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대 아님 전원 5사단 연대 인원임


11사단은 상륙 훈련도 2번 하고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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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사 8기 출신인 이재전 준장이 67년 1군 작전참모 시절에 구상한 계획


2. 5사단을 공수사단, 2사단을 산악사단, 11사단을 상륙사단으로 구상


3. 공수사단은 미국의 공수사단, 산악사단은 미 알래스카의 산악 및 극한지 훈련을 참고,

상륙사단은 한국 해병대 역할에 대간첩작전을 겸함



이하 회고록 전문


그때그이야기



제1話 溫故知新<83>정예 야전군 건설 주창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나는 1967년 야전군 작전참모 시절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충격적인 6일전쟁을 겪으면서 감히 ‘이스라엘군보다 더 정예 야전군’ 건설을 주창했다.


미국의 해외파병 군사전략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략공군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정밀기술 전력은 미군 중심으로 운용하고 지상군은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원주민 군대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대외군사정책 방침의 영향을 받아 육군이 건설된 결과 육군 20개 사단 전부가 보병사단이었다.


그런데 6일전쟁은 한국군에 일단 유사시 보병만으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군원(軍援)을 받는 처지에 미군 동의 없이 우리 마음대로 병과(兵科)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전참모로서 서종철(徐鐘喆·육사1·대장 예편)제1군 사령관에게 군사령관 직권으로 보병 위주의 사단을 불식하고 3개 특수사단을 지정토록 건의했다.


내가 이런 건의를 올린 까닭은 부대 편성은 미군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연구 개발은 군사령관 직권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군에 공수사단·산악사단·상륙사단의 세 가지 특수사단을 지정, 교리와 편성장비 등을 연구 개발케 해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토록 했다. 물론 서종철 대장의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문환(曺文煥·육사7특·중장 예편·작고)장군의 5사단을 공수사단으로, 김학원(金學洹·육사5·중장 예편·작고)장군의 2사단을 산악사단으로, 그리고 이세규(李世圭·육사7·준장 예편·작고)장군의 11사단을 상륙사단으로 각각 지정해 교리와 편성장비 등을 연구 개발케 했다. 내가 전투용 스키를 타본 것도 2사단에서 개발한 장비를 가지고 탄 것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지정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문환 장군이 공수특전단장을 지냈기에 조장군이 지휘하는 5사단을 공수사단으로 지정했고, 2사단은 부대가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어 자연스레 산악부대로 지정했으며, 11사단은 바다를 끼고 있어 대침투작전을 겸해 상륙사단으로 지정했다. 사실 해병대도 상륙이 끝나면 역할이 육군인데 육군이라고 해서 상륙을 못하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11사단은 봄·가을 1년에 두 번 대간첩 침투작전을 겸해 상륙훈련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 특수사단들은 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희비가 엇갈렸다.


김학원 사단장의 경우 내가 2사단을 산악사단으로 지정하면서 미 알래스카에 있는 미군 산악 및 극한지 훈련 시찰을 건의해 울진·삼척 사건 당시 국내에 없었으나 무공을 세운 작전 성과가 평소 부대훈련을 잘 시켜 얻은 결과로 평가받아 사단장 직무대행인 부사단장에게까지 무공훈장을 수여하게 됐다.


반면 후방지역 경계 책임을 지고 있던 11사단의 경우 초기 작전에 실패하고 적이 나타날 때마다 병력 건제(建制)를 무시하고 축차(逐次) 투입을 하는 바람에 당시 육사7기 동기생 중에서 선두로 장군에 진급한 이세규 사단장은 끝내 소장으로 진급하지 못한 채 예편했다. 당시만 해도 준장을 사단장으로 내보내 공을 세우면 소장으로 진급시키는 인사관행이 유지될 때여서 사단장들이 서울만 쳐다보고 작전훈련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작전참모 시절 그런 폐단의 시정을 육본에 건의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군보다 더 정예 야전군을 만들기 위해 이종렬(李鍾烈·공병3·소장 예편)장군을 인솔자로 한 장교단의 이스라엘군 시찰이 진행됐다. 그런데 시찰단이 가서 보고 느낀 점을 보고서로 제출했는데 그 가운데는 ‘참모총장도 나무의자에 앉아 집무하는 검소한 이스라엘군의 정신을 본받자’는 건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나무의자’가 이스라엘 정신으로 확대 해석돼 우리 육군의 총장과 참모부장들의 의자가 나무로 바뀌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