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침공에 후발 주자들의 반란... 흔들리는 '멜론제국'
'순위'에서 '취향' 중심으로 옮겨 가는 서비스 패러다임
부동의 1위 멜론, 최대 공신 '멜론차트' 두고 깊어지는 고심


#스포티파이 등장 예고

#치고 나오는 후발주자들

#위기의 맹주 멜론



음악 세계가 '탑골가요'에 머물러 있는 아재인 나는 좀 있어 보이는 노래를 듣는 동생에게 그런 노래는 어디서 찾아 듣냐고 물어본다.

그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듣다가 좋은 노래 있으면 그 가수 다른 노래도 들어보고. 비슷한 노래 찾다보면 다른 가수들도 알게 되고. 그런거죠"라고 말했다.


국내 진출설이 돌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는 이렇게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도 "와 이런 노래도 있었네" 하며 무릎을 탁 칠만한 노래들을 찾아준다고 한다.

매장에 스포티파이 선곡 리스트만 틀어놔도 '취향 좋은 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최적화 된 추천 시스템이 스포티파이의 매력이다. 많은 이용자들이 한국에선 접속조차 안되는 서비스를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까지 해가며 쓰고 있는 이유가 있나 보다.

새로운 노래라곤 '멜론 톱100'에 올라온 노래밖에 모르던 내 음악 취향도 스포티파이 쓰면 바뀔 수 있을까?

외세 침공으로 난세에 접어든 음원시장



이미 국내에는 멜론, 지니뮤직, 플로, 바이브, 벅스 등 다양한 토종 음원 서비스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 후광 효과로 '유튜브 뮤직'이 치고 올라오고 있는 데 이어 이용자 2억7000만명의 세계 최대 음원 서비스 스포티파이까지 가세한다니 가히 난세라 할 만하다.



음원 시장의 '군웅할거' 시대가 오자 가장 긴장되는 건 아무래도 오랫동안 맹주 노릇을 하던 '멜론'이다. 한때 시장 점유율 60% 이상의 독점점 지위를 누리며 시장을 호령하던 멜론은 지난달 코리안클릭 조사 기준으로 점유율이 38.6%까지 떨어지며 위세가 한풀 꺽인 모습이다.

통신사가 뒤를 봐주고 있는 '지니뮤직'(25.7%)과 '플로'(17.7%)는 공격적인 할인 마케팅으로 멜론을 계속 흔들고 있다. 특히 플로는 출혈경쟁을 불사하며 서비스 1년 여 만에 3위로 치고 올라와 '천하삼분지계'에 성공한 모습이다.


'순위'에서 '취향'으로... 대격변의 시대


스포티파이는 지난 1월 서울 강남구의 공유오피스에 '스포티파이코리아'라는 이름의 지사를 설립했다. 코로나19 등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업계에선 이미 서비스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 스포티파이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SNS 팔로우 하면 시작할 때 알려주겠다"는 안내만 나온다. / 사진 = 홈페이지 캡쳐


이미 국내 이용자들은 '신문물'인 스포티파이가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갈아타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최근 음원 사재기 논란 등으로 신뢰를 잃은 국내 음원 서비스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해 보인다.

그동안 국내 음원 서비스의 간판은 '실시간 차트'였다. 실시간 차트 순서대로 음악을 듣는 게 유행을 따르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하지만 최근 차트가 아이돌 팬들의 '스밍총공'(스트리밍 총공격)과 음원 사재기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믿고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차트 줄세우기 대신 리스너들의 '취향'을 저격한다는 스포티파이의 등장은 유튜브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국내 동영상 서비스들과 같은 사례를 다시 만들 가능성도 있다.


스포티파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물론 천하의 구글도 한국에선 네이버의 벽을 넘지 못한 것처럼 스포티파이도 '현지화'에 실패한다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스포티파이는 국내 저작권 단체들과 물밑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업계에선 얼마나 다양한 음원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스포티파이가 한국 시장 진출보다는 'K-팝' 확보에 더 관심이 많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스포티파이 11억회 스트리밍을 달성한 '블랙핑크' / 사진 = YG


스포티파이가 실제 어느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변수가 많지만, 이미 진출설만으로도 수면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 놓은 건 확실하다.

앞서 플로, 바이브 등 후발주자들은 스포티파이와 같은 '큐레이션'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아직 멜론에 역전할 찬스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거물 스포티파이의 등장으로 흐름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뀌길 기대하며 본격적인 '멜론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멜론차트' 무너뜨리기 나선 적군들



플로는 최근 1시간 단위의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공신력을 높인 새로운 차트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또 바이브는 차트 상위권 가수가 음원료를 독식하는 구조인 기존 정산 방식을 이용자가 음원을 들은 가수에게 직접 음원료가 돌아가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대대적으로 나섰다.



최근 시스템 개편을 진행한 플로와 바이브/사진=공식 홈페이지


이들의 노림수는 그동안 가장 공신력 있는 순위로 여겨지던 '멜론차트'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기존 실시간 차트와 음원 정산료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멜론을 '적폐'로 내몰고 자신들이 앞장서 바꿔 보겠다는 식이다.

멜론이 불리한 형국이 된 건 이런 외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멜론에도 큐레이션 기능이 있다. 오랜 기간 부동의 1위를 지키며 쌓아온 수많은 데이터도 있다. 월간 활성 이용자(MAU) 4500만명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도 연결돼있다. 한국 사람의 음악 취향을 가장 잘 아는 서비스는 아마도 멜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멜론은 아직도 멜론차트로 쌓은 성벽 안에 스스로 고립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미 성 안에 살던 주민들은 각자의 취향을 찾아 떠나고 있다. 모두가 하나의 정상만 바라보는 '슈퍼스타'의 시대는 끝났고, 줄세우기식 차트는 낡은 방식이 되고 있다.


'실검'의 최후를 보라



지난 2월 포털 사이트 '다음'은 실시간 이슈 검색어, 이른바 '실검'을 폐지했다. 2005년 도입 이후 15년 만이다.

실검은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실검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이슈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실검 자체가 이슈를 생산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실검을 통해 찬성(조국 힘내세요) 또는 반대(조국 사퇴하세요) 의사를 밝히는 '실검 전쟁'이 벌어졌다. 실검 상위권이 이런 키워드로 뒤덮이자 정치권에선 댓글 조작과 같은 '여론 조작'이라는 주장과 온라인 상의 새로운 '의사 표현 방식'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붙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실검의 본래 취지에는 벗어난 일이었다.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자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과감히 실검 폐지를 결정했다. 다음보다 덩치가 큰 업계 1위 네이버는 좀 더 긴 고민을 했다. 결국 네이버는 실검을 관심사로 세분화 해 이용자마다 다른 실검 차트가 노출되도록 개편했다. 과도해진 실검의 영향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다.

멜론은 실시간 차트를 두고 고심 중이다. 1위 서비스답게 아마도 꽤 긴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실시간 차트가 실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멜론차트가 문제를 드러낸 건 이미 한 두 해 일이 아니다. 본래 좋은 의도로 출발했어도 이미 선로를 벗어났다면 과감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