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국, 탈의실 커튼을 열고 지호가 나오자 혜정이 들어온다.
지호: (혜정을 돌아보며) 나 정인씨한테 실수한 거 같애.
혜정: (가운을 벗어 걸며) 무슨 실수?
지호: 은우하고 나, 버릴 거냐고 했대.
혜정: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지호: 말이 되요?
혜정: 근데 왜 그런 헛소리를 했어?
지호: 알잖아. 어제 너무 취했던 거. 진짜 미치겠네 진짜.
혜정: 간만에 인간같네. (미소 띄며) 잘했다.
지호: (혜정의 반응이 의아하다.) 뭘 잘해?
혜정: 좀만 흐트러지면 큰일 날 것처럼 기계적으로 살았잖아. 반듯하긴 한데 인간미는 없었어.
지호: 그게 잘못된 거야?
-> 지호는 그동안 엇나가지 않으려고 자신을 통제해가며 살았는데, 인간미 없단 소리나 들으니 서운하다.
혜정: 잘한 것도 아니지. (팔짱끼고 지호를 보며) 니가 보여준 건 유지호의 민낯이 아니니까. 반박해봐~
-> 혜정이 아는 지호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은우 아빠가 되기 전엔 지금처럼 성숙하진 않았지만 대신 유쾌하고 영리했고 전투적인 청년이었다. 정인에게 좋은 남자이고픈 그는 내면의 상처를 숨긴 채 어른스럽고 배려심 넘치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러다 이 사단이 났으니 정인이 받은 충격은 훨씬 더 컸을 거다.
지호: 아이 그, 일단 그거보다 정인씨 어떡하냐구~
혜정: 흠... 너두 니 과거가 무거운데, 정인씨한텐 얼마나 더하겠냐. 이해만 바라지 마. 그건 이기심 중에서도 제일 못난 이기심이야.
지호의 심경이 복잡해진다.
-> 아이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까지 짊어진 지호는 정인이 너무 아까워서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알아봐주는 그녀에게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금방 바닥이 드러날 거란 걱정만 했던 머저리였다. 당장의 감정에 빠져 무작정 가다가 그녀가 그를 만난 걸 후회하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를 놓치고 자신이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었다.
그녀를 좋아할수록 자격지심이 커진 지호가 은우 일로 그녀에게 화를 낸 날, 숙희는 그가 미혼인 여자를 만나는 걸 반대하며 이런 말을 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한테 니 입장만 이해해달라고 그럴래? 넘 못난 짓이지, 그런 억지가 어딨어?"
그는 정인에게 과거의 아픔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기가 평생 안고 갈 십자가라고 생각했으니까. 은우 엄마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그녀가 그의 상처까지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숙희도 혜정도 상대방에게 이해만 바라는 건 못난 짓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해주더라도 서운해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건가? 그럼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카페 안 이유 커플의 지정석, 정인은 지호를 보고 있지만 그는 미안한 맘에 차마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정인: 할말이 없는 거예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거예요?
지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인: 다시 말해줘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건지, 변명거리도 못 만들만큼 기억을 못하는 건지 묻는 거예요.
지호: (겨우 입을 뗀다.) 둘 다...
정인: 아무리 취했어도 전혀 기억을 못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지호: 변명으로 들릴 거 알아요. 근데 진짜 너무 취해서 술김에 나온거지, 내가 정인씨를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정인: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지호: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미안해요.
지호: 미안해요. 정말 너무 미안한데, 그런 생각 단 한 순간도 한 적 없어. 진짜, 어떻게 우릴 버리니 어쩌니, 입으로 옮기기도 민망해.
-> 영재한테 들은 말을 떠올리며 절대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고 사과를 한다.
정인: 나야말로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에요.
지호: (순간 안심되서) 거봐.
정인: 근데, 나도 버릴 거냐고 물었어요. 정인씨도 우릴 버릴 거냐고.
지호: (하...)
정인: 말꼬리 잡는 거 맞아요. 너무 오버다 할 것도 알고요. 근데 내가 받은 솔직한 느낌은, 근데 이정인 너도 똑같은 거 아니야? 였어요.
지호: (취중에 밷은 말실수로 그가 그녀를 못 믿는다고 여긴다니 답답하다.)
정인: 그런 의도 아니었던 거 알아요. 그래서 내 솔직한 느낌이었다고 하잖아. 지호씨의 상처가, 시간이 지났다 해서 흔적도 없이 아물었을 거라고 생각도 안했어. 그렇다고 해도 술 때문이니까,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이겠거니 덮어지는 것도 아니야.
지호: 내가 어떻게 정인씨를, 하... 내가 지금 너무, 너무 답답한게, 솔직히 다 기억이 안 나. 그래서 변명이든 반박이든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과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서. 오히려 오해만 더 만들까봐... 진짜 나도 미치겠다니까.
정인: 사과받잔 거 아니예요.
지호: 잠깐만, 정인씨가 말한대로, 내 과거 때문에 내 상처 때문에 안 그럴라고 해도 자격지심이 없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도 모르고 있던 불안이 나온 거 뿐이야. 단순히 그거라니까?
