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방영분을 보며 이 드라마 장르가 궁금해졌다. 당연히 로맨스지만 그렇게만 평할 수 없는 이유는 극 전체에 스릴이 넘쳤기때문이었다. 사실 복합장르를 표방한 작품은 많다. 하나의 장르로 시청자를 끌어당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때문일까. 요즘은 웹소설 공모전에서도 복합장르를 대놓고 요구하는 곳이 있는데 목요일의 봄밤은 로맨스릴러 그 자체였다.


어떻게 진부할 수도 있는 삼각관계 로맨스물에서 심장 쫄깃해지는 스릴을 맛볼 수 있었을까. 외부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작가님과 감독님이 삼각관계에서 가능한 긴장을 극대화시켰기때문이다.


정인 오피스텔의 현관에서 삐죽 튀어나온 남자의 운동화, 기석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운동화의 주인이 지호라는 걸 알아채고 현수와의 술자리에 굳이 따라간다. 거기서 기석은 오피스텔을 방문했던 사람이 지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호를 경쟁 상대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기석이라 시청자의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정인의 전화를 받고 자리를 뜨려는 기석에게 지호는 돌직구를 날린다.


안 가시면 안 돼요? 아니면 여자친구를 일로 오라고 하면 안 돼요?


마음이 통한 정인과 지호는 서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 상황을 기석은 모른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세명의 관계, 그안의 긴장감으로 나는 첩보물 못지 않은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보통 드라마의 재료는 뻔하다. 사랑, 배신, 욕망... 그러나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로 갈리게 된다. 우리 작가님과 감독님은 미슐랭 가이드 별 다섯개도 모자란 탑 셰프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거장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으니 첫장면부터 리뷰를 시작해보자.


#1. 정인의 집


(영재와 재인이 편의점에 간 사이 지호와 정인, 소파에서 나란히 앉아 차 마시고)


지호 : 영재 오면 대충 둘러대고 일어날게요.


정인 : 안 그래도 돼요.


지호 : 정인씨, 심란하잖아. 나도 그렇고.


정인 : 혹시나 해서... 이번 일은 지호씨하곤 별개의 문제에요.


지호 : 이런 걸 뭐라고 해야 되지. 마음에 있는 사람이 연인과 헤어진다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은 거. 모르겠네. 이게 무슨 느낌인 건지.


정인 : 내가 더 귀찮게 할까봐 겁나는 거 아냐.


지호 : (살짝 웃고)


정인 : 날 볼 때 뜬금없고 때론 황당하기도 한 거 알아요. 지나치다는 생각할 때도 있었을 거고. 돌이켜 보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는 혼란속인데 빨리 정리할 노력보다는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애요.


지호 : 그 때마다 만만한 게 유지호였고.


정인 : 그래서 고맙다고.


일단은 지호의 집앞에서 나눴던 대화보다 부드러운 분위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정인의 긴 대사.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는 혼란. 이 혼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정인은 기석과의 관계에서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어지는 자존감은 덤이었겠지. 이런 게 연애려니 그냥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걸까 막연한 생각을 하며 뭔가 속에 걸린 듯한 느낌으로 기석과의 관계를 이어왔는데 어느날 지호가 나타난 거야.


지호의 키워드는 배려지. 정인에 대한 감정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그 감정으로 정인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이런 그의 모습에서 정인은 기석의 문제점을 확실히 볼 수 있게 되었어. 을에게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남자에 의해 그 정체가 발각된 거야. 이 대립구도는 정인의 내부에 혼란을 일으켰고 도대체 이 현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하는데 정인은 시간이 필요했지.


처음에는 오랜 연인 사이의 흔한 권태기인가 생각하고 지호에 대한 감정을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 정도로 생각하려 했겠지만 정인의 아픈 부분을 대하는 기석의 태도에 정인은 진실을 깨닫게 되지. 기석은 제 짝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지호가 제대로 된 짝이라는 걸. 정인이 지호에게 고마운 부분은 사랑뿐만 아니라 인생의 쓰레기를 제거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도 있다고 생각해.


#2. 정인의 방


(영재와 재인, 지호와 정인 같이 거실에서 이것저것 구워 먹는데)


지호 : (전화 받으며) 어. 왜 아직 안 자. 어. (일어나 정인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정인 : (낭패다 싶은 표정 짓고)


지호 : 아이구, 자다가 자꾸 깨고 그러면 안 되는데.


은우 : 아빠도 잤어?


지호 : 아니, 아직 안 잤어.


