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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 그녀가 내 약국 앞을 서성인다.
날 보러 왔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묻는다.

'무슨 일... 일이 있죠.
아들 은우가 아프고 당신을 포기해야 하는 내 마음도..'

약국 식구들이 그녀를 보고 오해할까봐 딴 데로 가자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걷는 지호의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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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카페에 들어가 정인을 마주한 지호의 표정이 착찹하다.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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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아이가 좀.. 아팠어요.

정인: 어디가요? 많이요?

지호: (고개를 가로젓는다.) 며칠 입원하면 괜찮아진대요.

정인: 아.. 다행이다. 궁금했어요. 갑자기 가서.. 지호씨 친구들이 쉬쉬하는 눈치가 간단한 일은 아닌 거 같고, 그냥 넘길까 했는데.. 지금 여깄네요.

지호: (차를 마시며) 그냥 톡으로 물어보지..

정인: 답도 잘 안 하면서..

지호: 그 땐 일부러 그런거고.. 왜 그랬는지 얘기했잖아요. 이젠.. 마음 잘 접었으니까 예민하지 않아도 되요.


정인은 지호가 궁금하고 걱정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나 지호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마냥 반길 수 없다.
그녀 곁엔 그의 대학 선배이자 금수저 남친이 있는데 반해
신은 돌봐야할 어린 아들이 있는 미혼부 처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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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품었던 마음을 접었다고 말하며 시선을 피하는 지호와
그런 지호를 빤히 바라보는 정인.


거짓말..
사람 마음이 신문지처럼 쉽게 펴졌다 접히는 건가?



정인: (지호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화제를 돌린다.) 아까 그건 무슨 뜻이요? 내가 구경거리 된다는 말..

지호: 내가 평범하지 않으니까.. 평범하지 않은 남자 옆에 저 여잔 누굴까.. 무슨 사정일까.. 같은 처지일까, 온갖 추측들을 하겠죠. 가짜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정인: 그래서 친구하자는 것도 거절한거에요?

지호: 그건.. 그런 뜻 아닌 거 잘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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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맘 접었다면서요? 그럼 친구해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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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정인씨는 왜.. 나하고 친구가 될라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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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뭐.. 그냥..

지호: 동정은 필요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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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이상한 피해의식이 있네.

지호: 입장 되보면 알아요.


정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할수록 점점 더 움츠러드는 지호다.
푹 숙인 고개와 축 쳐진 어깨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그치만 정인에게 그의 처지는 그와 친구가 되는데 걸림돌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는 그가 지닌 따뜻함에 끌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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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그래서.. 싫다고요?

지호: (고개를 들어 정인을 본다.)

정인: 친구가 뭐 별거예요? 가끔 안부 묻고, 가끔 연락해서 뭐 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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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남친한테 괜찮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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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내 걱정이에요? 아님 지호씨가 겁나는 거예요?

지호: (정인의 질문에 정곡을 찔린 듯 목이 맨다.)


난 당신에게 첨부터 이성으로 끌렸어.
근데 당신은 내게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했지.
그 사람이 알고보니 내 대학 선배야.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 아들이라던데..
난 전에도 얘기했지만 아이가 딸린 미혼부야.
당신은 왜 나랑 친구가 되고 싶은거지?
내가 불쌍해서 동정하는 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동정받고 싶지 않아.
당신과 친구란 이름으로 계속 인연을 이어가게 되면
난 당신을 매일 생각할거고 궁금해할거고
목소리 듣고 싶고 만나고 싶을거야.
난 아직 당신을 좋아하니까..
그런 날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당신 남친에게 내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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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뭐 이런 얘기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난 내 인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의예요. 혹시라도 앞으로 내가 말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황에 미리 짐작해서 맘 써주는 일 따윈 하지 말아요. 오히려 불편해.


지호씨가 비혼부인 것도 기석 오빠 후배인 것도 알아.
근데 난 약국에서 당신을 첨 본 순간부터 좋은 사람이란 걸 느꼈어요.

당신이 건네 준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당신이 건네 준 약을 먹고
당신이 빌려 준 돈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하면서
당신이 불러 준 휴대폰 번호를 기억해서 내 폰에 저장할 때부터
내 마음은 당신 생각으로 설레기 시작했어요.

나 같은 현실주의자가 운명적인 원샷원킬의 첫만남이 있단 걸 믿다니..
그건 다 당신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계좌번호만 알려줬어도 우린 다시 얼굴 볼 일 없었겠죠.
내가 돈 갚으러 찾아갔을 때
당신이 말없이 잔돈만 거슬러줬다면 그게 우리의 끝이었겠.

근데 당신이 그랬잖아.
날 한 번 더 보고 싶었다고.. 같이 저녁 먹자고..
돈 빌려 준 날에도 조심해서 가라고 그러더니
당신을 스토커로 의심한 날에도
눈 많이 온다고 조심해서 가라고 마음 써주고
심지어 다음 눈 오는 날 밖에서 만나자고,
당신이 '우리'라고.. 그랬잖아..

내가 남친 있는 걸 숨길 수는 없어 솔직히 말했지만
그건 당신을 밀어내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당신을 놓치기 싫은데, 계속 알고 지내고 싶은데
내 처지에서는 당신을 친구로밖에 둘 수 없는 걸..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친구라도 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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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해요, 친구.. 친구 하자고요, 우리.

정인: (말없이 지호를 본다.)

지호: 왜, 그새 맘이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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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웃겨.

지호: 웃긴 친구 하나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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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쳐진 어깨로 정인 앞에서 애써 자기 감정을 누르던 지호가
그녀와 함께 웃는다.

정인의 직진 본능이
지난 6년 간 혼부가 된 자신과 아들 은우를 지키기 위해
철벽으로 단단히 쌓아올린 지호 산성을 단 5분 만에 무너뜨렸다.
지호가 사고를 친 게 아니라 당한 거라던 왕 약사님의 눈이 정확하다.

정인은 모른다.
친구가 별거냐고,
자기 인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의라고,
미리 짐작해서 맘 써주지 말라고, 지호에게 던진 모든 말들이
그와 친구란 이름으로라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헛나오고 막나온 말이란 걸..

그런 정인의 바보같은(?) 직진본능 덕분에 친구라도 됐다는 걸
지호는 안다.

이 둘의 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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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해석하기 진짜 어려운 씬이었어.
중요한 씬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래 걸렸어.
계속 들여다보며 곱씹다 보니까 단내가 날 정도야. ㅋㅋ
이 둘이 주고 받는 대사 눈빛 표정 감정들을 내가 다 캐치할 수 있을까?
당시에 본방 재방을 봐도 의문점이 남았던 카페 씬인데
막회까지 다 본 지금 다시 복습하니까 이제서야 이해되는 장면이 많네.
갤에서 좋은 리뷰도 많이 찾아 읽고 공감하며 내공을 쌓았지만
아직도 부족한게 많아.
글 읽으면서 봠들이 느끼고 해석한 내용과 다르면 댓글에 달아 줘.
같이 소통해야 이해의 폭이 넓어질 거 같아서
블로그가 아닌 갤에 올리는 거거든.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