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술집 앞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을 회상하는 지호.


정인: 이제 퇴근해요? 

지호: 친구 잠깐 만났어요. 

정인: 아.. 친구랑 일찍 헤어졌다. (웃으며) 착하네~

지호: (함께 다.)

정인: 근데 왜 전화했어요? 

지호: 집에 가는 길에 정인 씨가 보였고,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정인: 지호씨, 있잖아요, 우리...

지호: 친군 거 알아요. 그 이상 안 넘어가요. 이런 것도 부담되면, 앞으로 안 할게요.

정인: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얼마큼이 괜찮은 건지, 어디부터 안되는 건지... 하, 그래서 좀, 답답해요. 




지호: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정인: 뭘 해줄 수 있는데요?


지호: (정인 쪽을 향해 걷는다.)

정인: 건너오지 말아요.

지호: (걸음을 멈춘다.)

정인: (고개를 숙이며) 하.. 그럼 안 될 거 같애.


지호: (그 자리에 굳어버리는 지호, 전화를 든 손을 천천히 내린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그의 말은
그냥 친구가 되고 싶다던 그녀의 말과 닮았다.
둘은 안다. 서로 같은 맘이라는 걸.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남친이 있는 그녀는 두렵고
아이가 있는 그는 조심스럽다.

"딱 한 번만, 진짜 딱 한 번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벌 받을까?"

며칠 뒤 그는 벌 받을 각오까지 하고 그녀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만약 그가 용기내지 않았다면 이 둘의 인연은 다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제 정인은 지호 곁에 있다.
그와 함께 웃고 울고 화를 내고 미안해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서로를 안아주고 손을 꼬옥 잡고 입맞춤을 나눴다.
너무 행복해서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그에게 난 아니라고, 유지호가 욕심난다고 솔직한 돌직구를 던진 그녀는 그의 자취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의 배려와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가 된 그녀는 자신보다 그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 진정한 용기를 낸다.





건너편에 정인씨가 없어서 참 좋다...

-> 우리에게 미행을 붙이고 불법 촬영까지 한 영국을 만나러 가는 정인에게 지호가 톡을 보낸다. 그녀가 건너편에 없어서 참 좋다는 건 서로를 원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했던 과거의 그들이 용기를 내어 우리가 된 지금,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뜻일거다. 그는 이제 그녀 없이는 숨이 쉬어지지 않을 거 같다. 다시는 그녀를 모르던 때의 유지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근데 그녀는 지금 부모님의 반대에 맞서며 상처입고 기석의 집착에 시달리며 괴로운 상황이다. 그가 또 상처입을까봐 그들에게 날아오는 질타와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그녀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다시 불안해진다.



오늘도 그녀가 지난 번처럼 전화도 안받고 숨어서 울까봐 걱정된 그는 그녀의 오피스텔 앞에 왔다. 두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는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리는 그가 왜 이렇게 짠한지...


정인은 영국 앞에서 당당하게 사진 원본을 달라고 요구하고 기석한테는 반지를 돌려주었다.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린 그녀는 한 손을 치마 주머니에 넣고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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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처음 만났던 기석 오빠는 우연히 날 보고 한 눈에 반해서 내 아버지를 졸라 소개를 받게 됐다며 쑥쓰러워하던 청년이었다. 음악이 좋다며 라이브 카페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일을 사랑하는 멋진 남자였다. 내가 보고싶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던 그의 순정에 반해서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열게 한 그는 어느 순간 달라졌다. 연락을 하고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음악을 그만두고 취직한 은행일이 바빠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다. 데이트를 하고 싶어도 내가 보고 싶을 때보다 그가 시간이 날 때 맞춰서 했고, 그러다보니 쉬는 날 그와 뭘 하고 싶다는 바람은 줄어들고 친구랑 술 한 잔 하는 게 소확행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나를 아들의 연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는 내 마음이 어떨지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지인들 앞에서 내 여자 예쁘지 않냐며 자랑할 뿐이다. 그럴 때면 난 그에게 속한 전시품이 된 거 같아 씁쓸해졌다. 다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주듯 소홀해진 그와, 서운해하다가 지쳐버린 나는 어느새 사랑하는 연인보다 중년 부부처럼 관성적으로 안부 묻고 밥 먹는 관계가 되버렸다.

우린 처음부터 닭살돋는 커플은 아니었으니 그 또한 사랑이라 자위하며 남들 눈에 후져보이는 관계를 4년이나 유지해온 자신이 한심하다. 유지호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면, 아직도 난 혼란 속에서 답을 못찾고 헤매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랑이 아닌데 사랑인 척 했던 건 분명 내 잘못이다. 기석 오빠가 나를 속물로 본다한들 그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탓할 수 없다. 그와의 관계가 실패로 끝나버린 것에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겠다. 그래야만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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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길 건너편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지호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사랑을 일깨워주고 늘 그녀를 먼저 걱정해주고 필요할 땐 이렇게 달려와주는 그가 있어 그녀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그녀에게서 톡이 왔다.

건너편에 지호씨가 있어서, 참 좋다!



건널목 건너편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정인을 발견한 지호.


그제서야 그는 안심이 되어 미소짓는다.
휴대폰을 꽉 쥐고 있던 손이 좀 편해진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정인: 이번에도 건너오지 말아요.

지호: (??)

정인: 내가 갈게.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그녀가 그를 향해 뛴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준다.


정인: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지호: 웃어줘서 고마워요.



랑하니까.

이게 진짜사랑이지.

사랑한다면 이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