은우 : 왜? 


지호 : 어? 


은우 : 아빠 왜 말을 안 해?


정인 : (방에 들어와 황급히 널린 옷가지 치우고)


지호 : 어, 그, 아빠가 친구집에 있어 가지구.


은우 : 선생님집이야?


지호 : 아니. 은우야, 이제 자야지.


은우 : 나도 바꿔줘.


지호 : 왜. 바꿔서 뭐하게. (정인 눈치 보며) 은우야, 빨리 이제 자야 내일...


정인 : (전화 달라고 손 내미는데)


지호 : (폰 건네고)


정인 : 여보세요. 은우야. 


은우 : 메추리알. 네. 네.


정인 : 은우, 일찍 자야 키가 쑥쑥 클텐데. 아빠보다 클 거예요. 그럼 빨리 자야지. 


지호 : (전화하는 정인, 흐뭇하게 바라보고)


이 세 식구 맘에 든다. 선생님집 아니라고 했는데 은우는 어떻게 알고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한 걸까. 애들 촉이 무섭구나. 여기서 포인트는 은우와 전화하는 정인을 바라보는 지호의 표정이야. 세상 행복해보이는 애 아빠지. 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와 다정하게 통화하는 거, 지호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 같다. 뭔가 안심해도 되는 기분. 정인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들었을 거고 말야. 


이렇게 따뜻하기 그지없는 장면에서도 감독님은 기석이 정인의 오피스텔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을 중간에 넣어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시청자는 세 식구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기석의 차는 고장나지 않고 직진하지. 이쯤되면 얄미울 정도로 효과적인 장면 배치야. 역시 장인이시다.


#3. 술집에서


(현수 지호와 마주 앉아 술 마시던 기석, 정인의 전화를 받는데)


기석 : 아니 니가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러지. 니가 오빠한테 이렇게 빨리 오라고 보챈 적이 없었잖어. 알았어, 빨리 갈게. 그럼. 어-. 음-.


현수 : 형수님 만나러 가세요?


기석 : 어, 아이, 집에 오라 그러네.


현수 : 그럼 가셔야죠.


기석 : 에이, 그, 안 좋다 그랬잖아. 풀어 볼라 그러는 거 같애. 야, 아무튼 미안하다야.


현수 : 미안은요. 데이트가 중요하죠.


기석 : 내가 이건 계산하고 갈게.


지호 : 안 가시면 안 돼요?


현수 : 왜 이래. 이미 약속잡은 건데.


기석 : 아까 뭐 까놓고 얘기한다고 한 게 진짜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야?


지호 : 아니면 여자친구를 일로 오라고 하면 안 돼요?


현수 : 취했냐? 왜 이래. 봐봐. (지호 눈 살펴보며) 맛이 갔어 벌써. 형, 취했어 취했어.


기석 : 적당히 먹고 들어가. 많이 취했네.


현수 : (기석 나가고 난 뒤) 뭔데, 뭐때문에 그러는데.


지호 : (허탈하게 웃고 고개 저으며) 아니야.


인트로에서 이야기했던 장면이야. 혹시라도 지호가 불어버릴까봐 초긴장하면서 봤던 장면. 먼저 재인의 코치를 받아 기석에게 전화한 정인의 노고가 눈에 보여. 아마도 가벼운 애교까지 떨어가며 기석을 끄집어냈을텐데 정인이 고생 많았다.

대놓고 무시하는 기석의 태도에도 잘 참던 지호가 기석이 정인의 집에 간다는 말을 들을 뒤부터는 본심을 숨기지 못해. 일종의 영역본능이라고 봐야 하나. 마음에 있는 사람의 집에 다른 수컷이 간다는 거, 빡칠만한 일이지. 게다가 그 집에서 지호는 나름의 추억을 쌓았지. 고기도 구워 먹고 은우와 정인의 다정한 통화도 감상하고. 마음으로는 이미 지호가 정인이 남편이야.

대사를 따지는 못했는데 내가 가장 눈여겨본 장면은 오피스텔에서 나온 기석이 정인을 안고 하는 말이야. 정확하지는 않은데 '정인이 네 맘 알았고 내가 이제부터 사랑할게.' 대충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기석의 나름 절절한 포옹에도 정인의 표정은 딱 굳어있지. 배경음악도 음산하기 그지 없어. 자 여기서 또 생각해봐야할 게 있어.

