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지호와 기석 모두에게 상처를 준 정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다 책상 서랍에 넣어둔 은우의 스티커를 발견하고 생각에 잠긴다. 지호와 은우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음 날 저녁, 약국 퇴근시간이다. 예슬이가 집에 가려다 말고 약국 안을 들여다본다. 지호가 세상 고민 다 끌어안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혜정, 그런 지호가 신경쓰여 다시 약국으로 들어온다.

혜정: (의자에 앉으며) 자신이 없어? 후회할 거 같다며~

지호: 은우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혜정: (핑계가 어이없다.) 하.. 너두 부모 될라믄 멀었다 아주.. 부모님 말씀 중에 자식들이 듣기 싫어하는 하나가 너땜에 다 포기했다 희생했다야. 은우가 커서 저땜에 아빠가 연애도 포기했다 그럼 감사합니다, 할거 같니?

지호: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혜정: 아닌데 왜 은우 핑계를 대냐고? 유치하고 졸렬하게.

지호: 누나!

혜정: 꼭 불리하면 누나래. 너 유치해 지금~

지호: 심지어 엄마는 꿈도 꾸지 말래. 나랑 처지 다른 사람하고.

혜정: 쟤 웃기네. 그래서 니가 엄마 말씀땜에 갈등중이라고? (답답해서 한숨) 사고친다메? 쳐! 내가 책임질게!

지호: (피식)

혜정: 후회할거면 해봐~ 해봤다 아니면 말고지 뭐~

지호: (진지하게) 그럴 수 있는 여자 아냐.

혜정: (가방 챙겨들고 나가며) 어후 재수없어. 잘 안 되라고 빌거야, 내가.

지호: 가요~ (혜정이 나가자 숨 크게 들이마시고 가운을 벗는다.)

-> 혜정이 퇴근을 서둘렀으면 지호는 오늘도 약국 의자에 기댄 채 고개 숙이고 하염없이 정인의 연락을 기다리고만 있었을거다. 쎈 누나의 뼈 때리는 조언 덕분에 유치한 지호가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다.



정인, 재인과 식탁에 앉아있다. 고민이 한가득이다. 차를 마시지는 않고 티백줄만 만지작거린다.
재인: 시간만 죽이고 있을거야? 벌여놓은 일은 해결해야지~

정인: 해야지.. 근데 웃긴게, 지호씨는 전화를 안 받을까봐 무섭고, 기석 오빠는 받을까봐 겁이 나.

재인: 남친한테 욕 먹을 각오도 안했어?

정인: 그건 얼마든지. 다른 건 모르겠고, 한 가지 걸리는건.. 하.. 그렇게 긴 시간을 같이 했는데, 그 끝이 너무.. 암튼 쫌 그래.

재인: 끝은 무슨~ 연애는 서로 몰랐던 민낯의 바닥을 봐야 끝나.

정인: (피식) 아직 멀었단 거네?

재인: (당연하다는 듯) 멀었지~! 우선은, 유지호씨야. 언니한테 완전 정떨어졌을 거 아냐.

정인: 다신 안 보고 싶겠지..

재인: 상처줬는데 만나서 사과는 해야지~

정인: (재인을 보며 걱정스런 말투로) 그게 마지막이 될까봐..

에휴.. (답답하다.)

정인: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들어서 본다.)

재인: 누구야?

정인: (재인을 보며 어쩌지 하는 표정) 지호씨..

재인: 마지막이 넘 빠른 거 아냐?

-> 지호에게 혜정 누나가 있다면 정인에겐 영주와 재인이 있다. 고민만 하는 정인에게 지호를 만나 상처 준 거 사과하라고 재촉하는 재인. 그 때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피스텔 앞에 와있다는 지호의 전화를 받고 내려온 정인. 미안한 맘에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지호: 지난 번에 갔던 공원 어때요?

정인: (고개를 들어 지호를 보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말없이 먼저 계단을 내려간다.)


둘, 저번에 앉았던 공원 벤치에 다시 나란히 앉는다.

지호: (정인을 힐끔 보며) 나오기 불편한데 나온 거예요?