정인: 내가 그래요. 나는 만났던 사람을 배신했고, 그걸 지호씨한테 고스란히 보여줬잖아.
지호: 억지야.
정인: 지호씨처럼 나도 자격지심이야. 알아. 날 전혀 믿지 못한단 거 아닌거, 아는데...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요.
-----------------------------------------------
12회에서 영국의 집에 찾아갔다가 심란해져서 돌아온 정인이 생각나. 그 때 썼던 읽기글 가져와봤어.
사람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르니 확신하는게 아니라는 영국의 말이 정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패잔병이 되어 겨우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침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다.
정인은 지호를 만나 오랜 고민 끝에 우리가 되기로 약속하고 포옹을 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손을 맞잡고 키스를 나눴는데, 그런 절실한 마음 또한 언젠가는 바뀔지 모르는 걸까? 기석과의 4년 연애가 이렇듯 허탈하게 끝나버린 것처럼? 마음은 정말 확신하는 게 아닌 건가? 지호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 정인의 자격지심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까? 다음날 만난 지호가 그녀를 믿는다고 하니까 그녀는 '사람 맘은 변하는 거라는데... 물론 나도 그래봤고.'라며 믿음에 대해 자신없어 했다. 그녀가 그에게 먼저 물어본거다. 날 믿을 수 있냐고. 그러자 그는 '날 만나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라며 우리 인연은 다르다고 말해줬다.
지호: 내 마음을 열어서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난 이정인이 아까워서 밀어냈던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했던 여자가 나한테 오려고 그렇게 힘든 노력을 했는데, 내가 그 마음을 의심했다는 게 말이 돼?
정인: 지호씨가 아니라, 내가 날 의심하는 거예요.
지호: ??
정인: 난 얘기했었죠. 유지호가 욕심난다고. 지호씨는 날 밀어낼 생각도 해봤었지만, 난 놓을 수 없단 생각만 했어. 그 욕심 때문에 내가 너무 준비없이 뛰어든 거 같애.
-> 그동안 정인은 기석과 이별하고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애쓰면서 많이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도 상처입고 지쳤지만,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보다 지호가 힘들어할까봐 괜찮은 척하며 그를 더 배려했다. 누가 뭐래도 이정인은 유지호라며 우리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렇게 브레이크가 걸리고 나니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건 그녀의 욕심만 앞선 질주였던 걸까?
지호: 내가 어떻게 하면 정인씨 마음이 풀리겠어요?
정인: 지호씨가 아니라 나라니까? 지호씨 더 곤란하게 하려고 나 때문이다 쇼하는 거 아니야.
정인: (울컥해서) 사랑해요!
지호: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정인: 이렇게 사랑하면 되는 건줄 알았어. 전부 이해하고 덮어줄 수 있다고 멋대로 생각, 아니... 생각도 안했어.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지.
지호: (울컥)
정인: 근데, 지호씨의 과거가 이렇게 잠깐 튀어나오는데도 철렁한거야. 꼭 외면하려는 걸 맞닥뜨린 것처럼. 그래서 알았어요.
지호: (미안하고 또 괴롭다.)
정인: 내 마음이 아직 모자라단 걸. 어떤 상황이든 내 부족함을 들키게 되면 우선 피하고 싶잖아. (고개 숙이고) 지금 내가 딱 그래요.
-> 정인은 지호의 취중실수를 꼬투리 잡아서 그의 진심을 왜곡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과거까지 이해하고 포용해주기엔 자신의 마음이 아직 부족한 건가 싶다.
지호: (고개가 푹 숙여진다.)
정인: 내 자신을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애. 넘어가줄 법도 한데, 이것도 이해를 못해주나 싶겠지만, 미안해요. 다른 때 밥 먹듯 했던 거짓말도 안 나와. 쿨한 척 괜찮은 척, 속이기 싫어. 나한테 그래주는 것도 싫고.
-> 정인은 기석을 만나는 동안 그가 욱해서 헤어지잔 말을 하면 그녀는 참고 못 이기는 척 맞춰주었다. 갈등 상황을 부딪혀 해결하기보다 피하기만 했다.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고 성숙한 연애인 줄 알았다. 이별을 결심하고 나서야 알았다. 사랑이 아닌데 사랑인 척 상대를 기만해왔단 걸.
지호와의 사랑은 달라야 한다. 남들이 정의하는 사랑법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으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 괜찮다고 서로를 속이며 만나다보면 이런 문제가 또 생길 수 있다. 부족한 점은 솔직히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해결 방법을 찾아야 제대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지호: 맞아요. 속이기도 하면서 살았어.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두려움이 남아서.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정인씨를
정인: 지호씨 마음을 이해못한다는 게 아니야.
지호: (멈칫)
정인: (한숨 쉬며 창밖을 본다.)
지호: 그럼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알겠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겠구.
정인: (지호를 보다가 고개 숙인다.)
지호: 이정인.
정인: (고갤 들어 지호를 본다.)
지호: 맨정신에 정확하게 다시 말할게. 우리, 버리지마.
-> 지호가 취중실수가 아닌 취중진담으로 하고픈 말은 이거였다.
