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국, 지호가 숙희와 통화를 하며 조제실로 들어온다.
지호: 알았어요. 지금 나가요.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내쉰다.)
혜정: (가운을 벗으려다가 지호를 보며) 어머니?
지호: (심란하다.) 응. 갑자기 오라고 하시네.
혜정: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근데 왜 한숨이야.
지호: (정인에게 톡을 보내며) 무슨 말씀하실지 뻔해서. 정인씨 오고 있을텐데...
혜정: 낮에 어머님 뵀어.
지호: (놀라서 혜정을 본다.)
혜정: 두 사람 잘 해낼거라고 말씀드렸어.
지호: (긴장한다.) 그리고요?
혜정: (신발을 갈아신으며) 음, 여러가지로 걱정하셨지. (고개 들어 지호를 보며) 유미 소식 듣냐고.
지호: (또 시작인가 싶어 화가 난다.)
혜정: (지호의 눈치를 보며) 아이, 그만큼 정인씨가 맘에 드시고 욕심도 나신거야~ 사람이 뭔가 너무 좋은 일 있을땐 괜히 한편으론 불안하잖냐. 혹시 잘못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엄마들은 원래 걱정을 사서 해. 딴 사람은 몰라도, 어머님 불안은 이해해 드려야 돼?
지호: (혜정을 탁 보며) 6년이야 6년! 언제까지 해요? (화가 참아지지 않는다.) 엄마가 이럴 때마다 내가 기를 쓰고 잊어버렸던 게 한꺼번에 다 생각나.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난 걱정 안 되는거 같아요? 어쩔 땐 무서워 죽겠어. 갑자기 나타나서 은우 내놓으라고 할까봐.
-> 지호가 유미한테 은우를 뺏길까봐 무섭다는 말은, 아이를 낳자마자 사라진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아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는 건데...
지호는 학창시절 선생님이 인정하는 영재였지만 집안 형편에 맞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의 약대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며 약사면허증을 딴 그가 20대 후반에도 학생이었다는 걸 보면(현수가 기석에게 한 말에서 유추해봄)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데를 편입한 건 아닌가 싶다. 더 큰 세상을 꿈꾸던 그의 앞에 어느 날 말도 없이 잠수탔던 여친이 8개월만에 만삭이 되어 나타나고, 하루 아침에 애아빠가 된 그는 결혼을 결심해야 했다. 근데 여친이 다시 지호와 아이를 버리고 말도 없이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창창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던 그가 갑자기 생긴 아이로 인해 미혼부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그가 더 큰 꿈을 포기하고 약사가 된 건 한 아이의 아빠로 책임을 다하고, 혹여 나중에 유미가 나타나더라도 그녀에게 은우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혜정: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유미 결혼했어. 얼마전에 모임 갔다가 우연히 들었어. 심지어 애도 있다더라.
-> 혜정은 유미 소식을 접하고 나서 얼마나 심란했을까? 그녀는 낮에 만난 숙희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 못하고 유미는 은우 엄마로 자격 없으니 신경쓰지 마시라고 안심시켰다. 정인과의 결혼을 고민하는 지호한테도 굳이 소식을 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 기계처럼 일만 하며 살던 그가 새 인연을 만나 사랑을 하고 있으니 과거는 다 잊고 꽃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가 지난 6년 동안 갑자기 유미가 나타나 은우를 내놓으라고 할까봐 무서웠다고 한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걱정말라고, 유미는 벌써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사니까 나타날 일 없을 거라고 말해준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죽고 못 살 거 같은 연인도 헤어지면 남이다. 아픈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으면 된다. 그러나 헤어진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아이는 무슨 죄인가?
지호: (가슴이 탁 하고 막히는 것 같다. 약장에 기대서 길게 숨을 내쉰다.)
-> 숙희나 지호가 유미를 신경쓰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사는 은우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은우가 생모를 궁금해하고 찾게 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호를 생각하면 평생 서로 모른 채 사는 게 좋지만, 은우를 생각하면 연락 한 번 안 하고 사는 유미가 모질게 느껴진다.
은우를 낳고 한 달도 안 되서 버리고 떠난 그녀는 과연 맘 편히 살고 있을까?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사는 건 아닐까? 언젠가 한 번은 나타나겠지? 은우를 보고싶어하면 어떡하지? 보여줘야 하나? 은우에게는 뭐라고 소개해지? 엄마라고 말해줘야 하나?
지호네 가족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은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은우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엄마 얘기를 한 번도 묻지 않던 은우가 정인을 처음 보고 '엄마'라고 부른 날, 지호는 은우가 말은 안했지만 엄마를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렸던건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가 은우를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우는 동안 얼마나 자책했을까?
