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전선별

타국 연합군을 제외한 오직 '미군(US Armed Forces)'의 투입 병력 (1만명이상) 대비 사상률%(전사+전상+실종자) 상위 10개 전투.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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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전역 (서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해왕성 작전을 시작으로 하는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북부지역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작전이었다.

나치독일 병력 : 약 38만명

미군병력 : 약 1,600,000명  // 사상자 : 약 125,000명  

사상률 : 8%

왜 빡셌나: 해안 벽을 넘은 뒤에도 프랑스의 독특한 지형인 '보카쥬(촘촘한 울타리)' 때문에 전진이 매우 힘들었다.

주요 피해 원인: 매복 사격. 덤불 울타리 뒤에 숨은 독일군 탱크와 대전차포가 전진하는 미군을 하나씩 사냥했다. 상륙 당일(D-Day) 오마하 해변의 피해가 가장 상징적.










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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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전역 (태평양)

태평양 전쟁 당시 1942년 8월 7일부터 1943년 2월 9일까지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과 그 주변 섬, 해역 등지에서 벌어진 미국, 호주, 그리고 현지 원주민 연합군과 일본 제국 사이의 소모전이다.

일본제국 병력 : 36,200명

미군병력 : 약 60,000명 // 사상자 : 약 7,300명 (말라리아로 인한 비전투손실 7천명 제외)

사상률 : 12%

왜 빡셌나: 미군이 처음으로 겪은 본격적인 정글전이었다. 보급이 끊긴 채 일본군의 야간 습격에 시달렸다.

주요 피해 원인: 울창한 숲속에서 기습적으로 공격. 밤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반자이!" 소리는 미군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었다.










8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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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서부)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25일까지 서부전선에서 이루어진 독일 국방군 최후의 대공세와 이후 벌어진 일련의 전투.

나치독일 병력 : 약 400,000명

미군병력 : 약 610,000명 // 사상자 : 약 74,000명

사상률 : 12.1%

왜 빡셌나: 독일군의 마지막 대공세였다. 갑작스러운 기습과 영하의 추위, 짙은 안개 때문에 공중 지원이 막혔다.

주요 피해 원인: 동상과 기습. 전투 피해도 컸지만, 적절한 겨울 장비 없이 고립된 병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져갔고, 독일군의 중전차(킹 타이거) 공세에 보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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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와 전투 (태평양)

1943년 11월 20일~23일까지 길버트 엘리스 제도의 타라와 환초에서 진행된 미군의 상륙작전. 그리고 양국의 해병대(일본해군 육전대)간의 전투.

일본제국 병력 : 2,636명

미군병력 : 약 18,000명 // 사상자 : 약 3,100명

사상률 : 17.2%

왜 빡셌나: 수심 계산 착오로 상륙정이 산호초에 걸렸다. 해병대원들이 가슴 높이의 바다를 수백 미터 걸어서 상륙해야 했다.

주요 피해 원인: 무방비 노출. 물속에서 느릿느릿 걷는 미군은 일본군 기관총의 완벽한 표적이었다. 해안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물 위가 미군 시신으로 가득 찼다.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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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전투 (태평양)

1944년 6월 15일부터 7월 9일까지 사이판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이다.
전투가 끝나고 미군측 주최로 사이토 요시츠쿠 중장의 장례식이 열린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제국 병력 :  31,629명

미군병력 : 약 71,000명 // 사상자 : 약 17,000명

사상률 : 24%

왜 빡셌나: 일본군이 패배 직전 최후의 수단으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반자이 돌격'을 감행했다.

주요 피해 원인: 근접 난전. 한밤중에 갑자기 쏟아져 나온 일본군과 뒤섞여 칼과 총검으로 싸우는 백병전이 벌어지면서 미군 숙련병들의 피해가 컸다.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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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오 상륙작전 (이탈리아)

이탈리아 전역의 전투. 이 전투는 싱글 작전으로 알려진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시작되었고 1944년 6월 4일 로마 침공으로 끝났다.

