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정인이 복도를 걷다가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기석을 발견한다. 기석, 정인을 보고 일어난다. 술에 취해 휘청거린다.

정인: (기석 앞에 선다.)

기석: 집에서 술 좀 마셨어. 흠... 마시다가

정인: (차가운 말투로) 용건이 뭔데?

기석: 그냥 왔어...

정인: (어이 없다.) 술 마시니까 생각이 났다구?

-> 오늘 무슨 날인가? 남자들은 원래 술 마시면 그런가? 이미 맘 떠난 여자를 못 잊고 난리냐고.
기석: 뭐 그것도 이유가 되고... 뭐 어딨다 온거야?

정인: (귀찮다.) 알면서 뭘 물어?

기석: .......

-> 지호 만났군. 근데 왜 이렇게 시비조지? 그랑 무슨 일 있었나?

정인: 나 다시 만날 수 있어? 한 번 배신했었는데, 나 다시 만날 수 있겠어? 또 그럼 어떡할라구.

기석: (갑자기 왜?) 무슨 의미로 물어보는 거야?


정인: 말 그대로야. 내 마음이 또 변할 수도 있잖아.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은 못 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나 믿을 수 있어?
-> 정인이 정말 확인하고픈 건 지호의 마음이다. 배신하고 떠난 여자때문에 아직까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건 미련이 남아서일까? 언제라도 돌아와서 다시 잘해보자고 하면 그는 그녀를 받아줄 건가? 그가 혹시 지금 흔들리는 건가?

기석: .......

정인은 대답을 못하는 기석을 빤히 보다가 냉소를 지으며 돌아선다. 현관 앞에 가서 비밀번호를 누른다.

기석: (고개 들어 정인을 보며) 믿을 수 있어.

-> 관성적으로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정인은 지호를 만나 궤도를 이탈한 지 오래인데, 기석 홀로 궤도를 돌며 그녀를 끌어당긴다.

기석의 외침에 순간 멈칫한 정인, 손잡이를 잡은 손이 미끄러진다. 다시 문이 잠긴다. 그녀는 천천히 그를 돌아본다.


다음 날 오전, 지호가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액자를 본다. 어제 정인이 오면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밤에 집에서 정인을 봤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녀는 어떻게 집에 갔을까? 휴대폰을 찾아 연락온 게 있는지 확인하는데 마침 영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호: 어.

영재: 출근했냐?

지호: 아직

영재: 퍼 마시더라.

지호: 어제, 정인씨 어떻게 갔어?

영재: 기억이 안나? 하나도?

지호: 다는 아니고... 정인씨한테 내가 이상한 소리 안 했지?


영재: (어이없다.) 미친 거 아냐? 정인씨 못 믿겠다구, 은우랑 너 버리는 거 아니냔 식으로 말했잖아.

지호: (깜짝 놀라서) 그런 소리를 했다고? 내가 정인씨한테?

영재: 그럼 뭐 나한테 했을까? 어? 너무 오해를 하고 가는 거 같아서 내가 사실은 유미일

지호: (답답해서 언성이 올라간다.) 아니, 왜 쓸데없는 소릴 해~!

영재: 하지 말라구 그래서 못했어. 안 듣겠대.

지호: (사태가 심각하다.)

영재: 그렇게 숨기고 싶으면 티를 내지 말든가. 지랄은 다해놓고 무슨.

지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괴롭다.)
-> 어후, 그눔의 술이 웬수지. 이 씬은 다 필요없다. 영재의 말투를 흉내내면서 그의 대사를 따라해보자. 지호땜에 터진 속이 좀 가라앉을거야.


도서관, 정인의 책상 위 휴대폰 진동이 울리자 하린이 책장 앞에 서서 일하는 정인에게 들고 온다.

하린: (휴대폰을 내밀며) 전화. 끊겼네...

정인: (휴대폰을 받아들고) 어, 고마워~ (지호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정인은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일을 한다.)


텅 빈 도서관 상영관에 정인 혼자 눈을 감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커피 두 잔을 손에 든 영주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정인: (문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본다.)

영주: 뭐, (다가오며) 유지혼 줄 알았어?

정인: 치~ (영주가 내민 커피를 받아 든다.)


영주: (정인 옆에 앉아) 날밤을 새고 출근해서, 점심까지 포기하면서, 그렇게 낸 결론이 뭐야?

