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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고 설거지하는데, 딩동 딩동~
이정인이다.
순간 얼음. 온갖 생각이 스친다.
(잠시 뒤) 겉옷을 챙겨입고 현관 문을 여는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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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화 안 받아요? 이젠 전화도 안 받기로 했어요?

진동으로 해놔서 전화온 줄 몰랐어요. 무슨 일 있어요?

나만 있어요? 지호씬 아무 일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가봐요.

(시선을 피하며) 하... 미치겠네 진짜..

내가 귀찮아요? 짜증나냐고.
-> 정인은 지호의 마음에 브레이크를 두 번이나 걸었다. 술집 앞에서 통화할 때 그에게 뭘 해줄 수 있냐고 묻고는 그녀에게 오려는 그를 건너오지 말라고 한 번, 지난 주말에는 그의 약국까지 찾아가서는
그녀만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그에게 원래 이기적이냐고 따지더니
'정말 이기적으로 해볼까요?'라는 그의 말에 '아니..'라며 두 번,
그의 입장에선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미치고 팔짝 뛸만도 하다.
기석과 지호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정작 문제는 해결하려 하지 않고 만만한 지호만 흔들어놓고 있으니..

이번엔 다르다.
그녀는 지난 한 주동안 엄마에게 자신의 고민을 내비치고
기석에게는 묵혀두었던 갈등을 터뜨리면서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절친 영주에게도 더이상 거짓으로 숨기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인이 지호를 찾아간 건 그도 자신처럼 힘들 걸 알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할거란 믿음으로 찾아갔는데
정작 그는 그녀에게 짜증을 낸다.


(정인을 보며) 짜증나. 잘못 찾아왔어. 차라리 오지 말지. 그냥 모르던 사람으로 살지. 이제사 내 앞에 나타나서 뭘 어떻게 하자구..

-> 지호와 정인의 마음은 데칼코마니 같다.
그가 그녀를 밀어내려고 밷어내는 차가운 말들은
그녀도 마음 속으로 여러 번 들었던 생각이다.
그를 만난 시기가 하필 지금이라 뭘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를 마음에서 밀어낼수록 그녀는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
그와중에 재인이랑 영주는 그의 얘길 그녀에게 전한다.
그가 엄청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가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하더라고.
런데 어떻게 그의 생각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그가 무슨 도시락을 먹었는지까지 궁금한 그녀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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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운다.)

(정인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심쿵한다. 안아주고 싶은데 겨우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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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요? 밥 먹으러 갈래요?

(눈물 닦고 지호를 보며) 뭐 사줄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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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얘기에 울음 그친 정인이 아이같이 귀여워 장난친다.) 내가 사줘야 ?

당연하지. 내가 택시비까지 쓰면서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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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튕긴다.) 무슨 계산법이야, 내가 오랬어?

그래서 싫어? 그럼 도로 가구..

(말로는 못 이기겠다.) 하.. 진짜 멋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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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는 정인을 단골 칼국수집으로 데려간다.
정인은 지호가 추천해준 얼큰칼국수를 시키며
한입 뺏어먹게 그에게 수제비를 주문하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랑 밥 안 먹는다던 정인이 이젠 지호에게 당당하게 밥을 사달라고 하고, 심지어 자기가 먹고 싶은 걸로 그의 메뉴까지 정해준다.
그와 그녀는 서로 마주앉아 밥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된 거다.
그는 퇴근길에 있는 카페로도 모자라 단골 식당에까지 그녀를 들였으니
눈물 젖은 칼국수를 먹고 싶지 않으면 그녀를 꼭 붙잡아야 할 거다.


맛있다더니 별론가봐. 그럼 그냥 딴데 가자 그러지..

사실은.. 저녁 먹었어요.

되게 속 편한가보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이정인 때문에 식음전폐라도 해야돼?

안했으면서 뭘..

며칠 동안 점심도 거르고 창밖만 내다보며 혹시나 정인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다가, 톡 하나 없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에 그녀와 같이 갔던 카페 한 번 쳐다보고 또 서글퍼져서 텅 빈 마음은 못 채워도 위는 달래야지 싶어 편의점 도시락 하나 사들고 홀로 자취집에서 꾸역꾸역 먹은 저녁 식사. 속이 편할리가... 괜히 정인 앞에서 쎈척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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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하는 것도 많이 부담스러워요?

엄청나지.. 잘못 엮였어.

미저리같애?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더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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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갔던 카페 몇 시까지 하나? 이거 먹고 가도 문 열려 있으려나?

집에 안 가요?

안 가면 뭐, 재워줄거에요?

진짜 큰일 날 여자야~

(칼국수 먹으며 피식 웃다가 지호 슬쩍 본다.)

->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못된 이정인이 있어서 유지호는 참 다행이다.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주구장창 블랙&화이트 옷만 입으며
자취집과 약국, 본가(가끔씩 체육관)만 오가는 수도승 생활을 못 벗어났겠지.
책임감 있는 바른 생활 사나이지만 인간미는 도통 찾아볼 수 없어서
은우랑 같이 있을 때 말고는 기쁠 일도 웃을 일도 없겠지.
그런 그가 그녀를 만나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버겹고 힘들어도
그는 더이상 예전의 무미건조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거 같다.
이제서야 세상 속에 어우러져 살아 숨쉬는 기분이 들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