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지호를 만난 정인은 그에게 "내 자신을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그녀는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다.

"우리, 버리지마."

서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던 우리가 어쩌다 이런 말을 주고 받게 되었을까? 어디로 가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지호의 집, 문이 열리고 어깨가 축 쳐진 그가 들어온다. 힘없이 불을 켜고 구두를 벗는 그의 발이 휑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양말도 못 신고 나간 걸까? 하루종일 헐벗은 발로 종종대며 마음 졸이던 그는 제대로 수습도 못하고 지친 발로 돌아왔다.


침실에 들어와 불을 켜고 침대에 가방을 툭 던진 그의 시선에 정인과 은우랑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이 걸린다. 심장이 툭 하고 멎는다.
'그래, 지금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 집 밖으로 나온 지호, 주차장에 세워 둔 차로 뛰어가 시동을 걸고 정인의 마음을 붙잡으러 달려간다.



정인의 집 앞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벨을 누르고 그녀에게 전화 거는 지호, 그러나 이불을 뒤짚어쓰고 누운 그녀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한숨만 내쉰다.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굳게 닫힌 문에 기대 괴로워한다.


이때 폰 진동이 울린다.

'이정인?'

아니, 엄마다.

"하..."

그는 현관에서 몇 걸음 떨어져 나와 전화를 받는다.

지호: 네.

은우: 아빠.

지호: 어.

은우: 아빠 언제와?

지호: (긴 한숨)

은우: 언제 올거야?

지호: 어...

은우: 빨리 와.

지호: 어,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지호는 잠시 그녀의 집 앞에서 멈칫하다가 힘없이 발을 옮긴다. 고요한 복도에 그의 축 쳐진 발소리만 울린다.


지호의 본가, 그가 부모님과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
숙희: 나도 놀랬어. 오히려 날 위로해주시더라. 허...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집까지 오는 내내 그 생각만 했어. 아빠는, 처음에 듣고도 믿지를 않더라.

남수: 선뜻 믿게 되나~ 나도 말은 안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내주셨는지, 참... (지호를 보며) 언제고 꼭, 감사인사 드려야지.
지호: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남수: 이럴 때일수록 더 자신감 있게 해야 돼. 너 하나 믿고 오겠단 사람인데, 든든해 보여야지.

지호: (고개가 더 숙여진다.)

숙희: (지호의 표정을 살피며) 왜 반응이 그래?

지호: (겨우 입을 떼며) 아니야.
남수: 얘라고 안 놀랬겠어? 우리보다 더하지.


지호는 남수를 바라보며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지만 눈빛은 슬프고 괴롭다.


은우의 방 침대, 지호가 은우 옆에 모로 누워 그를 재워준다.
은우: 아빠

지호: 응?

은우: 선생님...

지호: 빨리 자.
은우: 선생님하고 또 놀...

지호: 알았어. 빨리 자. 이제...
잠들면서도 정인을 보고싶어 하는 은우의 모습을 보니 지호는 더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