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커플 S# 4. 각자의 일터

조제실에서 열일하는 유 약사님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이정인'

그녀 이름만 봐도 그의 입이 귀에 걸린다.

(전화를 받는다.) 응, 정인씨.


(대뜸) 엄마가, 지호씨 만나고 싶대요.
(놀라서 멈칫) 언제?

(웃으며) 당장 나오라고 해도 나올 거 같네.

그래야 된다면.



너무 여유만만인데?

뭐 어차피 한 번은 치를 일인데 뭐.

-> 말은 태연하지만 동공 지진난 표정은 어쩔건데 ㅋㅋ
씩씩해서 좋네. 알았어요. 날짜하고 장소 정해서 얘기해줄게.



(잠시 망설이다가) 저기, 정인씨.

응?

은우하고 같이 뵙고 싶어요.


(어쩌지?)
아닌 거 같애?

어... 그런 게 아니구, 지호씨가 괜히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은우 소개하는 것도 한 번은 치를 일인데 뭐.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해요, 우리.
-> 형선은 지호도 지호지만 그의 아이도 몹시 궁금할거다. 지호 혼자 나가면 형선은 은우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고민일테고, 지호도 은우 얘기를 빼고 자신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않은가? 처음부터 은우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앞으로 정인과 셋이 함께 할 미래를 그녀의 가족들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뻐라.

뭐가?

우리 일이라고 생각해주는 게.

(웃으며 걷는다.) 앞으로 계속 나올 거니까 미리 감동하지 마.

-> 정인의 '우리'라는 말에 감동받은 지호. 그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애아빠라고 고백했고, 그런 그를 편견 없이 대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친구가 된 그녀를 만날 때도 망설임 없이 은우를 데리고 갔다. 오히려 아들과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무척 설렜다.
아들의 존재와 미혼부라는 처지는 그가 그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장애이기도 했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그녀가 은우까지 포용하고 함께 하면서 이들 셋은 진정한 '우리'가 된 거다.



도서관 회의실, 정인이 영주와 하린에게 지호와의 연애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하린: 우와, 완전 대박이다.

영주: 겁나 멋있다, 진짜.
정인: 뭘 이정도로...

영주: 너 말구~

하린: 남친이요~

영주: 응


정인: (정색하며) 나 왜 아닌데?
영주: 너하고 지호 씨하고 사정이 같애?
하린: 맞어.

영주: 데리고 오라고 해도 덜덜 떨릴 판에, 유지호 완전 용감무쌍이다.

하린: 그르니까. 이래서 부모가 되면 다르다는 건가봐. (정인을 힐끔) 동갑인데 참~ (영주에게) 차이난다, 그죠~?


정인: (발끈하며) 나도 같이 만나는 게 좋다고 했어!


영주: 늦었다, 야. (웃는다.)

하린: (영주에게) 다음에 선배집 갈 때 약국 들러서 파스라도 한 장 사야겠어요.

영주: 세 장 사~

하린: 세 장? 콜! 오케~


정인: 지갑은 꼭 챙겨가라! (고개 숙이며 딴청 피운다.)
-> 동료들이 지호를 칭찬하자 흐뭇해하다가, 혹여 내 남자 뺏길까봐 단호하게 주의를 주는 정인이다. 사랑은 사람을 참 유치하게 만든다. ㅋㅋ



하린: 헐...

영주: (유치해진 정인이 어이 없어 웃는다.)


지호의 본가, 퇴근하고 들른 지호가 부모님, 은우랑 같이 저녁 식사를 한다. 은우가 먼저 밥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간다.

숙희: (지호에게) 괜찮겠어? 처음 뵙는 자린데 좀 그렇지 않을까? (남수를 보며) 당신 생각은 어때?

남수: 그러게. 니가 어떤 사람인지 보실라는 건데 은우까지, 부산스럽지 않겠냐?


지호: 은우가 있어야 내 전부를 보시는 거지.

-> 이 말이 참 감동스럽다. 아들 은우는 지호의 분신이자 위안이고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자신감이자 삶의 이유니까.

남수: 마음은 알지만...




숙희: 그래~ 너야 부모니까. 근데 여자 쪽은 니가 좋은거지, 아직 익숙하게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잖아.

지호: 정인씨도 그렇게 하는 게 좋대. 그리고 지금부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뭐든 같이 해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대문을 열고 지호가 먼저, 남수가 뒤따라 나온다.

지호: (계단을 내려와 뒤를 돌아보며) 들어가세요.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남수: 난 너 같은 아빤 아니었던 거 같다.

지호: (멋적어하며)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어머니한테 갚을 게 더 많아요.

남수: (지호가 자랑스러워 환하게 웃는다.) 내 자식이지만 참 장하고 대견해.
지호: (남수의 칭찬에 민망해진다.) 아휴, 갈게요. 들어가세요. (얼른 돌아선다.)

남수: 그래, 운전 조심하구.

지호: (돌아보며) 네.

-> 부모는 보통 자식이 못난 모습을 보이면 '넌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라며 한탄하고, 대견한 모습을 보이면 '날 닮아서 그런거다.', 혹은 '내가 자식 농사 하난 잘 지었지.' 라며 뿌듯해한다. 근데 남수는 반대다. 지호가 미혼부로 살게 된 건 부모가 못나서 그런거라며 맘 아파하더니, 은우를 키우며 듬직한 아빠가 된 지호를 보면서는 청출어람이라 여긴다.

아버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요. 지호 결혼하는 날에는 친척&지인분들 다 모인 자리에서 '내가 지호 아비입니다.'하며 지금처럼 활짝 웃으세요~


지호가 골목 건너편에 주차한 차로 걸어가 문을 열고 돌아보니 남수가 계속 보고 있다.

지호: 들어가요~

남수는 지호의 차가 멀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돌아서 집으로 들어간다.

-> 좀전까지 아들 보며 흐뭇해하던 아버지는 어느새 사라졌다. 아들의 차가 골목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묵묵히 서서 지켜보다가 입을 굳게 다물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행동과 표정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희로애락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삶을 들썩이는 동안 우린 어느새 깨달음을 얻는다. 영원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다는 걸. 인생의 파도에 물 먹지 않고 진정으로 삶을 즐기려면 심지가 굳어야 한다. 순간순간의 감정에 쉽게 휩쓸리면 삶의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미혼부인 아들이 좋은 짝을 만나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르는 거다. 자식의 다사다난한 삶을 항상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아버지. 지치거나 힘들 땐 언제든 기댈 수 있고, 기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존재. 부모란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표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