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과 지호, 다정하게 손잡고 웃으며 카페문을 나서다가 기석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는다.
지호, 기석에게 가려는 정인의 팔을 붙잡고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정인, 둘이 싸울까봐 불안하다.

정인: (기석에게 먼저 달려가 뒤로 밀며) 나하고 얘기해.

기석: 무슨 얘길해? (주머니에 손 넣으며) 내 말 다 씹어먹고 이딴짓이나 할거면서 뭘 얘기해? 너 이제 사람 말이 말같지가 않냐?

정인: (어이없고 화가 난다.) 누가 할 소린데? 헤어지자는 말이 장난이야? 몇 번을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않고 멋대로 굴면서 누구한테 큰소리야? 이럴 권리 있어? 내가 누굴 만나든 어디서 뭘하든, 느닷없이 나타나서 무슨 권리로 악쓰는데?

-> 정인은 이미 기석과 헤어졌고, 그는 그녀와의 관계가 실패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맘 떠난 그녀를 붙잡으며 네 맘 이제 다 알았으니 다시 잘해보자고 하고, 널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아버지를 설득해서 결혼 선언을 하고 청혼 반지를 산 건 이미 떠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행위일 뿐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그가 자만에 빠져 그녀의 마음을 묵인하는 동안 지쳐버린 그녀는 지호라는 안식처를 찾아 떠났다. 그가 이정인을 내 여자라고 주장할 권리는 눈 녹듯 사라졌다.




기석: 결국 이럴거면서 우리 아버진 왜 만났어?

정인: 결혼 안한다구. 오빠하고 나, 이미 실패한 관계라고 말씀드렸어.

기석: (기가막힌다. 지호를 한 번 보고는 빈정대며) 그래서 성공하려고 저새끼야? 가고 불쌍한 마음을 착각하는 거라니까~

정인: 입조심해!


지호: (달려와 기석 멱살을 잡는다.)

정인: (놀라서 둘을 떼어놓고 지호를 밀며) 어, 지호씨 하지마!!



지호: 두번째부터 선배고 뭐고 없다고 했지!

기석: 그래서 해보자고?

정인: (두 팔로 지호와 기석을 막으며) 하지마.

지호: (기석 멱살을 잡으며) 오라고, 이씨~

정인: (지호를 기석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며 ) 하지마, 하지마요~

기석의 친구가 달려와 그를 붙잡는다.

기석: 오라고, 어? 야, 오라고 새끼야, 오라고!

-> 서로 마음이 통해서 손을 잡고 연인이 되듯이, 헤어질 때도 동시에 상대의 손을 놓고 행복을 빌어주면 얼마나 깔끔할까? 그렇지 못한 게 사람 맘이라서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싸우고 멱살을 잡는다. 고학력의 전문직도 피하지 못하고 바닥을 보게 만드는 게 사랑과 이별이다.






지호: (차키를 꺼내 정인에게 주며) 차에 먼저 가있어요.

정인: (괜찮겠어요?)

지호: (정인의 어깨를 잡으며 걱정말라고 안심시킨다.)

정인: (키를 받아 차 쪽으로 간다.)

기석: 야, 이정인, 이정인!! 이정인 일로 안와?

지호: 나하고 얘기해요. 나한테 불만인거잖아.

친구: (지호에게 손짓하며) 나중에 얘기해요,나중에~

지호: 이정인은 건들지 말자고요.

기석, 말로 한다면서 지호 멱살을 잡는다. 지호, 뿌리친다.
-> 지호는 안다. 기석이 정인을 사랑해서 붙잡으려는게 아니라는 걸. 자기한테 여친을 뺏기고 존심 상해서 한풀이하려는 걸. 이 진창에서 정인만은 지키고 싶은 지호와 끝까지 그녀의 마음 따윈 아랑곳않고 소리지르는 기석의 태도가 극과 극이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케이크와 그보다 더 달달했던 첫키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석과의 갑작스런 삼자대면을 치른 이유 커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생채기가 났다.
연인이 헤어질 때 서로 다른 마음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호는 심란해진 정인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이별과 상처를 떠올린다.




지호: (앞을 보며 얘기를 꺼낸다.) 은우가 태어나고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아이 엄마가 사라졌어요. 화만 났지. 찾아다니는 내내 만나기만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그 하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불안했어. 무조건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아이를 나 혼자 어떻게 키우지? 입양을, 보내야 하나...

정인: (그렇게까지..? 지호를 본다.)

지호: 그런 못난 생각을 할 만큼.. 그땐 머리 속에, 내 절박한 상황만 있었어요.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떠올렸어. 그 사람도 무슨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뭔가로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다 이해 못해도 그 정도만이라도 인정하고 나니까, 내 맘이 좀 편해지더라구요.

정인: (고개를 숙이며 작게 끄덕인다. 생각이 많아진다.)

지호: 우리한테 시간이 필요할거라고 했던 건 내가 관대하거나 한없이 선량해서가 아니에요. 기석선배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 거지.





정인: (지호를 보며) 배려든 해결책이든 우리만 아는 사정이지, 남들이 볼 땐 난 양다리 걸치고 있는 여자고, 지호씬 애인 있는 여자를 찝적대고 있는 남자일 뿐이야. 왜 그런 시선까지 감수해? 난 싫어. (창쪽으로 고개 돌리며) 차라리 유지호도 안 보면 안 봐. 속은 뒤집히는데 겉으론 의연한 척 하는 거 못해.

지호: (정인을 본다.)

정인: 지호씨도 은우에 관해선 절대 못참잖아. 나도 내 감정, 내 선택이 무턱대고 밟히는 건 못견뎌. 깨지든 까발리든 부딪히고 말지, 피하고 참는 거 안해.

-> 기석이 이별을 스스로 받아들일 시간을 주자는 지호와, 자기 감정과 선택이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정인이다. 어느 게 정답일까? 정인과 기석의 이별을 두고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합의점을 찾기가 참 쉽지 않다. 근데 또 단순하게 보자면 당사자들의 마음이 중요하다. 기석을 배려하며 기다리겠다는 지호도, 그러는 동안 남들의 불편한 시선으로 상처 입는 걸 바라지 않는 정인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기석은?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남탓만 하며 맘 변한 정인에게 집착하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지호: (미소띠며) 그러면서 아까 왜 말렸어?

정인: (지호 보며) 챙피해서! 남자 둘이 여자 하나 세워놓고 으르렁거리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무슨 내가 대단한 나라 공주나, 재벌 상속녀쯤 되는 줄 알았을 거 아냐. 미쳐. 내가 어이가 없어서..

-> 정인은 참 순수하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사랑을 하고 삼각관계에 빠지거나 환승 이별을 하며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남긴다. 정인이 지호와 탁 트인 공원에서 키스를 하는 것처럼 구남친과 현남친이 카페 앞에서 멱살잡이를 하는 것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든 그들만의 무대에서 행해지는 액션이다.

지호: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난 듯) 내일 출근해요?

정인: 아니?




지호: (뭔가를 결심하고 시동을 건다. 차 출발한다.)

-> 지호는 정인을 그의 사적인 공간으로 데려간다. 자취집이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뛰어놀며 같이 성장해온 동네, 그곳에 있는 아버지의 일터 세탁소다. 그가 힘들 때마다 은우를 보러 달려오는 골목을 오늘은 그녀와 함께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