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 (은우의 외투를 입혀주며 다정하게) 집에 가다가 맛있는거 먹자~

은우: 돈까스?

지호: 그래!

은우: 선생님은?

지호: 잠깐 내려오신대. 인사 잘해야돼~

은우: 응!

열람실 문 밖에 정인이 지호쪽을 보고 있다.

은우: (먼저 정인을 발견하고) 선생님~

지호: (돌아본다.)

-> 8회를 복습하다보면 여기서 멈추게 된다. 그 다음 씬들이 넘 맘 아파서 밍설이다가 공원 씬으로 훌쩍 넘어간다. 들마의 극적 전개를 위해 갈등이 필요하겠지만 지호와 정인이 아파하는 걸 보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읽기글을 쓰며 8회에 다다랐을때 기석 등장씬을 보기가 두려워 앞 씬들을 유독 오래 붙잡고 있었나보다.
정인이 지호네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밥 먹었던 날처럼, 이번엔 지호가 정인에게 밥 먹었냐고 묻고, 정인이 공룡책 선물해준 보답으로 밥 사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유 커플이 은우에게 돈까스 먹여주는 모습 보면서 엄마 미소 짓고싶은데...
작가는 단호하게 우연한 만남이 주는 반가움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 놓인 문제를 잊고 잠깐의 설렘에 욕심낸다면 그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지호 집 앞에서의 만남이 그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어줬다면, 도서관에서의 만남은 그들이 당당한 '우리'가 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를 던져준다. 첫 번째는 정인이 은우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 두 번째는 기석과의 관계 정리이다.






정인: (문을 반쯤 열고 다급한 표정으로 손짓하며 지호를 부른다.)

지호: (그녀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지호: (열람실 밖으로 나와 정인 앞에 선다.) 왜 그래요?

정인: ( 말투로) 저기, 기석 오빠 왔어요.

지호: (눈빛이 차가워진다.) 그래서요?

정인: (뒤편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저기 복도 끝으로 가면 비상구 옆에 다른 출구 있거든요?

지호: (지금 우리더러 들키지 않게 몰래 빠져나가라고? 화가 난다.)

정인: (마음이 급하다.) 지호씨?

지호: (화를 눌러보지만 아들 일이라 참기 힘들다.) 은우까지 초라하게 만들라고요?

정인: (은우를 보고 지호에게 시선을 옮겨) 지호씨, 내 말 오해했나봐요.

-> 은우까지 초라하게 만들려는 거냐는 말에 오해라고 해명하려는 정인. 지호는 이미 5회에서 기석을 피해 다른 출구로 빠져나가며 아픔을 겪었다. 7회에서 그녀에게 자기는 숨어있기만 하면 되냐고 물었지만, 실은 그날처럼 또 머저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정인이 쉬는 날을 골라 도서관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은우가 정인을 보고 싶어하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지호는 은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만 정인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비혼부인 자신의 처지가 더없이 서글프다. 마음 속으로 자신이 남들처럼 평범한 싱글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며 신세한탄을 하다가도 어떤 이유로든 자신에게 온 아들 은우가 1순위임에는 변함이 없다. 근데 오늘 정인이 곤란해질까봐 영주 앞에서 아들을 부정한걸로도 모자라, 이번엔 죄지은 사람처럼 은우랑 같이 도망쳐야 한다니, 지호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화를 낸다.




지호: (정인을 똑바로 보며) 오해는 정인씨가 했어. 하나하나 신경쓰지 말라며 이건 뭔데? 이건 마음써야되는 일이라서?

-> 정인의 말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그녀가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다. 지호를 숨기려는 건 그가 남친 있는 여자를 뺏은 나쁜놈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는 거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고 했었다. 아들까지 초라해지느니 차라리 나쁜놈이 되는 게 낫다.


정인: (아차 싶다.)





지호: (화를 누를수록 비참하다.) 은우는 내가 아니야. 나는 무슨 꼴을 당해도 상관없지만 은우는 안돼. 내 아이한테 상처주는 건 어떤 누구든 용서 못해.

