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네 집, 식탁 위에 파스타 재료들이 올려져 있다. 영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식탁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내쉰다.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정인이 들어온다.

인: (식탁 위에 있는 재료들을 보고) 야, 이 정도로면 충분하겠는데 뭘~ (영주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영주: (말없이 정인을 쳐다본다.)

정인: (영주의 눈치를 보며) 지호씨네서 잔 걸로 기분 상한 거야?
영주: (내가 지금 그것 땜에 그래? 하는 표정이다.)

정인: 그러게 왜 쌩하게 그러냐고.





영주: 권기석 씨가 온대.

정인: (깜짝 놀라 눈이 커진다.)

영주: 내가 컨디션 별로라고 했더니 잠깐이면 된다고 온대. 무슨 인간이 이렇게 막무가내니?

정인: (한숨 쉬며 괴로워한다.) 미안해. 내가 처리할게.



영주: 뭐, 어제 유지호씨랑 동침이라도 했다고 광고하면서 나갈래?

정인: (상관없다.) 그래도 되고.

영주: (한숨 쉬며) 아, 지가 갖고 있는 걸 하찮다고 생각하는 놈한테 뺏겼는데 눈도 돌겠지.

정인: (찌릿) 내가 물건이야?

영주: 그럼 너무 사랑해서겠냐? 다시 되찾겠다는 거야. 자기 소유물이었으니까.

정인: (짜증나고 답답해서 미치겠다.)



영주: 내가 진짜 걱정되는 건 뭔지 알아? 야, 권기석의 전략이 후지건 말건간에 결국은 이게 먹히는 게 아닐까...

정인: (발끈해서 영주를 쳐다본다.)

영주: 나는 믿지. 근데 세상이 너넬 얼마나 인정하겠냐고.

정인: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유지호가 위험한 사람이야?

영주: 사람들이 물어뜯긴 최적이지. 거기다 이정인은 남들 볼땐 꽤 괜찮은 남친 두고 바람핀 여잔데.

정인: (단호하게) 세상 욕받이가 되든 말든, 지호씨 만난 거 후회 안해.

영주: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 정인과 영주의 대화를 보면서 난 앞으로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의 연애사에 함부로 토 달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남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가 아니면 제대로 알 수 없다. 심지어 자기 일이라해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은우 엄마를 원망했던 지호도 시간이 지나 그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당사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남녀 사이의 사랑과 이별이다. 남들 연애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면서 잘난 척하기 전에, 이유 커플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면서 내 사랑을 가꿔야겠다.





지호네 집, 부엌에 서 있던 지호는 정인이 들어오는 소리에 바로 냄비의 불을 켠다.

지호: (정인이 빈 손으로 쌩하게 거실로 가는 모습에) 영주씨한테 혼났어요?

정인: 재료가 별로 없어서 그냥 왔어. (소파에 앉아 한숨을 길게 쉰다.)

지호: (냄비 불을 끄고 정인 옆에 와서 앉는다.)



정인: (앞을 보며) 다 관둘래. 지호씨 좀 따라해 볼랬더니 도저히 안 맞아. 더는 못 해먹겠어. (휴대폰을 들고 엄마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다.)




지호: (놀래서 전화기를 뺏어 든다.) 왜 그래요, 갑자기?

정인: 갑자기 신경질나서. 지호씨 땜에 성질대로 못했잖아. 왜 참으랬어? 우리가 죽을 죄를 졌어?

-> 정인이 '이제 유지호 닮아가며 살거야.'라고 말한 지 반나절도 안 지난 거 같은데 그새 맘이 바뀌었다. 상황에 따라 살짝 살짝 달라지는거지 사람 자체는 안 바뀐다는 영주의 말이 정답이다. 정인은 자신과 반대되는 지호를 만났으니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기보다 원래 성격대로 살면 된다. 지나치다 싶을 땐 지호가 중심을 잡아줄거다. 반대로 지호가 결정을 못 내리고 머뭇거릴 땐 또 정인이 앞에서 이끌어주면 된다.



정인: 하... 다 말할거야. 언제까지 코너로 몰려?

지호: (차분한 목소리로) 누가 코너로 보는데? 권기석?

정인: (지호를 쳐다보며 괜히 티냈나 싶다.)




지호: (침착하다.) 집에 말하면 뭐가 달라져요?

-> 영주네 갔다 온 사이에 정인이 기석 때문에 왜 열받았는지 물어볼만도 한데, 이제 지호는 정인이 말 꺼내지 전에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뭐가 중한 지 잘 아는 지호의 현명함은 꼭 형선과 닮았다.

정인: (그렇긴 한데...) 아니, 그래도...





지호: 정인씨만 힘들어지지. 그 사람은 안 바뀐다니까?

-> 지호는 기석을 만났을 때도 첫 마디가 '언제까지 이정인을 힘들게 할거냐.'였다. 그는 자나깨나 정인이 힘들어지는 일만은 안 생기길 기도하며,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겪을 시련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주고 싶다.
정인: (이도 저도 할 수 없어 한숨만 나온다.)

-> 정인은 지호와의 사이를 더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 미혼부를 만나는 일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인가? 물론 부모님이 아시면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겠지만(불호령도 떨어지겠지만) 매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앞으로 겪게 될 아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단단히 각오한다.




그 때 정인 폰이 울린다. 엄마다. 지호가 건네준다. 순간 긴장되는 정인, 전화를 받는다.

정인: 어, 엄마, 아니 뭐 내가 그냥 한건데 잠깐 뭐 좀 할 게 있어서 끊었어. (엄마 말을 들으며 지호 눈치를 본다.) 영주네서 잤는데?



지호: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서 얼른 입을 다문다.)

정인: (지호 허벅지를 퍽 때린다.)



정인: 술 안 마셨어.

지호: (자꾸만 웃음나서 참기 힘들다).

정인: (지호 허벅지를 연달아 치며) 아니, 그냥 놀다가...



지호: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꽉 깨문다.)

정인: (지호 팔을 민다.) 하, 진짜라니까?

-> 2회 때 은우에게 술 안 마셨다고 거짓말한 지호를 보며 '난 거짓말이 제일 싫든데.'라고 말했던 정인이, 이제 엄마한테 거짓말하며 지호 눈치를 본다. 앞에서 기석 땜에 화가 솟구쳤다면, 지금은 웃음 터진 지호 덕에 광대가 솟구친다. 이유 커플은 뭘 해도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