유미로부터 이유도 모르고 버림받은 지호는 그녀에 대한 기억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은우를 낳아준 사람이다보니 맘껏 미워하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책임을 다하는 자신보다 버리고 떠난 그녀가 더 괴로울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알고보니 그녀는 벌써 다 잊고 잘 산단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하.........
혜정: (지호에게 다가간다.) 지호야...
지호: (혜정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알아, 누나. 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원망 안해요. 그래도, 은우를 낳은 사람이니까. 미워하면 은우한테 상처 주는 거니까 안 해. 안할거예요.
-> 그는 지금까지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되뇌고 살았을까? 때때로 격한 감정이 솟구칠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원망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은우만 생각하자면서 참고 또 참아왔던 거다.
혜정: 멋있다, 유지호.
지호: (화를 참을수록 슬픔이 북받친다. 저절로 몸을 숙여진다.)
혜정: (말없이 지호의 등을 토닥여준다.)
지호: (숨을 크게 내쉬어보지만 몸은 더 숙여진다. 눈물이 뚝뚝,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길거리 포장마차, 지호가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는다. 쓰디 쓰다.
빈 잔에 소주를 따르는 지호, 술이 넘친다. 혜정이 옆에서 그의 손에 쥔 소주병을 세운다.
지호: 누나, 나 괜찮아.
-> 난 무슨 일을 겪어도 상관없어.
혜정: (휴지로 지호의 손과 탁자를 닦으며) 그럼, 괜찮아야지.
-> 그럼, 넌 은우 아빠잖아. 맘 약해지면 안 되지.
지호: (설움에 북받쳐 운다.)
혜정: (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 됐다니까.
-> 후회도 자책도 하지마. 네 잘못이 아니야. 너도 이제 과거 일은 다 잊고 홀가분하게 살아.
지호: (괜찮다고 손을 저어보지만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다. 참을수록 서러움이 북받친다.) 누나 내가 진짜... 은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애... 너무 아파. 진짜 미치겠어, 진짜...
-> 생모한테 버림받고 잊혀진 내 아들 은우, 하늘은 왜 죄 없는 아이한테 이렇게까지 잔인한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다. 지호는 그동안 미움과 원망을 참아내느라 가슴 깊이 곪아버린 상처가 터진 것처럼 아파하며 울부짓는다.
혜정에게 연락받고 놀란 영재, 걱정스런 표정으로 뛰어온다.
영재: (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야!
지호: (영재를 보며) 어...
영재: (벌건 얼굴로 초점을 잃은 지호를 보고 놀란다.) 많이 마셨네.
혜정: 왔어?
영재: 죄송해요. 죄송해요.
지호: (퉁퉁 부은 눈으로 영재를 알아본다.) 어, 야 영재야~
포장마차에서 나온 지호는 휘청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영재: (달려와 지호 팔을 붙잡으며) 지호야, 집에 가자.
지호: 야, 영재야. 잠깐 잠깐만...
영재: 뭐? 왜?
지호: 잠깐 잠깐...
영재: 가자 가자 집에~
지호: 잠깐 잠깐...
영재: 왜?
지호: 나 은우 보러 가야 돼.
영재: 내일 가라고 쫌! 가자 가자
지호: 나 은우 보러 가야 돼...
영재: 아니, 괜찮아. 가자 가. 일단 가.
지호: 어?
영재: (지호의 어깨를 감싸안고) 걸어봐. 걸어봐. 일단. 내일 가, 내일.
-> 14회 읽기글을 시작하면서 이 씬을 생각하기만 해도 답답하고 화가 났어. 어떤 날은 은우 엄마란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내 아량이 그만큼은 안 되서 떼려쳤어. 오죽하면 그랬을까,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후회와 자책은 그녀의 몫이려니, 하며 화를 가라앉히고 이 글을 쓰고 있어. 미움과 원망을 지우고 나니까 지호랑 은우를 떠올릴 때마다 서럽고 슬퍼. 남은 사람만 버림받은 상처를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야 하니까.
유미가 죽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의 존재가 지호와 정인의 새출발에 불안 요소로 남지 않도록 작가가 처리할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해. 그치만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호 부자한테 너무 잔인한 거 같아. 유미는 천하의 나쁜X이 된거구.
그래... 결혼할 인연은 따로 있는 거지. 그게 누군지 미리 알면 얼마나 좋겠어. 그걸 모르니까 우린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그 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열렬히 사랑하는 거겠지. 결국은 죽을 걸 알면서 목숨 걸고 사는 인생처럼, 사랑도 그 순간엔 진심을 다해야지. 그래야 진짜 후회는 없을거야. 지호와 유미의 사랑도 그 순간엔 진심이었을 거야. 다만 결혼까지 갈 수 없는 인연이라 헤어진 거겠지. 유미가 지호를 미워하거나 싫어했다면 자기가 낳은 아이를 그렇게 맡기고 떠나지 못했을 거 같아. 잘 키워줄거라고 믿으니까 떠날 수 있었고, 새출발도 할 수 있었겠지.