-> 은우는 아빠에게 돈까스 먹자면서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이랑 같이 밥도 먹고 준비한 스티커 선물도 주고 싶은가보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지호는 알까? 그는 정인이 잠깐 내려올 거라면서 은우에게 인사 잘하라고 한다. 밥 먹는게 뭐 어려운 일일까? 어차피 먹는 밥인데..
그는 지난 겨울 빌려간 돈 갚으러 온 그녀에게 밥 아직 안 먹었으면 이 돈으로 같이 저녁 먹자고 당당히 데이트 신청했었다. (비록 차이긴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녀가 언제 오든 자기는 기다린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퇴근 언제 하냐고, 같이 밥 먹자고 말을 건 수 없다.
그래서 아쉬워도 잠시 인사나누는 걸로 만족하려 하는데, 기석의 등장으로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은우가 영문도 모른채 그녀와 제대로 인사도 못나누고 도망쳐야 한다니, 아이가 무슨 죄인가..


정인: (미안해서 눈물이 고인다.)






지호: (열람실로 들어와 은우에게 다가가며 또 한 번 감정을 삭인다. 미소를 띄고 은우 손을 잡으며) 가자.

지호와 은우, 문밖에 죄인처럼 고개 숙인 채 서 있는 정인을 말없이 스쳐 지나간다.






은우: (정인에게 돌아와 공룡 스티커를 내밀며) 선생님, 이거..

정인: (은우가 주고 간 스티커를 보며 울컥한다.)




지호는 더이상 초라해지기 싫어서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왔는데, 결과는 처참하다. 문밖에서 마주친 기석에게 은우를 인사시키며 태연한 척 연기했지만, 기석이 은우에게 용돈을 쥐어주자 지호는 착잡해진다.
이럴려고 그는 정인에게 화를 냈던 걸까? 그녀가 잘못한 게 뭐라고... 은우에게 상처 주고 초라하게 만든 건 그녀가 아니라 지호다. 열람실에 은우 혼자 두고 돌아다닌 것도, 영주에게 은우가 아들이라고 솔직히 못 밝힌 것도 그이다. 오히려 정인은 아빠한테 버림받은 줄 알고 우는 은우를 달래주지 않았던가. 그는 자기 자신에게 쌓인 화를 그녀에게 터뜨린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 때 은우가 지폐를 꺼내 보이며 지호에게 '이걸로 돈까스 사먹을 수 있어?', '아빠것도?'라고 해맑게 묻는다. 울컥해서 목이 멘 지호가 겨우 '응'이라고 대답한다. 초라함 뿐 아니라 낭패감까지 더해진 그의 눈엔 후회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정인은 스티커를 들고 후회와 자책으로 눈물을 쏟다가 지호를 붙잡으려고 정문쪽으로 가는데 기석이 문을 밀며 들어온다. 보고 멈칫한다.


기석: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정인을 보고 다가와서) 야, 왜그래? 왜 울어?

정인: (눈물이 뚝뚝) 오빠..

기석: (정인의 머리와 어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울지마 울지마..

정인: (기석을 똑바로 보며) 미안해.

-> 정인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지호를 더이상 초라하게 만들지 않고 기석을 기만하지 않는 길이라는 걸...

기석: (불길하다.) 뭐?




정인: 미안해, 오빠. (도서관 문쪽으로 뛰어 나간다.)

기석: (뒤를 돌아본다. 애써 부정해왔던 촉이 들어맞는 기분이다.)




정인은 커밍아웃까지 감수하며 지호를 뒤쫓아갔지만 그의 차는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지호에게 비참함을, 남친에겐 배신감을 안기고 주차장에 홀로 남겨졌다.



지호는 백미러로 아들을 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억지로 올린 입꼬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정인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속좁게 화를 낸 자신이 너무나 못나고 한심하다.





정인, 도서관 사무실에서 영주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기대 운다.

영주: (정인 등을 쓸어주며) 언젠가는 걸릴 일이었어. 하필 자기 아버지 만난 날이라 남친 입장에선 사기당한 기분이겠지만..
정인: (훌쩍이며) 지호씨가 너무너무 화가 나서 갔어.

