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 (크게 숨을 뱉고) 솔직히 당장 지호씨하고 뭘 어떻게 한단 생각, 꿈도 못 꾸고 있어요. (아, 지호를 본다.) 내말 뜻은..
-> 지난 번 도서관에서 영주에게 '그의 곁에 있을 자신이 없어.'라고 말했던 그녀다. 지호한테 속마음을 털어놓다보니 너무 솔직했나.. 눈치를 본다.
지호: 섭섭해서가 아니야. 너무 이해가 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막막하겠지. 같이 헤쳐나가자, 극복할 수 있다, 그런 건 판타지야. 오히려 정인씨가 지금이라도 현실을 깨닫고 냉정해진다면, 원망 안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 판타지를 꿈꾸지 않는 연애와 사랑, 결혼이 있을까?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처지가 그에게 자꾸 냉정해지라고 말한다.
정인: 거짓말, 없었던 일로 하자, 다시 모르던 때로 돌아가자 하면 받아들인다고?
-> 뭐지? 또 나를 밀어내나? 언제든 힘들면 발 빼려고 준비하는 거야?
지호: (정인을 보며) 지금은.
-> 아니, 내 마음은 변치 않아. 근데 지금 당신은 내 존재만으로도 힘들잖아... 자신없잖아...
정인: (그를 보는 눈에 정인의 눈물이 차오른다.)
-> 아.. 그도 나처럼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지금이 많이 힘든 거구나.
지호: 아주 오래오래 시간이 지나서, 그때도 혹시 지금 같은 마음이면... 나한테 와요.
-> 시간이 오래오래 지나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남들에게 숨기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그때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여전하다면, 그 때 와도 되요.
정인: (눈물이 그렁그렁) 막..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도?
-> 언제까지나 변치 않고 기다린다고?
지호: (슬프지만 미소) 그래도..
-> 그래..
정인: (눈물을 머금은 미소)
지호: (망설임은 끝났다. 세발짝, 그녀 앞에 선다.)
정인: (오래 기다렸어요.)
지호: (정인을 소중히 안으며) 천천히 와도 돼요. 오기만 해.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까.
서로의 등을 팔로 꼭 안아준다.
하나가 된다.
기석과의 만남 뒤 집으로 돌아온 지호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다.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지호: 응, 정인씨~
정인: 전화한대놓구...
지호: (커피잔 들고 식탁에 앉으며) 정인씨가 괜찮을 때 통화할 거 같았어요.
정인: (혹시) 기석 오빠 여기 온거 알고 있었어요?
지호: (역시나) 갈 거라고 생각했죠. (커피 한모금)
정인: 뭐 마셔?
지호: (차분하게) 커피.
정인: 일부러 그러는거야, 아님 진짠거야? 왜 이렇게 여유가 넘쳐?
지호: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흥분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왠만해선 크게 놀라는 편도 아니고.
정인: (지호의 침착함이 부럽다.) 어른이네~
지호: 일찍 세게 놀래봐서.
정인: 지금보다도 어렸을 땐데, 그 큰 일을 어떻게 견뎠어요?
지호: (그 때 생각에 멈칫 하다가 표정을 풀고) 시간이 해결해준 거 같아요. (그나저나 정인이 걱정이다.) 괜찮았어요?
정인: 각오했던 부분이라... 지호씬, 만나서 맘 상하진 않았어요?
지호: 아니? 오히려 기석 선배가 많이 당혹스러웠을거예요. (조심스럽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애요.
정인: 무슨 뜻이에요?
지호: 두 사람, 지나온 시간만큼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누가 잘했건 잘못했건 상처잖아. 그만큼 아플거구..
정인: (속깊은 지호에게 또 감탄한다.) 어쩜 그런 생각을 해?
지호: 나도 아파봤으니까. 기억하죠? 천천히 와도 돼. 나 어디 안가.
