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정인의 도서관 열람실, 형선이 창가에 서서 책장을 넘긴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책장으로 가서 책을 제자리에 꽂고 서있는데 정인이 다가온다.

정인: 엄마.

형선: (정인의 얼굴을 빤히 살피며) 왜 이렇게 얼굴이 까칠해보여?

정인: (자기 볼을 만져보며) 어, 아닌데... 미안해. 집에 갈라고 했는데 일이 좀 많았어.

형선: 기다리다 지쳐서 온거 아니야... 근데,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정인: (시선을 피하며) 아니~ 가 있어. 나 커피 사올게. (열람실을 나간다.)


형선: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래도 되는 건지 솔직히 아직 확신은 안섰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난간에 두고 정인을 본다.) 그래도 니 인생이 그래야 행복할 것 같다는데, 그거보다 뭐가 더 중요해. (시선을 돌리고) 그 사람이야 아직 자세하게 못 봤지만, (살짝 미소를 띠며) 어머니만 봬도 알겠더라.

정인: (아, 엄마는 내게 그 얘기를 해주려고 연락했던 거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울컥해서 고개를 떨군다.)



형선: (정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직 넘어야 할 산 많아. 결혼이 다가 아니야.

정인: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형선: 각오한 것보다 더 힘들거야. (맘고생 할 정인이 안쓰럽다.) 후회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정인: (형선과 눈이 마주치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형선: (덩달아 코끝이 찡해져서) 으그, 으이그~


형선: (정인의 어깨를 다시 토닥이며) 누가 보면 서러워서 우는 줄 알겠다.

정인: (더 서럽게 운다.)

형선: (정인의 손을 잡고 팔을 쓸어주며) 그동안 마음 고생한 거 다 알아. 근데 아직 남았다니까~

정인: (속상해서 계속 운다.)

형선: 엄마가 허락했다고 다 끝난 거 아니야~

정인: (겨우 대답) 알어...

형선: (정인의 얼굴을 빤히 보며) 근데, 너, 무슨 일 있구나?


정인: (고개를 저으며 선을 안고 울먹이며) 좋아서 그르지. 좋아서... (훌쩍인다.)

형선: (정인의 등을 보듬고 토닥여주다가 같이 울컥한다.)



도서관 정문 앞, 모녀가 손을 꼭 잡고 문밖으로 나온다. 밖에서 들어가는 남자가 문을 잡아주자 형선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다. 역시,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작은 배려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모녀가 똑같다.

형선: 아빤 내 말도 안 먹히는 사람이니까 둘이 천천히 잘 의논해봐. 못되게 굴지 말고.

정인: (괜히 뜨끔해서) 뭘~

형선: 그 사람, 자기 처지 때문에 목소리도 크게 못 낼 거 아니야.

정인: 안 그래. (말해놓고 형선의 시선을 피한다.)


형선: 뭘 안 그래~ 너 그 사람보다 잘난 거 없어. 훨씬 못나면 못났지.

정인: 내가 어때서?

형선: 너 애 키워 봤어? 그 맘 알어? 세상에서 제일 큰 공부는 자식 키우면서 배우는 거야. (정인을 보며) 그 사람 너보다 어른이야.


정인: (무심결에) 치~ (하고 시선을 돌린다.)

형선: 뭐야 그건?

정인: (말은 못하고 그저) 아니...


형선은 입이 삐죽 나온 정인을 보며 웃음이 터진다. 다 큰 거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여전히 애다. 둘째딸이 귀여운 형선은 함박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넘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