기석은 사회적으로도 또 인격적으로도 크게 흠잡을 게 없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꼴보기 싫은 걸까. 그건 기석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기때문이야. 정인은 몇년간 기석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했겠지만 기석은 그 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 연인 관계 자체는 유지했겠지. 핸드폰에 내 여자라고 저장해놓고 말이야.

이렇게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하고 - 안하는 걸 수도 - 그 때 그 때 사람 좋아보이는 쪽으로 이미지 구축을 하는 인간옆에 있는 사람은 속이 썩어들어가기 마련이야. 뭔가 답답한데 특별히 나쁜 점은 없으니까 뭐라고 지적하기도 애매하지. 그래서 속앓이는 늘 정인의 몫이었겠지. 이렇게 정인의 속이 이미 다 썩었는데 이제서야 기석은 마음을 알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말해.

그러나 정인은 지호를 위해 감정을 위장할만큼 기석에 대한 마음이 없어. 사실상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 돼. 이런 상황에서 기석은 제 맘 편하게 잠깐 싸웠지만 이제 다시 화해한 거네 이렇게 받아들인 거지. 아, 놔, 이 샛기, 남서방과 더불어 봄밤 2대 악의 축이라고 본다. 이렇게 듣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반응도 하지 못하는 등신은 앞으로도 계속 딴 소리를 해대겠지. 벌써부터 답답하다.

정인은 진흙탕 싸움을 막아보려고 - 그 안에 지호가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아서 - 이제 첩보작전까지 수행하고 혹시라도 기석을 집으로 부른 자신의 행동에 지호가 마음 상했을 가능성까지 염려하지. 정인도 지호 못지 않게 배려 넘치는 캐릭터야.

#4. 미안해요 좋아해서.

(약국 조제실에서 지호, 정인과 통화중인데)

지호 : 정말 괜찮다니까.

정인 : 그 말만 벌써 네번째야.

지호 : 진짜니까. 좀 화가 났던 건 사실인데 정인씨가 왜 그랬는지 결국은 다 날 위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다 풀어버렸어요.

정인 : 전화라도 해서 화내지.

지호 : 후회할 짓을 왜 해.

정인 : 지호씨. 

지호 : 응?

정인 : 미안해요. 좋아해서.

지호 : (입꼬리 올라가며) 좋은 아침이네.

정인 : 굿모닝.

전날 기석이 정인의 오피스텔로 떠난 후 길가에 앉아 뒤집어진 속을 은우와 전화하며 달래보려던 지호, 아마도 정인이 한 행동은 배려였을 거라고 결론내렸었나보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그녀에게서 선물처럼 '미안해요 좋아해서'라는 달콤한 고백을 듣게 된다.

이 부분은 이유가 하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혹시라도 내 감정으로 상대방이 다칠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마음. 이건 정인에 대한 지호의 마음이기도 해. 느끼하게 '나도 좋아해'라고 대답하지 않고 '좋은 아침이네' 대답하는 게 딱 유지호답다.

#5. 기석의 차안에서

(옆자리에 탄 지호에게 전화가 오자)

기석 : 그 여자야? 받어. 받어. (지호가 안 받고 있자) 그래 갖고 어디 씨 여자 잡겠냐. 어.

지호 : 여보세요.

정인 : 안 받길래 끊을라고 했는데 통화할 수 있어요?

지호 : 응.

정인 : 혹시 오늘 약국 문 열었어요?

지호 : 응.

정인 : 그럼 지금 일하겠네.

지호 : 올라고?

정인 : 잠깐 할 말 있어서. 몇 시에 끝나요?

지호 : 오늘 농구했는데.

정인 : 기석오빠랑 같이 있었어요?

지호 : 그랬지.

정인 : 혹시 지금도?

지호 : 응.

정인 : 끊을게요.

지호 : 왜.

정인 : 지호씨.

지호 : 끊지마.

(기석, 지호 쳐다보는데)

술자리에서 느꼈던 자괴감과 무력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걸까? 지호는 이제 기석에 대해 표면적으로도 날을 세운다. 은우가 태어나기전 패기 넘치고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유지호로 돌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그건 정인앞에서 한 사람의 남자로 당당해지고 싶다는 마음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녀의 마음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자신감이 지호의 각성을 돕는 거겠지.

이런 구도에서 보통 드라마는 남자 둘이 치고 박고 싸우고 여자는 중간에서 어머 어떻게 해 어쩔 줄 몰라하지만 예고를 보니 우리 작가님과 감독님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일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 기대되기도 하고. 과연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 것인가. 한치앞을 모르는 시청자는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