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써 일을 시작하기전 2010년도 언저리인가 그랬다. 날도 더운 여름날이였다.


아는 형님이 어디 섬에서 요양원에서 사무국장으로 있다고 하셨다.


그 당시 일을 하면서 미래의 직업을 걱정하고 있던 시기에 


옳다구나 ! 자원봉사를 한번 다녀보자 해서 요양원의 실태나 현황을 알아보기위해


자원봉사자로 아는 형님네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자원봉사를 가기 전 그 지역의 요양원들을 쭈욱 나열해서 추려보고


자원봉사하려는 요양원의 광고나 홍보 문구등을 기억하고 자원봉사를 떠나게 되었다.


힘 쓰는건 자신있고 ! 어르신들에게 상냥하게 말씀하거나 농담따먹기하거나 동화책 들려드리는 그런 활동을 하는건


일도 아니다 ! 이런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3달간 시작하게 되었다.


무려 3달이다.


그 당시 그 요양원의 캐치프레이즈는 남해 섬 바다 한가운데의 자연속의 휴양림


이런 느낌의 "외딴 섬"에 있는 보호자들이 찾아오기위해서는 무조건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와야하는


섬에 다리가 놓여 있는  그런 섬에 있는 요양원이였다.


건물도 모텔을 리모델링해서 만든곳인지 외관도 빨간벽돌의 후줄근한 요양원이였고


내부도 리모델링을 했지만 시간이 오래 되었는지 세월의 흐름을 듬뿍 느낄수 있는 곳 이였다.


사무국장형님이 대표님이나 복지사 팀장 간호팀에게 소개를 하면서


앞으로 이따끔 자원봉사를 하려고 온 동생입니다 소개를 해주었다.


다들 처음에는 경계하고 정중하게 대해주셨지만 3달이라는 시간은


눈치 좋은 김깐돌 복지사에게는 요양원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였다.


자원봉사 초기에는 수급자 어르신들과 같이 있을만한 일을 주지 않았다.


단독 건물 부지 인근의 잡초 정리나 청소, 계단 및 복도 소독등 시설관리와 쓰레기 처리등의 업무를 많이 시키고


한두어달 지나니 이제는 나를 직원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김깐돌 ~ 오늘부터 생활실에서 한번 해봐 ~


왔다 ...!! 드디어 요양원 내부로 들어가 그 내부를 관찰 할 수가 있게되었다 !!


가슴 부푼 첫날 식사케어가 시작되었다.


가히 충격적이였다.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그냥 충격적이였다.


식사량이나 식사의 질이나 식사제공방법이나 여러모로 대단했다.


현재도 나의 시설에서는 어르신들이 잡수시고 싶으신 음식은 식단에 올려서 잡수실 수 있게해드리고


음식을 버릴지언정 식사를 잘 안하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한수저라도 더 잡수실수 있도록 많이 만들어서 음식을 버리는게 낮다고 생각하게 된


나의 요양원 식사에 대한 생각과 관점은 아마 이 떄부터 생겨난것 같다.


저 외딴 섬의 요양원처럼 어르신들이 잡수시는 식사를 그런식으로는 제공할수 없다.


우리 엄마 아빠를 이런곳에 모시면 내 가슴에 천불이 나서 타들어갈것같다.


하지만 난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로 온 사람이다.


난 내 미래의 직업을 탐험해보러 온 사람이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원봉사자 김깐돌은 한쪽 눈을 감아버렸다.


요즘 2020년도 들어서야 인권이란게 떠오르기 시작한거지  그 당시에는 요양원이나 노인정 이런곳은 사람들이 쉬쉬하고 좋아하지도 않고


노인들의 인권이나 성에 관심 또한 존재하지 않을정도로 저조한 시기였다.


그에 이어 내부고발이나 인권위원회 신고나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신고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런 오래된 2000년도의 어느 날이였다.


요양원 내부에서 어르신들 케어를 돕는 한편 생활실 내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다보니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 곳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것 같았다.


나는 한번도 프로그램 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물어보니 대충 가라로 한다고 한다.


흠.... 이해가 되지 않는 한 편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요양원의 답답한 인력구조가...



앗 일이 많아짐 여기서 잠깐 끊고 갈게요 횐님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