정인: (땅만 보며) 무슨 얘기할거예요?

지호: 특별히 할 얘기 있어서 온거 아닌데..


정인: (그제서야 지호를 본다.) 그러면?

지호: 보고싶어서...

정인: (뭐지??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다.)

지호: 왜?

정인: (다시 땅을 보며)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사람 놀리지 말고...

지호: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정인: 나한테 화났잖아.

지호: 났지. 그런데 아무래도 이정인이 그거 핑계로 도망갈 거 같아서...
-> 첨에 이 대사 들었을 때는 지호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정인을 너무 사랑하니까 붙잡으려고 그러나 했어. 먼저 연락도 하고 사랑고백도 하니까. 정작 상처 준 정인은 사과도 안하고 참 쉽구나... (산책하면서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번 공원 벤치에서도 그가 화내니까 그녀는 같이 화내고, 결국 그가 그녀를 놓칠 수 없으니까 숨어 있기만 하면 되냐고 묻고 말야. 정인이 갑이고 지호가 을 같은 느낌?
근데 읽기 글 쓰면서 복습하니까 몰랐던 게 보였어. 지호가 상처입은 건 사실이지만 정인에게 화를 낸 건 그의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하니까. 그녀에게 못난 모습을 보였으니 도망가면 어쩌지, 라고 불안해했나봐. 그리고 그녀가 지난 번에 그에게 화낸 건 자기가 그를 더 좋아해서 맘을 접을 수 없다는 고백이었더라구. 참... 지호가 그렇게 밀어내고 머뭇거리는데 정인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말했을까 하고 이해가 됐어. 
이유 커플이 이처럼 사랑하는데 난 갑과 을 관계나 따지면서 본방을 봤다니, 복습 안했음 클날 뻔 했어. ㅋㅋ




정인: (지호를 보고 벌떡 일어난다. 화가 난다.) 계속 말장난 할래요? 내가 진짜 바본 줄 알아?

지호: (그녀의 반응이 웃기다.) 아닌 줄 알았는데 진짜 바보네. 진심을 말하는데 왜 화를 내지?
정인: (안 믿긴다.) 정말 그게 다라고? 나 보고 싶어서 온 게 다라구?

지호: (고개 돌려 앞을 보며) 아.. 그냥 다른 여자나 만날까보다.

정인: (뭐가 진짜야?)



지호: (미소띄며) 어떻게 이런 말은 바로 믿어?

정인: (이제서야 농담인 걸 눈치챈다.) 하... 못됐어...





지호: (일어나서) 못된 건 빨리 배우게 되더라구.

정인: (그래도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든다.)

지호: 내가 정인씨를 좋아할 자격이 있는지, 그래두 되는지, 생각 안하기로 했어요. 나한테 언제 오든 설령 오지 않든, 사랑만 하면서 살라구.

정인: (지호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젖어든다.)

지호: (그런 정인을 소중히 바라보며) 유지호가, 이정인을, 사랑하더라구.

정인: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아 고개를 숙인다.)

지호: (웃으며) 또 눈물로 떼울라 그런다~

정인: (울음을 참고 지호를 바라본다.)

지호: (자신의 사랑 고백에 감동한 정인이 사랑스럽다.)

정인: (그에게 한 발 다가선다.)

지호: (안아주고 싶다.)




정인: (손에 쥔 휴대폰을 지호에게 내밀어 보여준다.)

지호: (뭐지? 싶다가 공룡 스티커를 발견한다. 앗, 이걸 어떻게... 정인에게 기습 감동을 받아 온 몸의 긴장이 풀린다. 서 있기가 힘들어 벤치에 주저앉는다.)






정인: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컥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지호: (정인의 애교어린 미소에 그의 얼굴에도 행복의 미소가 퍼진다.)



정인과 지호는 나란히 서서 공원을 산책하며 편안한 대화를 나눈다. 커피를 하나씩 사들고 다시 벤치로 와서 홀짝이는 이유 커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서로 눈치만 보며 어색해한다. 빈 카피잔을 들고 다시 걷는 둘.

오늘은 여기까지. 담엔 진도 좀 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