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봄밤에는 세 가지 부정에 대한 스토리가 녹아있다. 부정(否定), 부정(不正), 그리고 부정(父情).

세 가지 부정을 통해 봄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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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부정(否定)하다.



어쩌면 한순간의 끌림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정인과 지호의 서로를 향한 관심은 어떻게 결혼까지 결심할 사랑으로 발전했을까? 수십 가지 요인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스스로 자신을 부정(否定)하는 상태에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있어 ‘나보다 더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석과 연애하는 정인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을을 자처했으며, 기석 앞에서 정인은 정인답지 못했다. 실패로 끝나버린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아이의 존재로 인해 지호는 진정한 자신은 가둬놓은 채 자로 잰 듯한 삶을 살아왔다. 정인은 지호를 만나고부터 사랑 앞에서 비굴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추해보고, 지호는 정인을 만나고부터 자신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에 앞서 두 사람은 처음부터 그대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한다. 정인은 숙취로 인해 지호의 약국에 방문해 약을 구입했고, 지갑을 두고 나온 탓에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오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인이 실랑이를 하면서 지호에게 무조건 사과하지 않고, 빈틈없는 논리로 당당하게 자신의 상황을 변론한 것에 지호가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지호는 당차고 야무진 정인이 마음에 들었으리라... 한편, 정인은 지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심으로 지호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는 지호에게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정인은 지호에게, 지호는 정인에게 있어서 '나'조차도 부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두 사람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자기 자신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드물고 진귀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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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不正)한 사랑?



봄밤은 일종의 윤리학적 실험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인과 지호의 사랑은 도덕 교과서에서 정답으로 도출될 수 있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남을 속여선 안 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의 명제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누구나 배우는 정언명령이다. 지호와 정인은 기석이 아직 정인의 애인인 상태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만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동이 배신으로 간주될 수 있고, 기석에게 상처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두 사람은 솔직하게 이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뜻 털어놓지 못한다. 특히, 정인은 기석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때로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정인과 지호의 사랑이 부정(不正)한 사랑이라고 인식을 갖도록 하기도 한다. 또한, 정인과 지호가 서로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김은 작가는 정인의 친구인 영주의 입을 빌려 세간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법을 통해 주인공들을 옹호하는 동시에 일종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김은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들의 사랑을 당신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이들의 사랑에 어떤 이름표를 붙이고 싶은지를. 안판석 감독은 전반적으로 카메라를 숨기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주인공을 담아내면서 김은 작가의 필치에 힘을 실어준다.


한편, 기석은 정인의 마음이 지호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술에 취해서 정인의 행동을 비판하고, 자신이 기껏해야 룸살롱 정도에 방문했다는 것을 털어놓으며 자신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정인은 기석에게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이별을 통보한다. 하지만 기석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인과의 결혼을 홀로 추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정인에게 어떻게 지호 같은 미혼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냐고,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했냐며 수차례 질책을 가한다. 이러한 기석의 행동은 한 번 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호와 정인의 사랑을 부정한 사랑이라 재단할 자격을 기석은, 우리는 갖추고 있을까? 아울러 이러한 질문들에 봄밤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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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정(父情)이란?



봄밤에는 네 명의 아버지가 나온다. 정인의 아버지인 태학, 기석의 아버지인 영국, 지호의 아버지 남수, 그리고 주인공 지호. 그들의 각기 다른 성격만큼이나 네 명의 부정(父情)도 각양각색이다. 먼저, 교사인 태학은 가정에서도 선생님 같은 아버지다. 하지만 천사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호랑이 선생님이다. 매사에 기준과 계획이 확실히 있는 그는 아내와 딸들이 자신의 뜻에 반하거나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면 혹독한 질책을 가한다. 딸들의 인생에 정답을 제시하는 역할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기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가족들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딸과 아내가 자기가 짜놓은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그는 벌컥 화부터 낸다. 한편, 기석의 아버지인 영국은 학교 이사장이라는 기세등등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고,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자산가이다. 자신이 축적하고 있는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그는 자식인 기석마저 믿지 않는다.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그는 그저 매일 펼쳐지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인이 기석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났다고 그에게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인의 담대함이 마음에 든 그는 사실을 숨긴 채 기석이 정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기석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 더욱더 무리하게 정인과의 결혼을 밀어 붙인다.



지호의 아버지인 남수는 그저 묵묵하게 아들인 지호를 믿고 지켜본다. 아들인 지호가 행여나 잘못될까 싶어 아내가 조바심을 내며, 전전긍긍하면 지호는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제가 더 잘 알아서 하는 아이라고 그냥 지켜보라고 한다. 지호가 간밤에 어떤 아가씨와 함께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그는 며칠 후에 그저 '건투를 빈다' 라는 담담한 내용의 응원 문자를 전송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지호는 아직은 서툰 신출내기 아버지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그는 별 것 아닌 일에 크게 당황해서 아들인 은우를 혼내기도 하고, 정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 후에 은우에게 사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서 침대 머리맡에 은우와 찍은 사진을 두는 아버지다. 이제 막 이정인이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나란히 손을 잡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의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 지호. 지호는 은우에게 앞으로 태학 같은 아버지가 될까? 영국 같은 아버지가 될까? 아니면 남수 같은 아버지가 될까? 아니면 그들 누구와도 닮지 않은 아버지가 될까? 질문 던지길 좋아하는 이 드라마는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고 궁금증을 남기고 퇴장했다. 마지막 회에서 지호는 정인의 어머니가 자신과 만나줄 것을 요청했을 때 은우를 데리고 그 자리에 나갔다. 그리고 봄밤은 정인과 지호의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장을 끝맺었다. 우리는 그저 그간의 여정을 통해 앞으로 지호가 어떤 아버지가 될지 강하게 추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