원망하지 말자.
그래도 은우를 낳은 사람이니까.
미워하면 은우한테 상처주는 거니까...
은우가 생모를 본적도 없어서 정인이 보자마자 엄마라고 부를때 찡하더라
ㅇㅇ 은우가 젤 짠해. 어린 아이가 무슨 죄냐구... ㅠㅠ 지호도 은우 땜에 더 맘 아파서 우는 거구. ㅠㅠ
지호의 불안한 마음도 이해가갔어
지호가 '6년이야 6년!' 하며 화내는데 그가 미혼부가 된 처지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까 너무 맘 아프더라. 은우 아빠로 1년 2년 3년 이 악물고 버티면서 말없이 떠난 은우 엄마가 갑자기 돌아와서 그의 일상을 뒤흔들까봐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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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목이멘다 부디행복하길
김은 작가님이 이유커플처럼 사랑할때 서로 배려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남녀랑 상대방보다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기석이랑 유미같은 이기적인 남녀를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비교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오오오오... 그렇네...봄밤은 갈수록 여러가지 해석이 계속 나오는거 같애..
222 좋다 이유커플과의 비교대상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주려는 의도, 그러네. 너봠 해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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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석이 널 위한 내 선택이라면서 정인에게 프로포즈를 했지만, 실은 지호에게 밀리는 게 존심상해서 고집부리는 거지. 영국이 뒤늦게 정인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붙잡으라고 한 것도 한몫을 했고. 근데 생각해보면 기석 입장에선 정인도 이기적인 거 아닐까? 사랑도 이별도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재인이 그랬잖아. "좀 이기적이면 어때? 내 진심을 지키는 일인데."
아래 218.154봠의 댓글처럼 지호랑 유미 관계나, 기석과 정인 관계는 서로에게 실패했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신이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가 계속 이어갈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재인 말을 한 번 더 빌리자면, 이별은 서로의 민낯을 봐야 제대로 끝나는 거 같아.
정인은 기석과 헤어지면서 상대방 탓을 하지 않아. 마주치는 일도 피하지 않고. 그가 계속 억지를 부리고 괴롭히며 부정한 방법을 써도 화내지 않고 상처줘서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그가 이별을 받아들일 때까지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서로가 상처를 덜 받고 헤어질 수 있었을 거 같아.
반면 유미는 지호한테 떠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지 않고 그냥 잠수탔어. 최악이야. 그러고 보니 너봠말이 맞아. 정인은 마음이 변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한 거고,
유미는 지호에 대한 배려 따윈 1도 없이 떠난거지. 작가는 봄밤을 통해 사랑과 이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여준거네. (읽기글에 쓸 감상을 댓글에 도배해서 미안. 이제 끝)
얼굴도 모르는 유미라는 여자때매 유미라는 이름이 밉고 싫어지는 경험을 했어. 아무리 해도 이해안돼
ㄱㄹㅎㄷ
정인본체도 지호본가에 갔을때 메이킹에서 계속 유미 얘기하면서 뒤끝있다고 얘기하잖아 그 전회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 정인으로서 느껴지는 듯 했다 그래서 유미얘기 농담처럼 계속하는게 아니었을까 - dc App
ㅇㅇ 기억나. 다음 장면 읽기글 쓰고 나면 메이킹 복습해야겠다.
기석이가 초반에 한말 "잘하지 어떻게 했길래 여자가 떠나" 에 정인이가 그랬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지않냐고 마음이 변했는데" 사랑을 하다 헤어지게 된다던가 아니면 사랑을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구나 알게 되었을때 나는 작가가 위로를 해준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가 부족하고 네가 좀더 배려하고 온마음을 다하지 못한게 아니다.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라고할까. 정인이 기석부에게 말하길 우린 서로에게 실패한거라는 대사도 그렇고. 혜정의 괜찮아 괜찮아는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너봠 댓글을 계속해서 보고 있어. "마음이 변했는데."란 대사를 곱씹을수록 참 많은 생각이 들어. 연인이 되려면 두 사람 마음이 일치해야 하지만, 이별은 한쪽 마음이 변해도 시작되는 거잖아. 자신에겐 X같은 구남친(여친)이지만,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헤어진 연인 중에 후회로 가득한 인연이 있거든. 너봠이 말한 대사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냐고. 마음이 변했는데.", "저희는 서로에게 실패한 겁니다.", "괜찮아 괜찮아." 를 맘에 새기니까 진짜 위로가 된다. 이젠 좀 편해져야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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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 흐규흐규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