나치독일+이탈리아 왕국 병력 : 13만 명

미군병력 : 약 120,000명 // 사상자 : 약 29,000명

사상률 : 24.1%

왜 빡셌나: 상륙은 성공했지만, 지휘관이 머뭇거리는 사이 독일군이 주변 고지를 선점하고 미군을 포위했다.

주요 피해 원인: 고지 포격. 독일군이 산 위에서 아래 해변의 미군을 훤히 내려다보며 대포를 쏴댔다. 미군은 구덩이 속에 숨어 몇 달 동안 '안지오 급행열차'라 불린 독일군 거포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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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르트겐 숲 전투 (서부)

1944년 9월 14일부터 1945년 2월 10일까지 벌어진 독일 국방군과 미군의 전투.
독일 땅에서 치른 전투 중 가장 긴 전투였고, 미군이 치른 전투 중 역사상 가장 긴 전투였다. 이 전투의 치열함 때문에 휘르트겐 숲은 마녀의 숲이란 악명이 붙는다.

나치독병 병력 : 8만명

미군병력 : 약 120,000명 // 사상자 : 약 33,000명

사상률 : 27%

왜 빡셌나: 울창한 숲과 험한 지형 때문에 미군의 자랑인 항공 지원이 무용지물이었다. 보병들이 맨몸으로 독일군 지뢰밭을 통과해야 했다.

주요 피해 원인: 수목 포탄(Tree Bursts). 독일군 포탄이 나무 꼭대기에서 터지면 치명적인 나무 파편과 쇠구슬이 비처럼 쏟아졌다. 참호 속에 숨어도 위에서 꽂히는 파편 때문에 피해가 막심했다.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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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태평양)

태평양 전쟁 후반기 오키나와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최종적으로 미국이 승리하긴 했지만 미군 측 피해도 엄청났기에 (태평양 전쟁 중 단일 전역(Campaign)에서 미군 사상자의 최대 발생) 이후 미국이 일본 본토 상륙 이전에 원자폭탄을 쓰기로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전투이기도 하다

일본제군 병력 : 약 10만명

미군병력 : 약 180,000명 // 사상자 : 약 50,500명 (정신질환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 2만명 제외)

사상률 : 27.6%

왜 빡셌나: 일본 본토 진입 전 마지막 보루였기에 일본군이 미친 듯이 저항했다. 민간인까지 동원된 총력전이었다.

주요 피해 원인: 바다에서는 가미카제가 배를 들이받고, 땅에서는 일본군이 동굴과 능선에 매복하여 기습공격을 가했다.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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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렐리우 전투 (태평양)

1944년 9월 15일부터 동년 11월 27일까지 태평양에 있는 현재 팔라우에 속하는 펠렐리우 섬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
미군에게 많은 피해를 강요한 전투로서, '교착작전'으로 명명되었다.

일본제국 병력 : 13,000명

미군병력 : 28,500명 // 사상자 : 약 10000명

사상률 : 35%

왜 빡셌나: 지휘부는 4일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두 달 넘게 걸렸다. 식수 부족과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싸워야 했다.

주요 피해 원인: 산호초 요새. 날카로운 산호초 바위 속에 구축된 진지는 함포 사격으로도 부서지지 않았고, 해병대원들은 엄폐물 없는 평지를 가로지르다 몰살당했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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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 전투 (태평양)

태평양 전쟁 말엽인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 26일까지 서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오 섬을 두고 벌어진 미국 해군 및 해병대와 일본 제국 육군 및 해군 육전대 간의 전투다.

일본제국 병력 : 18,591명

미군병력 : 약 70,000명 // 사상자 : 약 26,300명  

사상률 : 37.5%

왜 빡셌나: 섬 전체가 요새였다. 일본군이 18km에 달하는 지하 터널을 뚫고 숨어 있어서, 미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했다.

주요 피해 원인: 교차 사격과 매복. 미군이 해변에 내리자마자 미리 조준된 박격포와 기관총 포화에 노출되었다. 점령한 줄 알았던 곳에서 갑자기 일본군이 튀어나와 뒤통수를 치는 일이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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