정인: (희미하게 미소)
-> 8회에서 숙희가 경험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했던가? 20대 후반, 갑작스런 이별의 충격을 세게 겪었던 지호는 방황과 원망의 나날을 보내며 상처로 힘들어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없이 떠난 은우 엄마도 말 못할 힘든 일이 있었겠구나, 하고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인과 기석에게도 상처로 남게 된 두 사람의 지난 시간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란 걸 안다. 자기에게 천천히 와도 된다고, 상처 입은 마음을 잘 추스리고 오라고 배려해준다.
지난 6년 동안 은우만 바라보는 아빠로, 부모님 속썩이지 않는 아들로만 살아온 그는 과연 지난 상처를 다 극복했을까? 15회에서 은우 엄마 소식에 무너지는 지호를 보기 전까진 '시간이 해결해준 거 같아요.'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나보다. 아니, 다 잊지 못했어도 정인을 만났으니 이제 걱정 끝, 행복 시작! 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만약 은우 엄마가 나타나서 그를 흔들어도 절대 이유 커플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근데 작가는 은우 엄마의 소식 한 줄만으로 이유 커플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다. 이때는 꿈에도 상상 못한 전개네.)
지호네 카페, 세 번째 방문이다. 단골이 된 이유 커플은 그들의 지정석인 창가 자리에 앉아 서로 마주본다. 되게 오랜만인 거 같다.
지호: (반가움에) 갑자기 차 한 잔 하자고 해서 놀랐어. 진짜 무슨 바람이 분거예요?
정인: (귀엽게) 봄바람. (차 마신다.) 퇴근하다가 그냥. 피곤은 한데 집에 바로 가기는 싫고, 진탕 놀고싶은 건 또 아닌? 뭐 그런 날 있지 않아요?
지호: (미소 띠며) 그래서 또 만만한 유지호?
정인: (그건 아니다.) 편해서지~
지호: 말은~ (피식)
정인: 진짜! (눈을 맞추며) 난 지호씨가 편해요. (밝고 귀여운 말투로) 꼭 맞는 베개같애.
지호: (정인의 얼굴을 빤히 보며) 걱정 많이 되죠?
-> 갑작스런 정인의 방문이 반갑고 기쁘지만, 그녀가 자기 앞에서 일부러 더 태연하게 밝은 척하는 거 같아 신경쓰인다.
정인: (고개를 저으며 차 마신다.)
지호: (입술을 물었다 떼며) 나만 믿어라, 그런 뜬구름 같은 약속 못해.
-> 정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싶진 않다.
정인: (지호를 본다.)
지호: 대신, 좋을때든 힘들때든 괜찮아. 언제든 오늘처럼 와요.
-> 언제나 늘 항상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정인을 기다리겠다고 약속하는 지호.
정인: (두 팔을 테이블에 올리고 기대서 귀엽게) 방문 서비스는 없나?
->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지호를 바라보던 게 엊그제인데 이젠 막 애교가 넘친다. 사랑이 좋구나~~
지호: (웃으면서 장난친다.) 누구처럼 하는 거 봐서.
정인: 치, 못된 건 진짜 빨리 배워.
지호: 매일매일 달려가고 싶지.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그런 맘이 얼마나 큰데...
-> 지호는 지금 죽을 힘을 다해 참고 있다. 그녀를 보고 싶고 손잡고 싶고 안고 싶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그녀를 밀어낼 때가 더 힘들었을까, 지금이 더 힘들까?
정인: 근데?
지호: 함부로 까불다가 이정인 잃어버리면 어떡해? 다신 없을 사람인데...
-> 어후... '다신 없을 사람'이라니, 사랑한다는 말보다 백 배 천 배 감동이다.
지호: 정인씨 보면, 정인씨 부모님도 좋은 분들일거라고 생각해요.
정인: 치, 아빠 봤으면서.
지호: 자식한테 욕심 없는 부모님이 어딨어.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돈 이해돼.
-> 지난 번 정인의 집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태학으로부터 무시당한 지호는 분명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생각해서 그녀의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정인: 재인이가 힌트 줬다던데?
지호: 각오하고 있던 부분이라... 그리고 난 지금 너무 행복해서 급하게 쫓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해.
