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정인과 지호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며 주차장으로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는 기석. 지호가 그의 차를 발견했다. 혹시나 했는데 여기로 오다니. 오늘 그녀에게 달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는 그녀에게 내색하지 않고 차로 걸어간다.

정인: (지호의 차에 탄다.)

지호: (운전석 문을 열고 정인을 보며) 나 잠깐 전화 좀...

정인: 어. (고개를 끄덕인다.)




지호는 차 뒤쪽으로 걸어나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기석의 차 안에 불빛이 반짝인다. 흠칫 놀란 기석이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매서운 눈빛을 느끼고는 차 안에서 꼼짝도 못한다. 그는 받지 않는 휴대폰을 끈다. 차 안의 불빛이 꺼진다. 그는 기석에게 경고를 날리듯 한 번 더 쳐다본 뒤 천천히 차로 가서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기석의 차를 지나쳐 나간다. 잠시 후 기석도 출발한다.


정인: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뭐 시켜먹지? (지호를 보며) 뭐 먹고 싶어요?

지호: (미소 띠며) 많이 먹는 사람이 골라야지.

정인: 치~

지호: (웃는다.)

정인: 많이 골라야지~ (같이 웃는다.)

-> 정인은 낮에 엄청 울어서 배가 많이 고플거다. 지호네 집에서 맛난 저녁 먹고 힘내야 하는데 하필 기석이...



지호: (입은 미소짓고 있지만 백미러로 뒤쫒아오는 기석의 차를 살피는 눈빛은 편치 않다.)



지호: (빌라 공동현관에 앞에 차를 세우고 백미러로 기석의 차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지호: (정인을 보며) 먼저 올라가요. 주차하고 갈게.

정인: (미소 띠며 끄덕이고 내린다.)

지호: (정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정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지호는 시선을 다시 백미러로 옮긴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차에서 내린 기석이 걸어오는 걸 확인한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 천천히 차에서 내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3층을 올려다 보는 지호,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한다. 언덕을 걸어 올라오던 기석, 지호의 시선을 따라 보다가 몸이 굳는다. 고개를 돌려 기석을 보는 지호, 그를 향해 걷는다. 기석도 따라 움직인다. 서로 마주보고 선다.


지호: 더 설명이 필요해요?

-> 정인은 이미 내 여자니까 그만 질척대고 꺼져라.

기석: (애써 태연한 척) 말했지. 난 니가 아니라니까? 아이, 이 정도쯤이야 뭐~
-> 허세 쩐다. 주차장에서 지호한테 겁 먹고 전화도 못 받은 주제에. 후배한테 또 질 거 같으니까 피하는 걸 모를까봐?
지호: (기석이 이렇게까지 한심한 인간인 줄 몰랐다. 말귀도 어둡고 눈치도 없는 그를 상대하는 일이 점점 피곤하다.) 이정인 다시 만나요.

기석: (?)

지호: 우리가 헤어진 다음에.
-> 이 대사 본방에서 첨 들었을 때는 그저 멋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질 일은 없으니까 기석이 정인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란 반어법으로 들었다. 근데 14회 때 그가 정인과 서로 내기하자며 '죽을 때까지 상대방 기억해주기'란 말을 하는 걸 보고 나니, 지호는 이때부터 그녀와 헤어질 수도 있단 생각을 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그의 내면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가 그에게 영원한 사랑이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걸까?

기석: 야!




지호: 그게 지금으로선 가장 후져지지 않으면서도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이라서 알려주는 거예요. 좀 있으면 창문 열 거예요.
-> 지호는 기석이 정인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후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왜일까? 지난 번 카페 앞에서 기석과 멱살 잡고 싸웠을 때 정인은 둘을 뜯어 말리며 창피하다고 했다. 서로 바닥을 보이며 부딪혀봤자 결국 같이 진창에 뒹구는 것처럼 꼴만 우스워질 뿐이다. 그가 후져질수록 한때 그를 사랑했던(사랑한다고 믿었던) 그녀는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 거다. 헤어지더라도 서로 상처를 덜 받기를 바라는 지호의 깊은 배려심을 기석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기석: (비웃으며) 누가 겁나?


지호: 난 겁나요. 한때 만났던 사람의 실체를 정인씨가 자꾸 알게 되는 게.
-> 정인이 기석의 실체를 알고 실망할수록 그녀가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힘들어할 걸 지호는 안다.

기석: 같잖은 잘난 척 하지 말고 빨리 올라가서 정인이 내려오라 그래.

-> 기석은 참 모른다. 이 구역의 가장 쎈캐는 이정인이란 걸.





지호: 재주 있으면 데리고 가 봐.
-> 캬! 저음으로 반말하는 지호, 그래. 기석한테 더이상 배려나 존중 따윈 필요없다.

기석: 맞먹냐?




지호: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똑바로 하든가!
-> 속 시원~하다.

기석: (지호의 기에 눌려 시선이 흔들린다.)




이때 정인이 빌라 밖으로 나온다. 그녀에게 다가서는 지호를 지나쳐 기석에게 똑바로 걸어온다.



정인: (내가 이런 사람을 4년이나 만났다니... 지호 앞에서 한심한 실체를 드러내는 기석을 보며 화가 나고 속상해서 눈물이 왈칵 난다.) 알았어. 앞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 줄게. 우리 가족, 친구, 내 주변 누구든 만나. 나한테 밤낮없이 전화를 해대고 좋고, 만나자고 하든 찾아오는 다해. 얼마든지 상대해 줄게.
기석: (당황해서) 뭐하자는 거야?




지호: (고개를 들어 기석을 탁 본다.)
정인: 나 괴롭히라고. 오빠한테 상처 준 댓가라고 생각할 테니까 풀릴 때까지 해. 원망도 안하고 짜증도 안낼게.
지호: (정인에게 걸어온다.)

정인: 지겨워질 때까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지호: 들어가요, 정인씨.


정인: 대신 유지호는 안 돼.

지호: (정인을 본다.)

정인: 이 사람 힘들게 하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바닥을 보이며 질척대는 기석에게 최후통첩을 날리는 정인. 기석은 할 말을 잃고 지호를 쳐다본다. 기막혀하는 그의 눈빛을 보니 그는 아직도 자기가 지호에게 왜 밀렸는지 납득하지 못한 듯하다. 도대체 정인은 잘난 것 없는 미혼부 따위가 뭐가 좋다고 이토록 무섭게 그를 감싸는 걸까?

정인과 지호는 기석으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 입을까봐 걱정하며 서로를 배려한다. 자기의 존심만 중요한 기석은 절대 흉내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정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석으로부터 지호를 보호하려 하고, 지호는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