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지호네 약국, 퇴근하려던 그는 정인의 전화를 받는다.

지호: (다급하게) 정인씨 지금 어디예요?

정인: 갑자기 그건 왜? 그런거 한 번도 안 물어봤잖아.

지호: (뜨끔해서 웃으며) 혼자 사고 칠까봐...

정인: 같이 치자고?

지호: (정색하며) 당연히 그래야지.

정인: 나 보기보다 맘 먹으면 잘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지호: (탈의실에서 나오며 커튼 친다.) 어데요? 어디든 내가 갈게.

정인: 아니 그냥 있어도 돼. 내가 갈 거야. 지호씨한테.

지호: (옛생각에 미소 띠며) 딴 여자만 안 만나고 있으면 되죠?

정인: 만나~ 어차피 내가 끼어들어서 찢어 놓을 테니까.






지호: (웃으며 밖을 내다보는데 재인과 눈이 마주친다. 다시 안쪽으로 기대서) 무슨 일이 있든 혹시 나 필요하면 전화해요.

정인: 유지호 카드는 언제든 꺼내 쓰지.

지호: 말로만 그러지 말고...

정인: 그렇게 지호씨 믿고 있다고. 전화할게요.



지호: (그래도 그녀 혼자 힘들까봐 걱정이다.) 혹시 아버님 만나는 자리 가는 거 아니지?
정인: (단호하게) 전화한다고.



지호: (더는 물을 수 없다.) 알았어요. 조심하고.

정인: 네. 끊어요~



그녀는 어딜 가려는 걸까?
누굴 만나려는 거지?
걱정할까봐 말해주지 않고 믿으라고만 하는 그녀, 기다리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그녀가 더 걱정되고 불안하다.



오늘은 지호 삼인방에 재인까지 넷의 첫 회동이다. 장소는 치맥집. 이 자리에 정인도 함께 하면 좋았을텐데... 그녀가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생각에 술 대신 음료수를 마신다.

현수: (지호 보며) 근데 왜 넌 술 안 마시냐?

지호: 별로 생각이 없어가지고.

현수: 아후~ 술을 생각으로 마시니?

지호: (현수 보며 피식)



재인: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으며) 마시든 말든 나 오늘 완전 뜯어먹을 건데.

영재: (피식 웃는다)
재인: 혹시 언니한테 막 이르고 그러는 거 아니죠?

지호: (미소 띠며) 아군 적군은 구별할 줄 알아요.

재인: (씨익 미소)




현수: (지호 보며) 나 완전 적군할건데?

지호: (현수 보며 찌릿)

현수: (지 어깨를 푹 치며) 아, 웃자고 웃자고~

지호: (입꼬리 살짝 올라간다.)






재인: 난 의리 같은 거 없는데? 맘에 안 들면 등 돌릴 수도 있어요.

영재: 어, 이재인은 그러고도 남아.

재인: (어이없어 영재를 보며) 되게 오래 사귄 남친처럼 얘기한다, 너.

영재: (소리 없이 웃으며 닭을 먹는다.)




지호: 팁 좀 줘요. 실수 안하게.

재인: (잠시 생각하다가) 권기석 씨는 재낀 거 같아요?

지호: (순간 멈칫하다가 미소지으며) 걱정해주는 거면 안 해도 돼요.




재인: 우리 아빤?

지호: (다시 표정 굳는다.)

재인: 우리 아빠 봤다면서요. 눈은 마주쳐줬어요?

지호: (웃으려 하지만 금세 입꼬리가 내려온다.)



지호: (말없이 한숨만)

재인: 겁주려는 게 아니라... 쉽지 않을 거에요, 우리 아빠.

지호: (사레 들려서 음료수만 들이킨다.)
-> 정인은 지호에게 한 약속(다시는 상처 주지 않고 가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재인 피셜, 정인이 한 번 맘 먹으면 우리 가족 아무도 못 말린다고 한 것처럼, 그녀의 직진 본능은 그와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불도저처럼 쓸어버릴지 모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게 되는데, 그는 자신으로 인해 그녀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힘들어질 게 뻔해서 걱정이다.
그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그녀 말대로 그냥 믿고 기다리는 일? 그럼 시간이 지나 다 해결되는 건가? 계속 그녀 뒤에 숨어있고 싶지 않은데, 태학과 기석이 만나는 자리에 잘못 나섰다가 그녀를 더 곤란하게 만들까봐 주저하게 된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답답할 뿐이다.
6년 간 은우만 바라보며 굳게 잠가놓은 지호의 빗장을 열어재낀 건 정인이다. 그녀는 참, 대단한 여자다. (지호가 납작 엎드려 살 수밖에 없달까?) 그런 그녀의 아빠가 쉽지 않을거라는 재인의 조언에 지호는 잔뜩 긴장한다. 세 자매 중 알고 보면 정인이 태학을 가장 많이 닮은 건 아닐까? 불같은 성격의 두 부녀가 부딪힌다면... 상상만으로도 그는 두렵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