-> 그의 시선이 또 갈 곳을 잃는다. 그는 생각한다.
'우리가 그녀의 부모님 앞에 나란히 서서 연인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까? 그냥 참고 기다린다고 그 날이 오진 않겠지. 그치만 마냥 욕심내고 서두르다가 그녀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
모든 게 조심스러운 그는 그녀 혼자 가시밭길을 고군분투하며 헤쳐나가는 거 같아 걱정이다. 내 삶의 마지막 여자, 그는 그녀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으니 함께 손잡고 한 발 한 발 내딛고 싶다.
정인: (뭐가 충분해. 거짓말) 난 아냐. 유지호가, 욕심나.
-> 정인을 배려하느라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지호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정인. 다신 지호씨 상처 주지 않고 가겠다는 약속과 사랑한다는 고백 이후, 누구보다 당신을 놓칠 수 없다는 말로 그녀는 그의 맘에 드리운 그늘을 단박에 걷어낸다.
지호: 우와~ (활짝 웃으며) 살맛난다.
-> 지호 표정 변하는 거 봐라. 어후~ 그는 진짜 정인의 손바닥 위에 있나보다. 만약에 둘 다 성격이 같았다면 어땠을까? 정인처럼 앞만 보고 급하게 서두르다보면 모두 상처입고 힘들어지거나, 지호처럼 남 배려하면서 망설이고 주저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후회만 남지 않았을까? 지난 번 공원 데이트에서 한 말처럼 둘은 서로 성격이 달라서 잘 맞는 거 같다. 그래서 앞으로 힘든 일도 서로 의지하고 배우면서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인: (웃다가 또 훌쩍인다.) 엄마가... 대답은 안 하고 갔어.
지호: (두 손으로 정인의 손을 감싸 잡는다.) 내가 왜 항상 '괜찮다, 천천히, 걱정하지 말아라.' 하냐면, 정인씨하고 나만이 알고 있는 확신이 있어서에요.
정인: 지호씨가 말하는 우리?
지호: (고개를 끄덕이며) 응.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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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른스럽던 지호가 유미 소식에 무너져내린 걸 보면 시간이 해결해주긴 개뿔. 자기에겐 너무 아까운 정인을 붙잡기 위해 그동안 괜찮은 척 애쓴 거 같아.
초심을 잃지 말라고 했던가? 지호는 정인과 나란히 앉아 읽었던 책 내용을 다시 되새기길 바래.
지호: (목을 가다듬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잃을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그래선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내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트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정인: (이어서)
신이여, 고맙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라고 말하자.
지호는 책을 든 채 정인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도 그를 올려다보며 함께 눈을 맞춘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포시 입을 맞춘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서로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한다.
그녀는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팔뚝을 손으로 감싼다. 그의 어깨는 그녀에게 딱 맞춘 베개처럼 편안하고 포근하다. 그는 자신에게 기댄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뭉클해진다.
그와 그녀는 함께 읽은 책의 구절처럼 어떤 계산도 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들의 무기는 오직 사랑만으로 만들어졌기에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고 단단하다. 앞으로 이들 앞에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서로의 순수한 마음을 믿고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트리지 않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며 지혜롭게 헤쳐나갈 것이다.
그와 그녀를 서로에게 데려다 준 신에게 감사하면서...
읽을거리 많네
많이 올려줘서 ㄱㅅㄱㅅ
사랑은 이유처럼
그와 그녀를 서로에게 데려다 준 신에게 감사하면서...횽 시인같다 로맨틱한 표현(감탄)
다시없을 이유
좋아하는 씬들의 구성이다 고마워
봄밤 읽기 복습편 너무 좋다! 봄밤 감동 선물세트같은 느낌이야^^
아주 오래오래 시간이 지나서, 그때도 혹시 지금 같은 마음이면 나한테 와요 이때의 지호의 표정을 (눈썹 올리고 눈과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말도 안되지만 따라해본적이 있었어 ㅋ 그만큼 지호의 이장면에서의 눈빛과 표정을 참 좋아해
복습 좋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