영주: 남친 걱정은 안되냐? 약사도 그래~ 조카까지 달고 와서 남의 여자 보러 온 게 뭐 잘한거야?

정인: (답답하다.) 그런게 아냐..

영주: 아니기는 뭐가 아냐? 혼자 오기 뭐하니까 괜히 애 하나 달고 와가지고..

정인: (한숨쉬며 체념하듯 말한다.) 아들이야.

영주: 봤대니까? 남자애드라. (정인을 획 돌아보며) 무슨 아들?

정인: 그사람.. 지호씨 아들.

영주: (잘못 들었나?) 아들이라고? 약사 유부남이야? 야, 이정인!

정인: (손으로 눈물 닦으며) 미혼부야.

영주: (너무 놀라) 정,정인아..

정인: (속상해서 운다.) 그래 내가 자신없다고 했잖아..

영주: (어이없고 당혹스럽다) 야, 이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지. 너 어떡할라고 그래?

정인: (깊은 한숨을 내쉰다.)

영주: 어, 모르겠다. 어 머리아퍼. 잠깐만.. (머리를 감싸며) 으흐..
-> 정인이 고민을 할 때마다 영주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준다. 감정에 치우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놓치지 않도록 일깨워준다. 근데 싱글인 정인이 미혼부를 좋아한다니.. 그것도 금수저 남친을 차버리고.. 영주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다.
누구도 응원해주지 않을 길을 선택한 정인이 걱정되지만, 사랑이 주위에서 말린다고 멈춰질 감정이 아닌 걸 잘 알기 때문에 영주는 골치가 아프다.





지호는 은우와 돈까스를 사먹었을까? 본가에 가서 아들을 재우고 부모님 저녁 먹던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신다.

지호: (소주 한 잔 입에 털고 또 한 잔 채운다.)

숙희: (걱정스런 눈으로 아들을 보며)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지호: (체념조로) 엄마가 소개해준단 사람 만나볼까?

숙희: (놀라서) 왜~? 엊그제까지 맘에 둔 사람 있다더니..

지호: 엄마가 소개한다니까.

남수: 니 맘에 차는 게 우선이지~

지호: 내가 좋은 사람이 나한테 온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숙희: (아들 기죽은 모습이 속상하다.) 니가 어때서~? 상처 있는거야 서로 퉁치면 되는거구, 뭐가 빠져? 머리가 모자라, 인물이 없어? 직업 좋겠다, 어디다 대도 안 기울지.

지호: 상처 없는 사람은 만나면 안된다는 거네..
숙희: (당연하다는 듯) 그걸 말이라고 해~

남수: 사람이 어떻게 처지가 다 같을 수가 있나..

지호: 은우땜에?

숙희: 은우도 은우지만, 멀쩡한 남의 딸 데려와서 왜 괜한 마음 고생을 시켜? 우리만 좋자는 심보지, 벌받어. 혹시나 하는 생각도 하지 마러.

지호: (생각이 많아진다.)

숙희: (불현듯 생각나서) 너! 그 맘에 있다는 사람이 혹시 미혼이야?

지호: (대답 못한다.)

숙희: 당장 그만둬. 어후.. 안돼, 글세~

남수: 왜 그렇게 단정을 짓고 얘기해~

숙희: (단호하게) 당신, 혹시라도 얘한테 바람넣을 생각 하지마. 어? 아닌건 아닌거야.

지호: (숙희를 보며 애절하게) 엄마..

숙희: 무슨 일이든, 경험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거야.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한테 니 입장만 이해해달라고 그럴래? 넘 못난 짓이지, 그런 억지가 어딨어?

남수: 니 일이니까, 니가 잘 판단해. 그럼 돼.

지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숙희는 한숨을 쉰다.
-> 아들 은우가 1순위인 지호도 의도치 않게 실수도 하고 못난 아빠가 되는 마당에, 싱글인 정인이 은우를 배려하지 못한 건 당연할 수 있다. 애아빠인 그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녀가 그와 같은 입장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오늘 그녀에게 은우를 초라하게 만든다고 화를 냈다. 넘 못난 짓, 엄마의 말을 들은 그는 자신이 더 한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