정인: (한숨을 쉬며) 정리가 안 돼.

영주: 일단 제일 걸리는 게 뭔데? 애엄마?

정인: 아직 못 잊은 거 아닐까?

영주: 말이 되냐~? 만약 1이라도 그런 마음 있으면 지호씨, 야 정말 미련한거다. 자존심도 없어?


정인: 기석 오빤?

영주: 기석씬 집착인거고.

정인: 지호씬 날 못 믿겠다는데, 오빤 날 믿는다더라.

-> 정인의 마음을 믿어도 되냐는 지호의 물음은, 그녀에게만은 버림받고 싶지 않은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반면 그녀를 믿을 수 있다는 기석의 장담은, 지호 같은 남자에게 그녀를 뺏기는 일만은 막고 싶은 그의 자존심이다.
영주: 말하는 사람이 바뀐 거 아니냐?


정인: 바뀐 게 진실일수도 있지.

영주: 너무 나갔다. 이 기회에 유지호 꼬투리 잡아서 내뺄라고?

정인: (피식 웃으며) 그것도 고민해볼게. 나름 정리된 건, 너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거에만 빠져있었던 거 같애.

-> 정인은 지호와 당당한 연인이 되기 위해 기석과 헤어지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에만 신경썼다. 둘 사이의 사랑은 그와의 결혼을 결심할 만큼 깊어졌다고 여겼다. 자신보다 지호를 먼저 배려하고, 객기가 아닌 진짜 용기를 내면 그를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앞만 보고 나아가면 돌파구가 보일 줄 알았는데, 어젯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지호를 보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밤을 새고 출근해서 밥도 못 먹고 고민하며 깨달은 건, 둘이 풀어야 할 문제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녀 혼자 애쓴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영주: 근데 있잖아... 상대방의 과거를 다 아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냐. 그냥 모르는 척 덮어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정인: 서로 몰래 의심하면서?

영주: 아... 유지호는 몰라도, 이정인 성격에 그 꼴 못 보지.

정인은 그동안 지호가 먼저 말해주지 않는 그의 과거와 상처를 먼저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에겐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숨기고 그녀가 외면한 상처와 컴플렉스는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제는 더이상 괜찮은 척, 쿨한 척하며 덮고 넘어갈 수 없다.


정인은 퇴근 후 택시를 타고 지호네 약국 앞에 왔다. 오늘따라 우리 약국은 지호가 정인의 연락을 받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약국 퇴근시간, 지호가 서둘러 탈의실로 들어오며 정인에게 전화를 건다.

정인: 여보세요.

지호: 어, 정인씨.

정인: 응

지호: (정인의 눈치를 보며) 바빠가지고 전화를 다시 못했어요.

정인: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아요.

지호: 어제는 집에 잘 갔죠? (말해놓고 아차 싶다.)

정인: .......

지호: (뭘 실수했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이상하게 술이... 화났죠. 많이 마시긴 했는데... 실수한 거 알아요. 알고, 나 그... 원래 안 그래요. 안그런데... 일단 봐요. 만나서 얘기해요. 내가 정인씨 집으로, 아님 우리 집으로 올래요?

정인: 아니, 카페에서 봐요.

-> 정인은 서로의 집이 아닌 바깥에서 이성적으로 그와 대화하려 한다.
지호: (순간 긴장한다.)

-> 정인이 평소와 달리 냉정해진 걸 느끼고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1.224봠 댓 추가)



카페 안, 지호와 통화를 끝낸 정인이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한숨을 내쉬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다.

정인: (전화를 받으며) 어, 엄마.

형선: 집에 오든 내가 가든 연락 좀 하라니까.

정인: 아, 미안. 좀 바빴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빠가 또 뭐래?

형선: 엄청 뭐랬다. 근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거 같애?

정인: 아닌데. 캘리 하는 날 봐.

형선: 수업 끝난지가 언젠데...

정인: 아...

형선: 딴 게 아니구, 너 그 사람말야

정인: 나중에, 이번 쉬는 날 갈게. 그 때 얘기해.

형선: 아, 뭘 그 때 얘기

정인: 엄마, 나 지금 좀 통화 어려워. 갈 때 얘기할게요. 끊어요~

엄마와의 통화를 끝낸 정인은 속상하고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첩첩산중에 갇혀 지금은 도망갈 수도 없다. 우선은 지호와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