정인: (버릴 거면 지금 버리라며? 나 없어도 괜찮다며?)
지호: (아니야. 이젠 당신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어.)
p.s.
보통은 읽기글 쓰고나서 대본집 찾아 읽는데, 이번 편은 현일에 치여서 아직 못 읽었어. 이 씬에서 정인의 표정 두 개를 움짤로 찐 건 그녀의 복합적인 심리를 같이 얘기나눠봤음 해서야. 정인이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그리고 '우리, 버리지마.'라는 지호의 말을 듣고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참 복잡해서 뭐라 딱 명쾌하게 그녀 맘을 읽지 못하겠어.
정인은 지호를 너무 사랑하고 욕심나서 프로포즈까지 한 상테야. 근데 그의 상처를 쿨하게 이해하고 괜찮은 척 넘어가주지 못하는 거 보면 자신의 사랑이 아직 부족한가 싶어. 기석과 헤어지고 그를 선택하면서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남들에게 욕 먹더라고 후회는 안했어. 근데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날 지조 없는 여자로 보는건가 싶어 자격지심이 든 거지. 지호가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나 싶어 서운한 마음도 들고, 믿어도 된다고 자신있게 말 못한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속도 상해.
마지막에 지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그가 맨정신에 하는 말을 못 믿는 건 아닌 듯해. 그에 대한 오해나 의심은 풀렸지만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
눈물 날려고 해 ㅜㅜ
보고 있음 같이 울컥하게 돼
지호 옷이 사죄의 복장이라고 메이킹에서 말하던거 생각나고
이유 표정 맴찢
둘다 과거가 있다보니까 서로 자격지심 얘기 할때 이해가면서도 속상하구
내가 연애할 때 느꼈던 자격지심도 생각나더라
다시봐도 울컥
본체들 연기를 넘 잘해서 눈물난다
나두ㅜㅜ
하...벌써 봄밤읽기가 여기까지 왔구나 끝이 보인다는건 참 슬픈일이야 ㅜㅜ
나두 그 생각... 봄밤 읽기 끝이 보인다는것도 너무 슬퍼... ㅜㅜ - dc App
이 장면이 남은 회차에서 이유 커플의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크고 중요한 씬 같아서 글 쓰는데 오래 걸렸어. 읽기글 끝나도 끝이 아닐거야. 새해에는 새롭게 뒹굴거니까. 벌써부터 너무 슬퍼하지 마러
움짤 둘 카페씬 중 내 최애장면들이네 정인,지호 표정 맴찟이다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연기 너무 잘했어
22222
이유처럼 내맘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음 좋겠다. 싸움도 이유처럼.
나두 동감이야. 기석처럼 남탓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부족한 점 찾고 돌아보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말하고. 멋져
봄밤 읽기 읽어내려가는데 눈물이 주르륵... 이 카페씬은 다시보니 더 레전드... 본체들 정말 정인 지호 자체였던 것 같아 연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 dc App
정인의 사랑해요 저장면을 몇번을본건지 온갖복잡한 심정을 너무잘표현해준 정인본체 연기에 감탄또감탄 맴찢이지만 꼭필요했던 장면
ㄴㄷㄴㄷ 사랑해요라는데... 심장이 쿵!!! 그 말 들은 지호 표정도 심장이 쿵!!! - dc App
사랑해요라는 대사가 굉장히 클리셰한 대사인데 그 대사가 나오눈 타이밍이 전혀 생각지 못한 순간이라 정말 신선하게 들렸던 생각이 난다 그리구 둘의 주고 받는 눈빛이 너무 서로가 절실한 거 같아 맘아팠던게 생각나 또 봐야지
22222
이정인 우리 버리지마 하는데 박력있음에 너무... 봄밤읽기 너무 너무 고마워 덕분에 완전 감격... 감동..
박력있게, 맞아. 지호 아부지가 그러짆아. 너 하나 믿고 오는건데 자신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성숙된 사랑의 본보기=지호정인의 사랑 앞으로 두고두고 관계가 힘들어질땐 다시 꺼내보게 될 장면들이 될 듯 싶네 지호정인의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남녀관계의 사랑을 넘어 부모자식간 관계 친구와의 관계 사회생활 속 관계맺음에 대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깨닫게 하네 여전히 지독하게 봄밤앓이중인 나봠.. 어쩌지 ㅎㅎ
드라마가 인간관계의 지표가 되다니 놀라워.
덕분에 어제 늦은밤에 이 회차를 다시 봤어. 봄밤을 수도없이 본거 같은데 최근에 볼때는 정인의 시선과 감정변화들이 자꾸 들어와서 대사하나 표정하나 손짓하나하나가 정말 많이 고민해서 찍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장면은 유독 대사씬이 좋아서 자주 보는 장면이야. 그리고 사랑해요. 우리 버리지마도 콕 박혔지만 뒷장면들도 참 좋았어.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정인이, 컴컴한 방안으로 들어와 불을 킨 지호. 방안에 액자를 본 후에야 불현듯 내가 뭘한거지 듯한 정신없이 계단을 두개씩 뛰어내려가는 지호. 결국 정인이를 못 만났지만 지호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간절함을 보여줘서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