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오피스텔, 둘은 거실 바닥에 나란히 붙어 앉아 지호는 와인을 한모금 마시고 정인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각자 생각을 한다.

정인: 내가 지호씨를 만나서 감사한 게 뭔줄 알아요? 내 자신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거. 그리고, 용기.

-> 살면서 자신을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꿔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참 행운이다. 정인이 지호를 만나 어떤 계산도 없이 순수한 사랑을 하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낼 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가 프로포즈를 한 이유일 거다.


지호: (살짝 미소띠며) 원래 용감하잖아.

정인: 그런 줄 알았는데, 용감한 척 위장한 객기였더라구.
지호: (그 말에 멈칫) 반대로, 날 만나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있지.

-> 그녀가 자신을 만나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만큼 크게 느껴진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계속 뒤에 숨어만 있는 거 같아 미안하다.



정인: (고개를 들어 지호를 보며) 자기가 말했어.

지호: (정인을 본다.)

정인: 널 위해 떠나주겠다. 나 위해 핑계댈 생각 말라구.



지호: (고개 들고 웃으며) 하~ 또 내 무덤 팠네.

정인: (미소 띠며 다시 지호에게 기댄다.)



지호: 용기도 좋고 용감한 것도 좋은데... 지금처럼 몸만 말고 마음도 기대요. 정인씨한테 그래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 언젠가 댓글에 한 봠이 그런 말을 했다. 정인은 지호와의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맘 다친 그를 찾아와 바로 풀어준다고. 지호가 태학에게 무시당했던 날, 기석이 그녀에게 프로포즈한 걸 알게 된 날 그랬다. 심지어 그녀가 형선에게 그의 얘기를 털어놓고 펑펑 운 날도, 그녀가 걱정되서 찾아온 건 그인데 몰래 뽀뽀는 그녀가 하지 않았나... 지금도 그렇다. 상처받아 힘든 건 그녀인데도 다친 마음을 숨기고 애써 밝은 척 하는 거 같아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정인: (씩 웃으며 지호 등을 돌려 얼굴을 기대며) 엄청 기대야지. 나중에 딴소리 하기만 해.

지호: (고갤 들어 피식 웃어보지만 금세 고개가 숙여진다. 입꼬리가 내려온다.) 집에서, 상처 많이 받았죠...
정인: (말없이 얼굴을 기댄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지호: (깊은 숨을 내쉰다.) 오히려 내가 상처주는 사람이 됐네...

정인: 힘들어하면 안 돼. 누가 뭐래도 이정인은 유지혼데. (눈시울이 붉어지며) 힘들어하면 웃긴 거야.
-> 지호에게 하는 말이면서 그녀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그녀가 얼마나 그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진다. 남이었던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하는 님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 이렇게 맘 아프지만 그녀는 그를 모르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무도 소중한 인연을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기에 후회는 없다. 앞으로 더 험란한 길을 가야 하더라도 그와 손을 꼭 잡고 걸으면 어디든 헤쳐나갈 수 있다.

지호: 그러게... (웃어보려 하지만 맘이 아프다.) 웃기네...

-> 몸이 아파 힘들어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란 생각을 할거다.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과 질타를 혼자서 다 감내하는 정인을 보는 지호도 그런 심정이지 않을까? 

정인: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다니까?
지호는 눈물이 날 거 같아 고개를 들어 참는다. 지금은 그녀를 위로해줘야 한다.



지호: (정인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정인: (팔로 그를 붙잡고 등에 얼굴을 기댄다.)

지호: (몸을 다시 돌리려하며) 안아줄게.

정인: 지금은 내가 안아줄래. (두 팔로 그를 뒤에서 꼭 끌어안고 기댄다.)
-> 정인이 우는 모습을 지호에게 안 보이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맘 아파하는 지호를 보면 더 눈물이 터질 거 같아 그런건지...



정인: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쓰담쓰담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지호: (상처입은 정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 지호의 마지막 표정들이 맘에 계속 걸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꾹 다문 그는 뭘 참는 걸까?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난 정인씨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무력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넘 아파. 며칠 뒤에 그가 술취해서 그녀에게 우릴 버릴 거냐고 물을 때 짓던 그 표정도 떠오르고.
하... 그 씬은 진짜 어떻게 복습하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