통달하는 근기ㆍ구경에 선(善)한 근기도 모두 능히 안다. 돌아갈 바의 근기ㆍ어질고 온화한 근기ㆍ삿된 견해에 처한 근기ㆍ정견을 세우는 근기ㆍ간탐하는 근기ㆍ간탐과 인색함이 없는 근기도 모두 능히 안다.
성급한 근기ㆍ성급함이 없는 근기ㆍ미혹한 근기ㆍ미혹하지 않는 근기ㆍ빠르게 지나치는 근기ㆍ어질고 온화한 근기ㆍ인욕의 근기ㆍ성냄의 근기ㆍ질투를 품은 근기ㆍ질투가 없는 근기ㆍ구족히 보시하는 근기ㆍ구족히 보시하지 않는 근기ㆍ통합뷰어
믿는 근기ㆍ믿음이 없는 근기ㆍ탐욕의 근기ㆍ욕심을 떠난 근기ㆍ집에 있는 근기ㆍ집을 버리는 근기ㆍ계가 구족한 근기ㆍ계를 어기는 근기도 모두 능히 안다.
계를 경계하는 근기ㆍ계를 경계함이 없는 근기ㆍ청정한 근기ㆍ인욕이 구족한 근기ㆍ성내고 한탄하는 근기ㆍ최상으로 정진하는 근기ㆍ게으른 근기ㆍ마음이 어지러운 근기ㆍ요점만 취하는 근기ㆍ정의(定意)의 근기ㆍ지혜로 이름난 근기ㆍ지혜를 잃은 근기ㆍ성스럽고 현명함을 구족한 근기ㆍ어리석은 근기ㆍ두려움이 없는 근기ㆍ스스로 크다는 근기ㆍ스스로 크다고 함을 여읜 근기ㆍ도를 얻음에 이르는 근기ㆍ삿된 소견을 따르는 근기ㆍ마음이 편안하고 온화한 근기ㆍ마음을 놓고 뜻을 마음대로 하는 근기도 다 능히 안다.
뜻이 산란한 근기ㆍ고요한 근기ㆍ일어나고 생기는 근기ㆍ생긴 바가 없는 근기ㆍ청정한 근기ㆍ때가 있는 근기ㆍ앎이 밝은 근기ㆍ훤히 나타나는 근기ㆍ성문(聲聞)의 근기ㆍ연각의 근기ㆍ보살승(菩薩乘)의 근기ㆍ불승(佛乘)의 근기도 다 훤히 알고 얻음에 이르니, 이것을 곧 힘을 얻어 같이 짝할 자가 없고 방일함이 없다고 말하며, 되돌아가지 않고 훌륭한 방편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이름을 의근(意根)이라고 한다.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阿須輪)ㆍ가류라(迦留羅)ㆍ진타라(眞陀羅)ㆍ마휴륵(摩休勒)ㆍ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人非人]의 근기도 안다.


최고로 위엄 있고 존귀하여 능히 이길 자가 없고 능히 동요함이 없고, 방편을 행하여 바라밀을 넓히며, 부지런히 닦아 받들어 행하면 이와 같은 상전(像典)을 빨리 얻어 훤히 깨달아 일체 법에서 자재함을 얻어 시방세계에 노닐며 제도하지 않음이 없다.”




지인보살경 제3권


서진 축법호 한역

김진철 번역


9. 삼십칠품(三十七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